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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 처음 넘어 평양폭격 美해군조종사…아들도 代이어>

6·25 첫 공중작전 윌리엄 고트니씨…아들 조종사 거쳐 美해군항모사령관

"평양진격후 활주로부터 집중폭격…북한 공군 전혀 힘 못써"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서해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우리는 38선을 최초로 넘어 평양으로 향했고 도착 직후 활주로부터 집중 폭격했다. 야크기를 앞세운 북한 공군은 우리 제트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6·25 한국전쟁 당시 38선을 처음으로 넘어 평양 공중폭격에 나섰던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의 증언이 나왔다.

한종우 한국전 참전용사 디지털기념관 재단이사장은 오는 25일 한국전쟁 발발 64년을 맞아 당시 첫 공중전에 참여했던 참전용사 윌리엄 고트니(90)씨와 인터뷰한 내용을 22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공개했다.

고트니씨에 따르면 6·25 전쟁 발발 직후 서태평양에서 작전 중이던 미 해군 항공모함은 밸리 포지(Valley Forge)호가 유일했다. 당시 미 공군은 한국전에 개입할 준비가 전혀 안 됐다. 이에 따라 미 해군 항공모함에 탑재된 전투기들이 개전초기 공중전 임무를 맡는 것으로 상부의 결정이 내려졌다.

필리핀 해협에서 작전 중이던 밸리 포지호는 한반도 해역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받았고 일주일후 서해에 도착한 뒤 해안에서 100마일 떨어진 곳에 머물렀다. 당시 해군 중위였던 고트씨를 비롯한 항공모함 사령관들은 한국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지도도 없어 38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후문이다.

출격일은 7월3일이었다. 전체 항공편대를 지휘하는 지휘관과 그의 호위를 맡은 고트니씨가 북한 진격의 최선두에 섰다. 당시 항모에는 신형 제트기 20대와 2차 세계대전때 활약한 프로펠러 전투기인 콜세어 F4U 20대, AD 스카이레이더 전폭기 10대가 있었다. 고트니씨는 그루먼 F9F 팬더라는 신형 제트기를 타고 38선을 최초로 넘어 북쪽으로 진격했다.

평양에 도착한 항공편대들은 가장 먼저 북한 전투기들이 운집한 평양의 활주로부터 집중 폭격했다. 당시 활주로에 있던 소련제 프로펠러 기종인 북한 야크(YAK)기 여러대가 순식간에 폭파됐다. 북한군의 대공방어망의 주력은 40mm대공포였으나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고트니씨는 "북한 야크기들을 폭파하던 개전 초기에는 적기와의 공중전이 전혀 없었다"며 "당시 북한지역 비행장에 있던 많은 적기를 폭격해 큰 성과를 올렸다"고 회고했다.

평양공격 이후 연료급유차 항모로 되돌아온 항공편대들은 인천과 서해안을 중심으로 작전을 계속했다. 주요 임무는 남하하는 북한군과 탱크, 보급차량, 기차 등을 폭격하는 것이었다. 특히 북한 보급기차 54개 차량을 파괴하는 전적을 올리기도 했다.

같은해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에는 북한군의 주요 진지를 폭격하는데 주력했다. 당시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압록강 철교를 폭파할 당시 중국쪽 부분은 폭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철교는 파괴됐으나 압록강이 얼어붙어 중공군이 북한에 진입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고트니씨는 회고했다.

고트니씨는 "당시 미 해군은 겨울 군복을 지급받지 못해 항공모함 간판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의 경우 추운 날씨로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말했다.

1924년 미국 켄터키주 태생인 고트니씨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뒤 1972년 전역했다. 1961년 미국 7함대에서 근무하며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고트니씨는 "전쟁당시 파괴할 만한 건물조차 남아있지 않던 한국이 짧은 시간에 이룩한 산업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이름을 쓰는 아들 역시 부친의 길을 따라 해군 전투기조종사가 된 점이다. 현재 해군 4성장군인 아들 고트니(59) 제독은 7함대를 제외하고 전체 해군전력을 총괄하는 미 해군 항공모함 사령관을 맡고있다. 고트니 제독은 부친과 함께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아버지는 처음에는 너무 자주 이사를 가는 것이 싫어서 해군 조종사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트니 제독은 지난 4월말 버지니아 주 노퍽에서 한종우 이사장과 박승춘 보훈처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세계 군악대 경연대회에서 자신의 부친이 한국전 참전용사라고 소개했고, 한 이사장의 요청으로 인터뷰가 이뤄졌다. 한 이사장은 인터뷰 내용을 유튜브(http://youtu.be/C12o6O9R1aY)에도 게시했다.

한편 한국전 참전용사 디지털기념관 재단은 다음 달 25일부터 28일까지 3박4일간 워싱턴DC에서 제2회 한국전 참전용사 후손 컨벤션을 개최할 예정이다.

지난해 한국전 참전용사의 유업을 이어가기 위해 참전용사 후손들을 초청하는 사업을 벌였던 재단은 올해부터 미국 역사교과서에 매우 짧게 언급된 한국전쟁 기록을 확대하기 위한 청원운동에 돌입한다.

rhd@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6/23 02:2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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