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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원의 헬스노트] 저출산 극복 외치면서 '공공정자은행'도 없는 나라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불임·난임치료는 아이를 원하는 부부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심각한 사회문제인 저출산을 극복하려는 차원에서도 꼭 필요하다.

보통 일주일에 2회 이상 피임 없이 부부관계를 가지면 임신 가능성이 20%, 1년을 유지하면 85% 정도에 달한다. 따라서 정상적인 부부관계에도 불구하고 1년 이내 임신에 성공하지 못하면 불임 또는 난임이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임신이 안 되는 원인이 명확한 경우가 불임이고, 임신이 가능한 상황이지만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는 난임이다.

불임이나 난임의 원인은 남녀 모두에게 있을 수 있다.

여성에게는 난소기능 저하나 배란장애, 난관손상, 자궁이상 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지만 원인을 못 찾는 경우도 있다. 남성은 무정자증, 희소정자증 같은 정자의 양 문제에서부터 활동력, 모양 등 정자의 질이 문제가 된다.

학계에서는 남성요인에 의한 불임 또는 난임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임신이 안 될 때는 부부가 함께 검사를 받아야 정확한 치료가 가능하다.

결혼늦어 난임•불임 부부↑…함께 진단받아야(CG)
결혼늦어 난임•불임 부부↑…함께 진단받아야(CG)[연합뉴스TV 제공]

문제는 무정자증 등의 경우 아이를 가지려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해야 하지만, 국내에는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정자를 받을 시스템이나 규정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종종 사회문제가 되는 불법적인 고가의 정자매매도 여기서 출발한다. 병원에 없는 정자를 구하기 위해 난임 부부가 직접 정자 제공자를 찾아 나서면서 빚어지는 일이다.

국내에서는 이렇게 거래된 정자가 각 병원에서 난임치료에 얼마나 이용됐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비배우자 인공수정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는 차원에서라도 비배우자의 정자를 보관해뒀다가 불임치료에 쓸 수 있는 '공공정자은행'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자 기증을 활성화해 출산율을 올리면서 불법적인 정자매매도 줄이기 위함이다.

세계 각국은 이미 정자 관리를 위한 법률이나 지침을 제정해 운용 중이다. 미국은 1986년 미국생식의학회에서 정자의 선별, 동결보존과 비배우자 인공수정에 관한 표준운용지침을 제정했다. 영국은 1900년에 제정된 인간수정 및 배아에 관한 법률로, 프랑스는 1994년에 만든 생명윤리법에 따라 각각 정자은행을 운영 중이다.

일본도 일본산부인과학회, 후생노동성, 일본생식보조의료표준화기구 등이 관여하는 표준작업지침을 근거로 비배우자 인공수정을 시행 중이고, 중국은 2001년 정자관리법을 제정한 이후 기증 정자를 국가 자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2016년 비영리공익재단인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이사장 박남철)이 출범해 공공정자은행 설립 기준과 운영 지침 등을 마련 중이지만, 실제 공공정자은행 설립은 내년 말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공공정자은행연구원 박민정 박사는 "우리나라는 아직 정자 기증과 관련한 구체적 기준이나 규정이 미비해 기존의 배아와 난자 관련 규정을 준용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일부 학술단체에서 마련한 규정이 있지만 실제 임상에 적용하기에는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자와 난자 수정 관련 그래픽
정자와 난자 수정 관련 그래픽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그나마 지난해 공공정자은행연구원이 불임치료를 위한 정자 기증을 받는다는 신문광고를 낸 이후 모집정원(26명)을 넘겨 46명이 정자를 기증한 점은 고무적이다. 고가의 금전 거래 없이도 타인을 위해 자신의 정자를 기증하겠다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구원은 올해 정자 기증 목표치를 50명으로 늘려 잡고, 11월부터는 이들 정자를 부산대병원에서 실제 난임치료에 사용토록 할 방침이다. 공공정자은행이 출범한 것은 아니지만, 공공 목적의 정자 기증과 난임치료가 국내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보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구원은 기증자에게 공무원 여비 규정과 근로 보상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17만8천원(비숙박)을 줬다고 한다. 정자 기증은 원칙적으로 무상제공이 바람직지만, 국내 정자은행 운영 관리체계가 미흡한 현실을 고려할 때 최소한의 보상은 필요하다는 게 연구원의 입장이다.

비배우자 인공수정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남성 배우자에게 원인이 있는 난임 부부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다. 따라서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난임 부부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문제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난임 환자는 소수자이며 약자다. 또 인공수정을 위해서는 부모가 되고자 하는 난임 부부 외에 제3자가 개입한다. 더욱이 지금은 국가적으로 저출산 극복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위기 국면이라는 점에서 국가의 개입은 문제 될 게 없다.

한국이 저출산에 허덕이면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공공(국가)은 물론이고 상업적인 정자은행조차 못 갖추고 있는 후진성에서 벗어나려면 하루빨리 공공정자은행을 설립해야 한다.

bi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9/07 06:1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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