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포클랜드제도> AP=연합뉴스)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영유권을 놓고 벌인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한지 올해로 30년째지만 상흔은 여전하다.
전쟁은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라스 말비나스'(말비나스 제도)라고 부르며 상륙을 강행하면서 촉발돼 907명의 사망자를 낸 채 단 74일만에 끝났지만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30년전 아르헨티나군이 발을 내디딘 스탠리 시 외곽의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해변 백사장엔 펭귄만 돌아다닐 뿐, 섬 주민들은 아르헨티나군이 매설한 지뢰 속에 살면서 여전히 아르헨티나로부터 보호해줄 강력한 수비대 주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영유권을 양도받기 위해 영국에 압력을 가하자는 움직임을 강화하면서 다시 자신들을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뉴스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포클랜드 주민인 토니 스미스 씨는 "30년이면 오랜 세월이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어제와 같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위협하는 순간, 사람들은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것"이라며 "그들(아르헨티나)이 다시 군사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믿지 않지만 그들이 하려는 다른 일 역시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인 역시 자신들을 피해자로 여기고 있다. 비록 포클랜드 제도가 이제 식민지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과거 제1의 식민지배국으로서 영국의 역할에 분노를 표하는 한편 전쟁을 일으킨 당시 아르헨티나 군사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많은 아르헨티나인들이 여전히 '라스 말비나스'를 자국의 영토로 확신하고 있으며 이런 인식은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민족주의적인 캠페인에 의해 힘을 얻고 있다.
당시 19살의 나이로 해군에 징집됐던 마르셀로 포조 씨는 "이는 우리에겐 매우 감정적인 문제"라면서 "우리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말비나스가 아르헨티나의 영토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나 역시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조나 다른 아르헨티나 참전용사들이 당시 자국내 좌파 '불온세력'과 싸우기 위해 징집돼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파견됐고 장교들의 온갖 학대와 비인간적 대우에 시달렸다는 점에서 감정은 훨씬 복잡하다.
포클랜드 주민들이 '광복절'로 기리는 1982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군이 항복하고 귀국했을 때 많은 용사들은 미국의 베트남 참전 용사 같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대대적인 환영행사도 없었고 누구도 그 치욕적인 사건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참전용사들에게 참전연금이 지급된 것은 10년 뒤였고 정신보건 치료는 439명의 참전용사가 자살한 뒤인 지난달에야 시작됐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995년 이들을 상대로 실시한 정신건강 설문조사에서는 80% 이상이 근심과 조바심에 시달리고 있으며 58%가 자주 우울증을 느낀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조사를 실시했던 심리학자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솔라노 씨는 "역사상의 다른 사실들과 마찬가지로 말비나스 전쟁도 누구도 자세히 조사하길 원치않는 모호한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생존자는 남았고 잊혀지기 힘든 흔적들도 남아있다"고 말했다.
당시 전사한 649명의 아르헨티나군과 255명의 영국군 가운데 수백명의 시신은 포클랜드제도에 분산돼 묻혀있다. 많은 아르헨티나 병사들에게는 인식표조차 없어 이들의 묘 가운데 절반가량의 묘비엔 "신만이 아는 자"라는 묘비명이 붙어 있다.
이런 포클랜드전 발발 30주년을 맞아 1일 스탠리에서는 아르헨티나군의 침공 바로 직전에 결성된 포클랜드 방위군의 기념행진이 예정돼 있으며 아르헨티나 최남단 티에라델푸에고주(州)의 주도인 우수아이아에서는 충혼탑 앞에서 철야 집회 및 기도가 열린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역시 2일 우수아이아 집회에 참석, 참전용사들을 영웅으로 기리고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영유권을 재차 강조할 예정이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2/04/01 16:36 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