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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문화예술, 자율성과 정치적 독립 보장돼야

(서울=연합뉴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8년여 동안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과 단체를 사찰ㆍ검열하고 지원에서 배제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피해자가 개인 8천931명, 단체 342개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7월 31일 공식 출범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민관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지금까지 9개월 넘는 기간에 총 144건을 조사한 결과다. 9건의 블랙리스트 문건에 오른 이들 피해자는 사찰ㆍ검열이나 지원 배제뿐 아니라 감시, 통제, 차별 등 다양한 유형의 불이익을 받았다. 블랙리스트 문건에 지원 배제 사유로 적시한 시국선언 명단을 포함하면 피해자가 총 2만1천362명에 달한다. 영화 부문이 가장 많았고 문학, 공연, 시각예술, 전통예술, 음악, 방송 순으로, 전 장르에 걸쳐 블랙리스트가 조직적으로 실행됐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청와대는 검열과 지원 배제를 주도했고, 국가정보원도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여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국정원의 성향 검증에 기초해 예술단체나 유명 문화예술인들을 사찰ㆍ검열하고 지원에서 배제하는 방식을 취했으며, 박근혜 정부 때는 청와대가 국정원, 문체부와 긴밀하게 협조해 공모사업의 심사제도나 심사위원 선정 방식을 변경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구체적으로 세월호 시국선언 등에 참여한 문인들의 해외 파견을 불허한 사건, 좌 편향 등을 이유로 국립극단에 특정 작품의 공연을 배제하도록 지시한 사건, 창비 등 특정 출판사와 문인에 대한 지원을 배제한 사건 등 형태도 다양하다.

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문체부 내의 예술지원부서와 소속기관 사이의 위계적이고 비효율적인 직렬구조를 지적했다. 재발방지를 위해 이들 부서를 폐지하고, 국가인권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처럼 법적으로 독립된 '국가예술위원회'(가칭)를 설립해 문화예술정책을 전담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예술가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상설기구로 대통령 직속 '문화예술인 표현의 자유 및 권리 보장 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설립 목적을 분명히 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여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기구를 만들기 이전에 생각해야 할 것은 문화예술의 자율성과 정치적 독립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사단법인 형태의 민간기구이다. 이와는 별도로 문화예술정책을 마련할 정부기구를 만들 경우 자칫 정치권력의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다. 이 경우 예술이 추구하는 창의성과 자율성이 제약받게 된다.

블랙리스트로 인해 우리 문화예술계는 자율성과 다양성이 침해받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예술지원의 공공성에 대한 신뢰도 손상됐다. 이를 치유하고 이러한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주는 것은 헌법의 평등 원칙에 반하고 문화기본법이 규정하는 '문화ㆍ표현 활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정부는 진상조사위가 만든 제도개선안과 권고안을 잘 참고해서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5/08 16:4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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