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聖 허준과 불멸의 의학서 동의보감>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된 동의보감(東醫寶鑑)은 17세기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한 의학서로 전통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동의보감 편찬을 주도한 허준(許浚.1539-1615)은 소설과 드라마 등을 통해서도 일반에도 잘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 소설과 드라마는 기본적으로는 사실(史實)에 바탕을 두면서도, 극적 효과 등을 위한 각종 픽션을 가미하는 바람에 허준과 동의보감을 호도하는 측면도 있다.
양천 허씨 가문인 허준이 서자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그가 어떤 경로로 의관이 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 가문 족보인 '양천허씨세보'에는 허준이 1574년(선조7년) 의과에 급제했다고 하고 유희춘이 쓴 '미암일기'에는 미암 유희춘이 1569년(선조2년) 이조판서 홍담에게 허준을 내의원에 천거해 의관이 되도록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허준은 양예수 등과 함께 선조를 진료한 공으로 여러 차례 상을 받기도 했고 1590년에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해 이듬해에는 서자로서는 파격적으로 당상관 반열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 갈 때는 어의로 선조를 모셨고, 그 공을 인정받아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됐다.
1606년에는 양평군(陽平君)이란 작호와 함께 정1품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라는 더욱 파격적인 품계를 받았다.
1596년 '조선의 실정에 맞는 의서를 편찬하라'는 선조의 명을 받고 동의보감 편찬에 착수했지만 정유재란이 일어나 편찬이 보류되기도 했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어의로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주로 유배됐다가 곧 풀려나 광해군의 어의로 활동하면서 의서 편찬을 계속해 1610년 동의보감의 집필을 끝냈고 1613년(광해군 5년) 내의원에서 초간본을 간행했다.
허준은 이밖에도 맥학 관련 의서인 찬도방론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 일반 백성이 볼 수 있도록 한글로 쓴 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 등의 의서를 많이 저술했다.
동의보감은 국내 의서인 의방유취(醫方類聚)나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비롯해 중국 의서 등 수백종의 의서를 참고해 당시까지의 동양의학을 집대성했다.
동의보감은 국가가 주도해 편찬한 의학서란 특징을 가진다. 선조의 명으로 동의보감의 편찬을 위한 편서국(編書局)이 설치돼 양예수, 정작 등이 기초를 마련했으며 어의였던 허준이 편찬을 완료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물재료와 치료기술을 자세히 싣고 있으며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한다는 양생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개진했다.
내경(內景), 외형(外形), 잡병(雜病), 탕액(湯液), 침구(鍼灸) 등 총 5편 25책으로 구성됐다.
이 동의보감은 전통시대에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널리 유통된 의학의 '스테디셀러'였다. 특히 콧대 높은 중국 본토에서도 많이 읽혔다는 사실은 동의보감이 갖는 세계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한다.
이번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동의보감의 세계적 보편성을 증명한 쾌거이긴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동의보감은 그 훨씬 이전에 '세계의 의학서'이자 '불멸의 의학서' 반열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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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y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9/07/31 08:1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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