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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형인 후지코시 근로정신대의 악몽>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정주 할머니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일제 강점기 후지코시(不二越)강재 주식회사에 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된 김정주(81) 할머니. 김 할머니는 2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에 있는 후지코시 본사를 찾아갔다가 6시간 동안 직원들에게 감금당했다고 밝혔다. 공업용 기계와 산업용 로봇 등을 생산하는 후지코시강재는 1928년 설립됐으며,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1945년 한반도에서 12~16세 소녀 1천89명을 근로정신대로 동원해 혹독한 조건 속에서 노역을 강요했다.  <<사회부 기사 참고>> 2011.10.23.  pulse@yna.co.kr

김정주 할머니 "회사 찾아갔더니 감금…사죄도 없어"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6시간 동안 물도 못 마시게 하고 화장실도 못 가게 하더라고. 화장실이 바로 옆인데 말이야. 근로정신대로 데려와서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더니 이게 한 몸을 대하는 태도냐고."
일제 강점기 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된 김정주(81) 할머니는 후지코시(不二越)라는 단어를 듣자 언성이 높아졌다. 김 할머니는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2월 일본 도야마(富山)에 있는 후지코시강재 주식회사 공장에 근로정신대로 끌려갔다.

   공업용 기계와 산업용 로봇 등을 생산하는 후지코시강재는 1928년 설립됐으며,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1945년 한반도에서 12~16세 소녀 1천89명을 근로정신대로 동원해 혹독한 조건 속에서 노역을 강요했다.

   김 할머니는 2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에 있는 후지코시 본사를 찾아갔다가 6시간 동안 감금당한 일을 털어놨다.

   "함께 간 사람들이 회사 앞에서 집회할 때 경비들 몰래 안으로 들어갔지. 후지코시가 몇 층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15층으로 올라갔어. 알고 보니 17층이네. 올라가려 하니 엘리베이터는 안 움직이고 경비들과 젊은 직원들이 나타나더라고."
나타난 직원들은 김 할머니를 붙잡고 끌어내려 하다 할머니가 거세게 저항하자 결국 주위를 둘러싸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정오께부터 오후 6시께까지 그렇게 갇힌 채 물을 마시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하도 기가 막혀 `그럼 여기서 용변을 보겠다'고 했더니 화들짝 놀라 또 막더라고. 1층으로 내려가서 화장실에 가라는 거야. 내가 후지코시 사장 한 번 만나려고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너무 힘들고 분해 결국 울고 말았지."
1945년 2월부터 해방까지, 김 할머니는 마치 교도소처럼 가시 철망으로 둘러싸인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굶주림과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노역해야 했다. 밤이면 미군의 공습을 피하느라 잠잘 틈이 없었다. 식사는 아침과 저녁은 멀건 된장국에 밥 한술, 점심은 빵조각 하나뿐이었다.

   할머니는 "공습을 피했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폭격을 당해 참혹한 모습으로 숨진 시신들을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해방된 줄도 몰랐다"며 "배가 고파 숙소 주변에 난 풀을 뜯어 먹다 잘못돼 머리가 빠진 사람들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1945년 11월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근로정신대를 일본군 위안부와 혼동한 주변의 시선은 따가웠다. 남편과 결혼 생활마저 파경을 맞고는 행상을 하며 어렵게 삶을 꾸려 왔다. 그나마 손자가 착하게 잘 크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김 할머니가 후지코시를 찾아 근로정신대 강제동원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 참석차 일본에 갈 때면 사망한 피해자의 넋을 위로하려 회사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우여곡절 끝에 사장 집 주소를 알아내서는 직접 집에 찾아가 우편함에 편지를 넣고 오기도 했다. 회사 앞에서 후지코시 직원들을 만나 붙잡고 이야기도 해봤다. 대답이 온 적은 없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손해배상 협의를 하겠다고 말이나 했지. 후지코시는 지금까지 보상은커녕 사과 한마디 없어. 우리한테 사죄를 못 하겠으면 한국 정부에라도 해야 할 것 아냐. 그 일로 내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어."
오는 28일 또 일본을 방문하는 김 할머니는 "내가 대체 왜 일본에 끌려가서 그 고생을 했고 돌아와서도 설움 받아야 했는지 모르겠다"며 "후지코시나 일본 정부, 한국 정부 모두 피해자들이 죽기만 바라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유족 등 23명은 지난 2003년 일본 정부와 후지코시를 상대로 미지급 임금 등 1억엔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며 2차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 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한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은 포기됐다"는 취지로 소를 기각, 상고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pulse@yna.co.k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10/23 07:38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