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칼럼> 마이클 잭슨의 성공과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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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공연 계획을 밝히는 마이클 잭슨 |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논설위원 = "런던 콘서트는 나의 마지막 쇼다. 정말 마지막 커튼콜이 될 것이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지난 3월 5일 런던 콘서트 계획을 밝히면서 기대와 각오를 피력했다. 7월 13일부터 내년 3월까지 50회에 걸쳐 컴백 무대를 갖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질 수 없게 됐다. 공연을 목전에 둔 25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사실 런던 공연은 만신창이가 돼버린 마이클 잭슨이 부활하는 계기가 될지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별명에 걸맞게 1980년대 초반 이후 팝계의 최강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마이클 잭슨은 성공한 연예인이었다. 그러나 인간으로는 불행했다. 그 불행을 연예인의 성공으로 다시 극복해보려 했으나 끝내 무산됐다. 죽음은 그의 이런 소망을 외면한 채 들어주지 않았다. 무대를 떠난 지 8년 만에 세상까지 떠나버린 것이다.
잭슨은 미국사회의 소수자로 태어났다. 흑인계여서다. 하지만 이는 성공으로 가는 연료 또는 자양분 구실을 했다. 1960년대에 남매들이 결성한 그룹 잭슨 파이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가 '벤'(Ben)을 히트시키며 혜성같이 연예계에 떠오르게 된다.
솔로로 독립해 성공가도를 질주한 그의 행적은 익히 잘 아는 바 그대로다. 1982년 발표한 '스릴러'(Thriller)는 무려 5천만 장이 판매되며 팝 역사상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운다. 브레이크댄스, 문워크같은 신출귀몰한 춤을 선보이며 '팝의 황제'로 등극한 게 바로 그때였다.
잭슨의 성공시대는 10여 년 동안 계속됐다. 가요팬들은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환호작약했다. '배드'(Badㆍ1987년), '데인저러스'(Dangerousㆍ1991년) 등의 음반으로 지금까지 무려 7억5천만 장의 음반을 팔아치웠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그래미상도 열세 번이나 받았다.
거침없이 날아오르던 잭슨은 1993년 성추행 혐의로 피소되면서 날개가 꺾였다. 특히 어린이 성추행 혐의는 그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 결국 무죄 판결이 나긴 했지만 2003년에 또다시 이런 혐의로 기소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뿐 아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다가 파경을 맞았다. 이후 성형수술 병원의 간호사와 재혼해 두 아이를 뒀으나 역시 이혼으로 끝났다.
잦은 성형수술은 그를 세간의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렸다. 혼돈 속에 소송이 잇따랐고, 그 와중에 명예와 돈을 잃었다. 빚도 눈덩이처럼 불어가며 파산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해 11월 그토록 아꼈던 캘리포니아 대저택 네버랜드를 넘겨야 했고, 지난 4월에는 애장품마저 경매에 내놓는 수모를 겪었다.
50여 년 동안의 생애를 그는 뜨겁게 살았다. 세계무대를 주름잡을 만큼 성공한 초대형 스타였다. 한편으론 자기정체성의 혼란 속에 발버둥친 비운의 인간이기도 했다.
잭슨의 콘서트 열기로 뜨거워야 할 7월이 가깝다. 하지만 이 계절은 가버린 비운의 스타를 되새기는 추모 열기로 채워질 듯하다. 애도의 물결 속에 치러지는 '마지막 커튼콜'이 될 것이다. 영혼의 세계에서 진정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기 기원한다.
ido@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9/06/26 11:2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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