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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칼라튜 "北인권 `관제탑' 역할할 것"
그레그 스칼라튜 `美 北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 북한의 체제 모델을 추종하던 동유럽의 독재자 차우세스쿠 정권이 붕괴한 후 선발된 루마니아의 첫 한국 국비 장학생이 20여 년이 흘러 미국의 북한인권단체 수장으로 변신했다. 지난 8월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그레그 스칼라튜씨가 인터뷰하는 모습. 2011.10.19 << 국제뉴스부 기사 참조 >> sgh@yna.co.kr photo@yna.co.kr

"北 정치범수용소도 핵과 같은 'CVID' 방식으로 폐지해야"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 미국의 대표적 북한인권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신임 사무총장은 18일(현지시간) "지금까지 해왔던 북한인권 연구와 저술 활동에서 나아가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결합해 북한인권위를 북한인권문제에 관한 미국 내 `관제탑' 역할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루마니아 출신으로 차우셰스쿠 공산 정권 붕괴 후 1990년 루마니아인으로서는 첫 한국 유학생으로 서울에서 공부해 한국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북한 김일성 체제를 모델로서 추종했던 차우셰스쿠 정권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북한과 분단된 한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국제인권법을 공부한 것은 북한인권을 다루게 된 운명 같은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지난 8월 공식 취임한 후 미 의회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북한인권상황을 증언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음은 스칼라튜 사무총장이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 일문일답.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은 북한과 어떤 점에서 닮았나.

   ▲루마니아는 1965년 차우셰스쿠 독재정권 등장 이후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 중 북한과 가장 가까운 나라였다. 1971년 북한을 방문한 차우셰스쿠는 북한식 독재자 개인숭배, 북한식 주체사상에 첫눈에 반해 루마니아에도 같은 제도를 도입하려 했다.

   차우셰스쿠는 1977년 대지진이 일어난 후 1천명 이상이 사망하고 건물들이 무너지자 부쿠레슈티를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평양처럼 대중들이 모여서 독재자를 숭배할 수 있는 커다란 광장과 커다란 건물이 있는 도시로 바꾸려 시도했다.

   그 계획 때문에 외채를 많이 빌리면서 경제가 망하고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결국 1989년말 독재정권이 무너졌다. 당시 나는 부쿠레슈티 대학 영문과 1학년이었다.

   --북한 문제 중에서도 특히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이유는 여러 가지였을 것이다. 루마니아 공산주의 독재체제에 살면서 한국말로 `한'이 맺혔었다. 독재체제로 어려운 상황이 많았고, 어려움 때문에 고생한 사람이 많다.

   1990년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후 오랫동안 외국인 친구들한테 옛날 루마니아에 대해서 얘기하지 못했다. 자랐던 환경이나 방식이 달라서 창피해서 얘기 안 했을 수도 있다. 달라진 환경에 어울려야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얘기하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서 루마니아와 북한의 비슷한 점을 생각하며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자유아시아방송에서 대북 방송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며, 옛 루마니아 상황에 대해서도 얘기하게 됐다.

   북한과 닮은 루마니아에서 자라고 배운 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고, 한국에서 10년간 살면서 북한 문제에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됐으며 국제법, 국제인권법, 국제기구 분야를 배우면서 더욱 체계적인 관심을 두게 됐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가 하는 일은.

   ▲북한인권위는 지난 2002년 10월부터 연구과 저술 활동을 주로 해오면서 북한 인권상황을 개선하는 노력을 해왔다. 지금까지 북한인권과 관련한 보고서를 9편 발표했다. 정치범수용소, 납북자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현재 4개의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그레그 스칼라튜 `美 北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 북한의 체제 모델을 추종하던 동유럽의 독재자 차우세스쿠 정권이 붕괴한 후 선발된 루마니아의 첫 한국 국비 장학생이 20여 년이 흘러 미국의 북한인권단체 수장으로 변신했다. 지난 8월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그레그 스칼라튜씨가 인터뷰하는 모습. 2011.10.19 << 국제뉴스부 기사 참조 >> sgh@yna.co.kr photo@yna.co.kr

   그동안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한 연구, 저술 분야에서 북한인권위는 거의 완벽하게 활동해왔다고 자평하고 싶다.

   --향후 북한인권위가 나아갈 방향은.

   ▲앞으로는 그동안의 연구, 저술활동의 성과를 발판으로 세미나, 콘퍼런스 등 활발하게 홍보활동을 하면서 미국뿐 아니라 한국, 제3국에 북한인권 침해 정보를 전달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북한인권위가 연구, 저술활동에서 나아가 대외 활동까지 결합시키고, 네트워크 활동을 강화시켜가면 북한인권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의 '관제탑'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한반도 통일이 언제 닥칠지 모르고, 북한의 급변사태가 도래할 경우 북한 인권분야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도 고려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내년 봄에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관한 콘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이다.

   --루마니아에서 자랄 당시 북한에 대한 느낌은 있었나.

   ▲차우셰스쿠와 김일성이 정상회담을 할 때 신문과 방송에서 뉴스로 북한을 접했다. 1980년대 루마니아 내 정전이 잦아지자 하나뿐인 TV 방송도 하루에 2시간밖에 안 했는데 그나마 뉴스는 온통 독재자 찬양 얘기였다. 그때 북한 얘기들이 더러 나왔다.

   당시 루마니아와 북한의 관계는 민족들끼리 우정보다는 독재자들끼리의 우정이었다. 사실 루마니아 사람이 북한사람 만날 기회도 별로 없었다.

   부쿠레슈티대학에도 북한 유학생이 있었는데, 자기들끼리만 어울리고 루마니아 학생들과 얘기 잘 안했다. 1989년 공산체제가 무너진 후 북한 유학생들은 모두 철수했다.

   --차우셰스쿠 정권이 북한을 모델로 하려고 했던 일화가 있나.

   ▲김일성 주체사상을 본떠서 차우셰스쿠식 주체사상을 추진했다.

   북한이 외부의 인권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외무성 산하에 '인권상무조'(대책반)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처럼 루마니아에도 당시 인권유린상황을 왜곡하고 감추려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북한인권문제가 북한문제 의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북한의 비핵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의 핵 폐기를 얘기하는 것처럼, 'CVID' 방식의 북한 정치범 수용소 폐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도 국제사회에서 참여하고 책임 있는 국가로 활동하려면 가장 큰 인권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북한 내 급변상황이 생긴다면 북한 인권전문가의 역할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에 경제개혁의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는 않지만, 만약 북한이 정치, 사회 개혁 없이 경제개혁, 경제개발만 추진하려 한다면 인권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북한 인권운동가들이 주시해야 할 상황이다.

   sgh@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10/19 08:5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