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가 영친왕 부부에게 보낸 엽서>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최근 관련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화제가 된 고종의 고명딸 덕혜옹주(1912~1989). 1925년 일본으로 유학한 그는 1929년 새해를 맞아 오빠인 영친왕(1897~1970)에게 일본어로 쓴 엽서를 보낸다."오라버님. 밝은 기분으로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신 것을 더욱더 하례 드립니다. 설날. 덕혜."
옹주는 영친왕비에게도 엽서를 따로 보냈다. "언니 보세요. 밝은 기분으로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신 것을 더욱더 하례 드립니다"
오빠에게는 짤막한 새해 인사를 남겼지만, 새언니에게는 엽서 뒷면에도 안부를 자세하게 쓰면서 친근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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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조선에 돌아온 이래 한가로이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은 생각 외로 따뜻하고 어제까지 맑게 개었습니다만 오늘은 드물게 눈이 내렸습니다. 일간 만나 뵐 수 있는 것을 낙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정계옥 유물과학과장은 "같은 날 쓴 엽서인데 오빠에 비해 새언니에게는 감정표현을 더 자세하게 하고 있다. 영친왕비가 여성이라 덕혜옹주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듯하다"고 풀이했다.
1931년 쓰시마섬 도주인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혼인한 덕혜는 남편과 함께 영친왕 부부에게 안부를 묻는 엽서를 보냈다.
'9월1일'이라고만 적혀 정확한 작성 시기를 알 수 없는 이 엽서에 덕혜옹주는 "올해는 유난히 더웠습니다만, 세 분께서 아무런 별고 없으시다니 무엇보다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중략) 도쿄도 어느샌가 점차 가을다워져서 메구로(지명) 부근의 누추한 집에 줄곧 벌레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고 썼다.
18일 국립고궁박물관이 공개한 영친왕 일가의 희귀 자료 가운데는 영친왕의 동생인 덕혜와 조카 등 친지들이 보낸 엽서와 편지가 눈길을 끌었다.
영친왕의 형인 의친왕의 장남 이건(1909~1991)도 엽서를 여러 장 남겼다. 일본 육군 장교가 된 이건은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숙부와 숙모에게 엽서로 소식을 전했다.
이건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쓴 엽서는 의친왕 등의 소식을 알리고 있다. "저는 12일 무사히 경성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의 더위 또한 심해서 모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대비전하를 비롯해 모두 별고없으며 아버지께서는 삼계동의 운현궁 별저에 머물고 계십니다."
그는 같은 엽서에서 고국을 방문한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고향에 돌아오는 것은 그리운 산하를 접하는 기쁨이 있지만 한편 여러모로 불쾌한 일도, 마음 아픈 일도 있습니다."
의친왕의 차남으로 1945년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희생된 이우(1912~1945)는 해수욕장 풍경을 담은 엽서에 가마쿠라의 생활을 전한다. "가마쿠라에는 꽤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매일 날씨가 좋아서 바다에서 놀고 있습니다. 꿈틀거리는 사람들과 비치파라솔로 해안은 모두 덮여 있습니다. 입추라고는 하지만 이름뿐으로 아직 여기는 여전히 덥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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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의 손자인 이한주가 보낸 편지는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왕실 사람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제가 손을 자동차 문에 끼어 손가락 세 개가 몹시 뭉그러져 버렸습니다. 병원에 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비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본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오로지 할아버님밖에 상담할 데가 없습니다. (중략) 무리한 부탁이지만 들어주십시오."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양진조 연구관은 "영친왕 일가가 소장한 엽서나 편지 등은 오래된 일본어로 쓴 것이 대다수라 번역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아직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는 못했다"면서 "앞으로 당시 영친왕과 친지들의 처지 등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imyg@yna.co.kr
<사진 설명 = 덕혜옹주가 영친왕에게 보낸 엽서, 이우가 영친왕 부부에게 보낸 엽서/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0/02/18 15:14 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