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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영원한 이야기꾼' 박완서를 추모하며
(서울=연합뉴스) 유별나게 한파와 폭설이 반복되는 이 엄동설한의 계절에 우리는 한국 문단의 큰 별을 떠나보내는 슬픔까지 겪게 됐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어제 타계한 것이다. 세대를 초월해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그는 지난해 담낭암 수술 후 악화된 병세를 끝내 이기지 못했다.

  
박 선생은 1970년 불혹의 나이로 늦깎이 등단했지만 누구보다 왕성하게 많은 작품을 쓰는 놀라운 뒷심을 발휘했다. 그를 문학의 길로 이끈 것은 오빠를 잃어야 했던 6·25 전쟁의 상처였다고 한다. 데뷔작 `나목'을 비롯해 `엄마의 말뚝' 등을 통해 참혹했던 전쟁의 아픔을 문학으로 형상화했다. 신문에 연재했던 장편 `휘청거리는 오후' 등을 통해서는 중산층의 물신주의와 허위의식 등의 세태를 꼬집었고,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의 장편소설에선 여성의 억압을 다뤄 여성문학의 대표적 작가로도 주목받았다.

  
노년기에 접어들어서도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은 그는 `영원한 현역'이었다. `그 남자네 집' `친절한 복희씨' 등의 장편과 산문집 `호미',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등 노년기의 경험을 쓴 작품들도 젊은 작가들이 쓸 수 없는 귀한 작품들로 우리 문학에 값진 자산으로 남았다. 그는 문학적으로 빛나면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은 흔치않은 행복한 작가였다. 출생지인 개풍에서의 어린 시절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 자전적 경험을 그린 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150만 부가 넘게 팔렸을 정도다.

  
그는 고통을 소통으로 치유한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다. 불혹의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해 40년 동안 자신의 상처와 세상의 아픔을 보듬으며 한평생 치유와 위로의 글쓰기를 계속해 국민으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가지고 우리 문학계에서 간과됐던 중산층과 노년의 삶 등 현실과 사회를 치열하게 고민해 살아있는 문장으로 풀어냈기 때문에 세대를 초월해 그의 이야기보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 그의 빈자리가 더 크고 그래서 더 허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인의 빈소 입구에는 부의금을 사양한다는 안내문이 쓰여 있다고 한다. 평소 "문인들은 돈이 없다"며 "내가 죽거든 찾아오는 문인들을 잘 대접하고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마라"고 당부했던 고인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한국 문단의 친정어머니'로도 불린 고인의 마지막 유언이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인은 힘들고 어려운 문인들을 남모르게 돌봐주었고 문인들 불행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이제 매년 기다려왔던 선생의 육필원고는 더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가 남긴 창작혼은 후배들에 의해 기리고 발전시켜 이 땅에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의 빈자리를 벌써 그리워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1/23 15:5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