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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사물놀이 40돌과 진정한 세계화의 길

김덕수와 김용배 등이 1979년 4월 19일 공간사랑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8년 2월 22일 오후 7시, 서울 창덕궁 옆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제1회 공간전통음악의 밤'이 열렸다. 객석을 메운 관객은 난생처음 보는 무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4명의 연주자는 꽹과리(쇠), 장구, 북, 징을 각각 들거나 앞에 놓은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주로 거리나 마당에서 서서 공연을 펼치던 풍물패나 농악대가 밀폐된 소극장에 앉아 있는 것도 처음 보는 일이었고, 태평소와 같은 멜로디악기 주자나 화려한 몸재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상모재비가 보이지 않는 것도 의아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았다. 쇠재비 김용배의 시작 신호와 함께 김덕수(장구), 최태현(징), 이종대(북)가 함께 신들린 듯한 연주를 선보이자 관객은 이내 몰입해 황홀경에 빠졌다. 멜로디 없이 리듬악기만으로 풍부하고 다양한 음악 세계를 연출할 수 있고, 춤 없이 타악기 주자들의 현란한 손동작만으로도 역동적인 무대를 꾸밀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 놀랐다. 이것이 바로 국악 한류를 대표하는 '지구촌 사운드' 사물놀이의 출발이었다.

무대는 이튿날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그해 4월 이종대 대신 최종실을 영입해 두 번째 공연을 꾸민 데 이어 12월 최태현이 빠지고 이광수가 합류해 진용을 갖췄다. 처음에는 경기·충청 지방의 풍물을 앉아서 연주하는 팀이라는 뜻으로 '웃다리 풍물 앉은반'이라고 했다가 민속학자 심우성이 '사물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사물(四物)이라고 하면 절에서 아침저녁 예불 때 치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물놀이가 널리 알려지면서 꽹과리, 장구, 북, 징을 가리키는 것으로 굳어졌고 나중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비롯한 각국 사전에도 'samulnori'가 표제어로 올랐다.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2014 상반기 전통연희교실 발표회'에서 단국대 천안캠퍼스의 외국인 학생들이 사물놀이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들 사물놀이패는 전국의 대가와 예인을 찾아다니며 각 지역의 농악, 무속음악, 풍물굿 등의 리듬을 취합하고 다듬어 발표회 때마다 선보인 뒤 1982년 해외 원정에 나섰다. 미국을 시작으로 일본, 캐나다, 영국 등지에서 공연을 펼쳤고 그해 11월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세계타악인대회에서 10여 차례의 커튼콜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세계를 뒤흔든 혼의 소리'라는 찬사를 보냈고, 뉴욕 필하모니의 수석타악기 주자 모리스 랜지는 "불과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모든 청중을 그들의 소리 속으로 함몰시킨다"고 평했다.

사물놀이에 쓰이는 4가지 악기는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과 애환을 함께해 전국 방방곡곡마다 없는 마을이 없었다. 마을 축제 때나 액운을 막기 위한 굿에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악기는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서구 문물이 밀려들면서 전근대적이라고 천대받고 미신의 상징이라며 핍박받았다. 특히 1970년대 들어서는 반정부 집회와 시위 분위기를 선동한다는 이유로 거리 공연이 금지되기도 했다. 그래서 시작한 실내 공연이 사물놀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으니 유신 정권의 풍물패 탄압이 전통음악 세계화에 보탬을 준 셈이다.

사물놀이 40년 역사를 이끌어온 김덕수가 장구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사물놀이패가 나라 안팎으로 승승장구하던 중 위기가 닥쳐왔다. 1984년 1월 김용배가 국립국악원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사물놀이패를 창단한 것이다. 지금은 사물놀이 하면 누구나 김덕수(66)를 떠올리지만 창단 초기에는 김용배의 이름이 맨 앞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3대째 내려오는 남사당 집안에서 태어나 5살 때부터 난장을 돌아다니며 장구의 신동으로 불렸던 김덕수처럼 김용배 역시 어린 시절부터 걸립패를 따라 전국을 누비며 꽹과리의 달인으로 꼽혔다. 김용배는 김덕수보다 한 살 아래로 그의 국악예술고 2년 후배였다. 둘은 비틀스의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처럼 리더 자리를 놓고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 다른 음악 성향과 재능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했다. 김덕수와 갈라선 김용배는 존 레넌이 일찍 세상을 떴듯이 1985년 5월 자신의 아파트에서 평생 손에서 놓지 않던 꽹과리를 깨뜨리고 벽에 '무'(無)자를 써놓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덕수는 김용배 대신 새로 들어온 강민석에게 쇠를 맡겨 공연을 이어갔으나 최종실과 이광수도 1989년과 1991년 차례로 독립해나갔다. 김덕수는 강민석과 함께 1993년 한울림예술단을 창단하고 2001년 전통문화 벤처기업 난장컬쳐스를 설립해 사물놀이의 열풍을 주도했다. 1990년과 1998년에는 북한 평양에서 공연을 펼치는가 하면 1995년에는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과 함께 유엔 창립 50주년 특별무대를 꾸몄다. 김덕수 사물놀이패는 전통 연희의 틀을 망가뜨린다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클래식, 재즈, 각국 민속음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국내외 유명 음악인들과 협연하며 실험의 폭을 넓혀나갔다. 1998년에는 민속음악 관련 학과로는 처음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연희과를 개설해 교수로 부임했다.

7일 강릉 올림픽선수촌에서 열린 한국 선수단 입촌식에서 이상화를 비롯한 한국 대표선수들이 풍물패의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사물놀이 공연이 시작된 지 40년이 지난 오늘날 국내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영국의 케임브리지대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대학과 초중고등학교, 한국국제학교, 한국교육원, 세종학당, 한글학교, 한국문화원 등에서는 외국인과 재외동포들이 사물놀이를 배우며 한국 전통문화와 한국인 특유의 신명을 체험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사물놀이 동아리가 1천 개가 넘고 동포가 많은 미국·중국·러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은 물론 아프리카와 중남미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우리나라 전통 타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비틀스는 1964년 아프리카 리듬을 토대로 한 발라드곡 'And I Love Her'를 발표했다. 이때 링고 스타가 드럼 대신 연주한 민속악기 봉고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우리나라에서도 드라마 '수사반장'의 주제곡에 쓰였다. 자메이카 민속음악인 레게가 유행하자 타악기 젬베가 널리 보급됐다. 사물놀이 장단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나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 등에 응용됐고 25일 막을 내린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 공연에서도 선을 보였다. 이제는 해외의 유명 뮤지션들도 사물놀이 리듬과 소리를 활용한 작품을 많이 내놓을 것을 기대한다. 그래야만 사물놀이가 한국 전통문화 체험의 도구가 아니라 진정한 세계인의 음악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hee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2/27 07: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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