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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난징대학살 80주년과 푸른 눈의 의인들

지난해 12월 13일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난징대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단테의 '신곡'에 묘사된 연옥이 난징(南京)시가 함락당한 그날의 모습이며, 침략자 일본군은 피에 굶주린 지옥의 아수라떼였다."(존 머기), "남편이나 형제가 강간을 말리려고 하면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다."(욘 라베), "임신 6개월의 19세 리슈잉은 일본군에게 배를 찔려 유산하고 얼굴에 18차례 칼을 맞았으며 37곳을 봉합했다. 일본 사령관에게 항의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고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마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로버트 윌슨)

1937년 12월 13일부터 6주간 중국 강남의 고도(古都) 난징은 아비규환의 인간 도살장으로 변했다. 당시의 광기와 참상을 고발하는 사진과 증언 기록은 차고도 넘친다. 도쿄일일신문(마이니치신문의 전신)은 중국인 100명의 목을 누가 더 빨리 베는가를 겨루는 시합이 벌어져 젊은 두 소위가 각각 106명과 105명을 참수하는 기록을 세웠다는 기사를 버젓이 실었다. "중국인을 죽이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랬다. 중국인을 산 채로 매장하거나 장작불에 밀어 넣어 몽둥이로 때렸다"는 일본군의 일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히틀러의 나치조차 난징대학살을 두고 '야수의 행위'라고 비난했다.

쇼와 12년(1937년) 12월 13일자 도쿄일일신문의 기사. 목 베기 시합을 벌인 두 소위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일본군은 1937년 7월 노구교사건을 빌미로 중일전쟁을 일으킨 뒤 파죽지세로 톈진과 베이징을 점령하고 8월 남쪽의 항저우와 상하이로 진격했다. 그러나 완강한 중국군의 응전으로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일본군에 저항하면 끔찍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알려줄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국민당 정부의 수도이던 난징을 표적으로 삼았다. 공군기까지 동원한 대공세를 벌인 끝에 12월 13일 새벽 난징을 점령한 뒤 패잔병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빼앗고 죽이고 불태우는' 이른바 '3광(光)작전'(창광·살광·소광)을 전개했다. 중국 정부는 당시 70만 명의 난징 시민 가운데 30만 명가량이 숨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강간 피해를 본 여성의 수도 2만∼8만 명에 이르며, 일본군의 방화와 약탈로 난징시 건축물 23.8%가 불에 타고 88.5%가 파괴된 것으로 보고됐다.

2015년 10월 9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는 일본의 집요한 반대 로비와 분담금 중단 위협에도 중국이 신청한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미국인 성공회 신부 존 머기가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상, 중국판 '안네의 일기'로 불리는 진링여대 기숙사 사감 청루이팡의 일기, 일본군이 찍은 사진, 난징시의 조사보고서, 극동국제군사재판과 중국 재판 기록 등이 포함됐다. 국제자문위는 이들 자료를 심사한 뒤 "그 진위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권위와 진정성을 지니며, 난징대학살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본의 우익 정치인들은 지금까지도 '날조된 허구', '중국의 반일 모략', '20세기 최대의 거짓말'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난징대학살 당시의 사진. 일본군이 중국군 포로를 참수하고 있다. [중국 제2역사당안관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자료 사진]

80년 전 생지옥의 한가운데서도 당시의 참상을 고발하고 일본군의 만행으로부터 중국인을 보호하려는 벽안의 의인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중국판 오스카 신들러'로 꼽히는 독일인 욘 라베였다. 오스카 신들러는 2차대전 중 유대인 1천여 명을 나치 학살 위기에서 구해낸 체코 출신의 독일 사업가로,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쉰들러 리스트'란 제목으로 영화화해 유명해졌다. 세계 굴지의 기업 지멘스의 난징지사장으로 근무하던 라베는 일본군의 진격 소식을 듣고 난징을 탈출하려다가 중국인 피란민들이 집 앞에서 살려 달라고 매달리자 탈출을 포기하고 650여 명을 집으로 받아들였다. 또 난징안전구국제위원회를 조직해 대사관과 외국인 주거지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일본군에게 요청했다.

나치당원인 그는 일본과 독일의 동맹관계를 이용해 안전구에 나치 깃발을 내걸고 이곳으로 피란온 중국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신변을 보호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 사람은 20만 명에 달했다. 1938년 2월 그가 난징을 떠날 때 수천 명의 중국군이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남경 주민은 그를 '살아 있는 부처'로 불렀다. 그가 난징대학살을 전후해 쓴 일기는 한동안 종적이 묘연했다가 1996년 12월 미국 예일신학대 도서관에서 발견됐다. 이듬해 그의 추모비가 베를린에서 난징으로 옮겨졌다. 같은 해 영문으로 출간된 그의 일기 모음집 제목은 '욘 라베, 난징의 좋은 독일인'이다. 2009년에는 프랑스·독일·중국이 그의 일대기를 '욘 라베'란 이름의 영화로 꾸며 선보였으며 2014년 한국에서도 개봉했다.

존 머기 성공회 신부는 난징국제적십자위원장이었다. 그는 일본군 사령부의 방해와 협박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참사 현장을 16㎜ 무비카메라에 담았다. 이는 난징대학살이 세계에 알려지고 관련 자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난징대학병원 외과의사 로버트 윌슨은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참상을 폭로했으며, 여기에 등장한 리슈잉의 법정 증언도 세계기록유산에 올랐다.

2014년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 '욘 라베-난징대학살'의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

오는 13일은 난징대학살 80주년 기념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이날부터 16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다. 미국의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는 문 대통령의 방중 날짜가 난징대학살이 시작된 날과 같은 점에 주목해 "이는 일본에 보내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일제에 의한 역사적 상흔을 중국과 공유하고 있는 처지에서 문 대통령이 난징대학살에 관해 어떤 언급을 할지도 주목된다.

난징대학살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전쟁광들의 반인륜적 범죄였다. 그 가운데서도 뜨거운 인간애를 발휘한 의인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니스트 베델, 호머 헐버트, 프랭크 스코필드, 후세 다쓰지 등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한국인을 도운 이방인들이 일제강점기 암흑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안겨주었다. 슬픈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만행을 똑똑히 기억하고 가해자에게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면서도 의인들의 헌신적 활약상을 널리 알려 치유와 화해의 씨앗을 키워가야 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더욱 살 만한 곳이다.

hee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12/12 07: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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