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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우리동네] 택지 개발에 묻힐뻔한 직지 탄생지 흥덕사

1985년 토지공사 택지 조성 중 흥덕사 터 발굴
현존 세계 最古 금속활자본 공인 후 13년 만에 절 터 확인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백운화상 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 抄錄 佛祖直指心體要節·이하 직지)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일부 복원된 흥덕사[청주시 제공]
일부 복원된 흥덕사[청주시 제공]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역사학자 고 박병선 박사가 찾아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1455년 발행된 구텐베르크 성서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았다. 이보다 78년 앞서 1377년 발행된 직지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세계의 금속활자 역사가 바뀌게 된 것이다.

직지 하권 마지막 장에는 '의광 칠년 정사 칠월 청주목외 흥덕사 주자인시'(宜光 七年 丁巳 七月 淸州牧外 興德寺 鑄字印施)라고 적혀 있다.

고려 우왕 3년(1377년) 7월 청주목 교외의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직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만 해도 정작 인쇄가 이뤄진 청주 흥덕사의 흔적과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 사찰이 소실된 탓에 위치를 확인하지 못한 충북도와 청주시를 애태웠던 흥덕사가 베일을 벗고 그 흔적을 세상에 드러낸 것은 직지가 발견되고도 13년이 지난 1985년의 일이다.

흥덕사 터는 청주시 운천동 양병산 동남쪽 기슭에 있다.

흥덕사 전경[청주시 제공]
흥덕사 전경[청주시 제공]

이 일대에서는 신라 말기부터 불교문화를 꽃피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많은 유물이 발견됐지만, 지표 조사가 제대로 실시된 적이 없어 당시만 해도 직지의 산실인 흥덕사 터라는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4년 12월 옛 한국토지공사가 운천지구 택지개발사업에 착수하고, 충북도 역시 비슷한 시기 청주대 박물관에 의뢰, 운천동 사지(寺址) 발굴조사에 나선 것이 흥덕사 터를 찾아내는 단초를 제공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연당리에서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장식기와인 치미와 기와 조각이 발견되자 충북도는 이듬해 1월 절터 보존을 위해 택지개발 공사 중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토지공사는 공사를 강행하며 금당이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곳의 흙을 반출, 택지를 조성하며 원래 상태를 크게 훼손했다.

보전 필요성을 느낀 충북도 문화재위원회는 1985년 3월 긴급 발굴을 결의했고, 충북도는 그해 7월 옛 문화재관리국의 발굴 허가를 받아 전면적인 조사에 나섰다.

개발 당시의 흥덕사 터[청주시 제공]
개발 당시의 흥덕사 터[청주시 제공]

이 터에서 반출된 흙으로 조성된 택지에서 청동소종(靑銅小鐘)과 청동금강저(靑銅金剛杵), 청동금구(靑銅禁口) 등 불기(佛器) 25점이 수습됐고 사찰 터의 윤곽도 확인됐다.

조사가 끝나갈 무렵인 1985년 10월 택지공사로 훼손된 절터의 동쪽에서 '갑인오월일서원부흥덕사금구일좌'(甲寅五月日西原府興德寺禁口臺座)라고 쓰인 청동금구와 청동불기가 출토됐다.

이 절터가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 터였음을 문자로 확실하게 증명한 귀중한 역사적 사료였다.

사안의 중대성을 확인한 옛 문화공보부는 흥덕사 터 일원에 대한 개발 중지 및 보존 지시를 내리고 문화재 위원을 파견, 조사에 착수했고 1986년 5월 7일 흥덕사 터 일대 3만4천337㎡를 사적 제315호로 지정 공고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흥덕사'라고 쓰인 금구 조각 하나만으로는 흥덕사 터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여론에 따라 충북도는 청주대 박물관에 의뢰,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해 토지공사가 반출한 흙으로 조성된 택지 지역을 정밀 조사했다.

발굴된 흥덕사 터[청주시 제공]
발굴된 흥덕사 터[청주시 제공]

그 결과 '흥덕사'라는 글자가 쓰인 청동유물이 다량 수습됐고 특히 '황통십년경오사월 일흥덕사의 지중대사령인왕생정토지원불발일합구급운구입 중이근이량인'(皇統十年庚午四月 日興德寺依 止重大師領仁往生淨土之愿佛鉢一盒具鈒雲口入 重二斤二兩印)이라고 쓰인 청동불발도 발굴됐다.

'황통십년경오'(皇統十年庚午)는 고려 의종 4년(1150년)을 가리키는 것으로, 흥덕사의 연혁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였다.

발굴 과정에서 흥덕사는 남북 일직선 상에 중문(中門)과 탑(塔), 금당(金堂), 강당(講堂)이 배치되고 주위에 회랑(回廊)이 돌아간 신라 전통양식인 단탑가람식(單塔伽藍式) 구조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대중삼년'(大中三年)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면서 신라 문성왕(849년) 때 이미 이곳에 불사가 이뤄지고 있음도 확인됐다.

정부는 1987년 국비 29억3천900만 원과 지방비 12억200만 원 등 41억4천100만 원을 들여 흥덕사 터 복원에 나섰다.

발주를 맡은 충북도는 1992년까지 각계의 조언을 받아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각지붕 금당과 3층 석탑을 복원하고 회랑지와 강당지는 주춧돌이 노출되도록 잔디를 심어 정비했다.

택지 개발로 인해 영원히 묻힐 뻔했던,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을 찍어낸 역사적 유적이 비로소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춘 것이다.

청주고인쇄박물관[청주시 제공]
청주고인쇄박물관[청주시 제공]

흥덕사 터 남쪽에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이 건립돼 우리나라 고인쇄 출판문화의 발달사를 익히는 과학교육의 장과 21세기 정보문화산업의 중심 메카로 활용되고 있다.

ks@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8/25 11: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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