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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천 칼럼] '대선 이후 개헌'에도 함정은 있다

(서울=연합뉴스) 조기 대선의 턱밑에서 갑자기 '초고속 개헌안'이 돌출해 정치권이 시끄럽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원내대표들이 추진하는 이 개헌안이 처음 공개된 것은 지난 15일 오전이다. 공교롭게도 황교안 국무총리 권한대행이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5월 9일'을 대선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그날 오전이었다. 초기에 알려진 내용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격으로 하는 개헌안을 3당 합의로 도출해, 이번 대선일에 국민투표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등 구 야권은 당장 '정략적 밀실 개헌'이니, '졸속 야합'이니 하며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국민의당 대선 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와 박지원 대표도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반대하는 측은 정치적 모략으로 의심된다는 점과 개헌안 성안 과정에 국민 참여가 배제된 부분을 집중 성토했다. 최소한의 여론도 수렴하지 않고 개헌안을 불쑥 내놨으니 그런 말을 들을 만하다.

그런데 개헌 추진 3당은 이틀 후 미묘한 문제를 꺼내 들었다. 개헌안에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부칙 조항을 넣고, 현행 헌법의 대통령 '중임 제한' 조항은 삭제한다는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가 짧아지는 대신 개정 헌법이 적용되는 20대 대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된다. 현행 헌법 128조 2항에는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헌법개정 제안 당시 대통령에 대해 효력이 없다'고 돼 있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 궐위 상태여서 대선 전에 개헌안이 국회에서 발의되면 차기 대통령 당선자한테 '중임 제한'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될 경우 차기 당선자는 20대는 물론 21대 선거까지 출마할 수 있다. 국민의 선택에 따라 최장 11년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개헌 추진 3당의 수정 제안이 누구를 염두에 둔 것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다음 대통령의 임기 단축에 가장 민감한 주자는 아마 지지율 1위를 달려온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일 것이다. 국회 개헌특위의 홍일표 바른정당 간사는 "민주당이나 문재인 전 대표에게 결코 불리한 조건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이 속성 개헌안에 다른 정략적 의도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헌을 고리로 '반문(반문재인)' 세력을 결집해 대선판을 한번 흔들어 보려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말이 나오기 무섭게 '정략적'이란 딱지를 붙여, 논의의 확산 자체를 봉쇄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처럼 배타적이고 교조적인 태도도 상대방에 정략적으로 비치기는 마찬가지다. 언젠가 문재인 전 대표는 "사람이 잘못한 것이지 헌법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개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최근 불거진 대선 전 개헌론에 대해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안 국민투표를 하면 된다고 말한다. 국민의당 안 전 대표도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다. 사실 대선을 50여 일 남겨놓고 그 전에 개헌을 하자는 주장에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국민이 기본적인 내용과 취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추진 명분을 지탱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그냥 넘어가고 내년 중반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자는 주장에도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조금 복잡할지 모르지만 헌법 개정에 숨겨진 '셈법'을 한번 살펴보자. 분권형 4년 중임제를 채택할 경우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4년마다 한꺼번에 한다는 것이 최근 개헌 논의의 대세다. 현행 헌법에 따라 이번 대선에서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 임기는 2022년 5월 종료된다. 설사 내년 6월에 4년 중임제로 개헌이 된다 해도, 처음 적용되는 그 다음 대통령 임기는 2022년 5월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다음 국회의원 선거는 2020년 4월에 있다.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의 개시 시점이 2년이나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반면 개헌 추진 3당이 제시한 대로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줄이면 2020년 4월 총선 때부터 개정 헌법에 따라 대통령 선거를 같이 치를 수 있다. 결론은, 이번 대선에 맞춰 개헌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차기 대통령의 임기 단축 문제는 어느 정도 정리하고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내년 6월에 개헌을 추진하려 하면 '경우의 수'가 너무 복잡해진다. 대통령 임기가 1년쯤 지난 시점에 그런 혼란을 뚫고 개헌안 국민투표까지 하기는 쉽지 않다.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해를 그토록 겪고도 지금까지 손질하지 못한 우리의 헌법이 '산증인'이다.

현행 헌법은 흔히 '1987년 체제'로 불린다. 1987년 '6.10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결과물이자, 군부 장기집권의 안티테제(대립의견)로 등장한 것이 현행 헌법이다. 당시 민주화 세력이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선택한 것은 '장기 집권'을 원천 봉쇄하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승자독식과 패권정치의 극심한 부작용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의 반민주적 통치도 그런 배경에서 작동했다. 이제 대통령 권력 분산과 '주권 재민'의 정신을 되살려 30년 적폐의 사슬을 끊어야 할 때다. 그런 측면에서 주요 대선 후보들이 개헌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선 올바른 방향의 개헌이 누군가의 집권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 법치주의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각 정당과 대선 주자들도 이제 개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개헌 논의의 핵심적인 내용과 자신의 개헌 구상을 정확히 유권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고 나서 겸허한 마음으로 유권자들의 선택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에 치러지는 대선이다. 개헌 문제를 얼버무려 넘어가는 후보는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논설실장)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3/17 18:2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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