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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가 '담론'으로 들려주는 삶과 철학 이야기

마지막 강의를 책으로 출간…'강의' 후 10년만의 저서
"변방은 창조의 공간이다. 내게 감옥은 '대학'이었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우리는 문사철이라는 인식틀에 갇혀 있다. 언어와 개념, 논리라는 추상화된 그릇으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담을 수 없고 세계를 온당하게 인식할 수도 없다. 넓은 바다를 '바다'라는 글자에 넣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런 인식틀을 깨는 게 공부의 시작이다."

"내가 (교도소에서)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다. 길어야 2시간밖에 못 쬐는 신문지 크기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다. 겨울 독방의 햇볕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였고 생명 그 자체였다."

온 몸으로 감당한 시대의 고통을 사색과 진리로 승화시켜온 이 시대의 지성인 신영복(74)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또 다시 커다란 울림을 안겨주고 있다. 저서 '담론'을 통해서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동안 복역했던 신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등의 명저로 존재와 사회, 그리고 역사와 현실에 대해 깊으면서도 잔잔하게 자신의 견해를 설파해왔다.

이번 저서 '담론'은 그 '사색'과 '강의'를 통합적으로 들려주는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동양고전의 명저인 '시경', '주역', '논어', '맹자', '한비자'를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읽어내는 제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과 20년 20일 동안의 수형생활에서 보고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바를 엮은 제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로 구성돼 있다.

신 교수는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이듬해인 1989년부터 2014년까지 25년간 대학강단에 섰다. 이 책은 성공회대학 강의를 녹취한 원고를 저본으로 해 저자의 견해를 제목처럼 물 흐르듯 담담하게 풀어냈다. 간명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의 책 제목과 표지처럼 겸손하면서도 강건한 정신이 고도의 절제미 속에 깃들어 있는 것. 저자는 더이상 강단에 서지 못하는 미안함을 이 책으로 대신코자 한다고 말한다.

신 교수의 강의는 하나하나가 촌철살인의 치열함으로 진리의 정곡을 추상같이 찌른다. 동서고금을, 생사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유와 인식의 세계는 만고풍상을 헤치고 깨달음에 이른 지성인의 풍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예컨대, 공부(工夫)란 한자어가 상징하듯 하늘(天)과 땅(地)을 연결하되 그 주체는 사람(人)이라며 "천지를 사람이 잇는 이 공부는 바로 고행이 전제된 구도(求道)"라고 그는 설파한다. 공부가 고생 그 자체이되 고생하면 세상을 잘 알게 된다는 것. 세상에 공부 아닌 것이 없고 공부하지 않는 생명 또한 없다며 달팽이도 여름의 폭풍 속에서 세찬 비바람을 견디며 열심히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모름지기 공부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존재 형식이라는 얘기다.

오래된 세계 인식틀인 문사철(文史哲)과 시서화(詩書畵)에 대해서도 새로운 각성을 촉구한다. 우리의 생각은 고전문학, 역사, 철학의 이성훈련 공부에 과도하게 갇혀 있다며 "언어라는 그릇은 지극히 왜소하다. 작은 컵으로 바다를 뜨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컵으로 바닷물을 뜨면 그것이 바닷물이긴 하지만 이미 바다가 아니다"고 경계한다. 따라서 문사철을 뛰어넘는 감성훈련 공부인 시서화로 세계를 확장시켜 언어를 초월하고 사실을 초월하는 진실을 창조하자고 제안한다.

한민족과 한국사회의 고정된 인식틀에 대한 비판도 직설적으로 날카롭다.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는 '화동(和同) 담론'을 빌려서다. 신 교수는 "유가학파의 정치사상이 담긴 화동 담론은 평화 공존을 주장하되 흡수합병이라는 패권적 국가경영은 반대한다"고 말한다.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統一)'은 '통일(通一)'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평화 정착, 교류 협력, 그리고 차이와 다양성의 승인이 바로 통일(通一)이라면서 이 통일(通一)의 길을 확실히 다져간다면 통일(統一) 과업의 90%는 달성된 것과 같다는 것. 우리의 과제는 통일(通一)에서 통일(統一)로 가는 과정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신 교수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 전 언급한 '통일은 대박'이라는 관념은 경제주의적 발상으로 근본은 동(同)의 논리라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눈물겨운 화해이면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가슴 벅찬 출발이 대박처럼 갑자기 다가올 때가 오히려 파탄이고 충격이라며 자신은 그 같은 정서와 사고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

불안사회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묵가학파의 사상으로 모색해본다. 묵가사상의 핵심은 신분에 관계없이 현자를 천자로 모시는 '상현(尙賢)'과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는 '상동(尙同)',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는 '겸애(兼愛)'다. 세상사람들이 누구도 서로 사랑하지 않고, 다수는 소수를 겁박하고, 부자는 빈자를 업신여기고, 귀족은 천민에게 오만하게 대하고, 간사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속이게 될 때 세상은 화찬(禍簒)과 원한으로 가득 찬다면서 그 근본해결 방법은 서로가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이며 그럴 때 바야흐로 평화는 이뤄진다는 것. 묵자가 겸애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이유다.

누구나 차별없이 대한다는 점에서 법가사상도 다시 한번 숙고해보자고 저자는 권면한다. 고래로 통용되는 '예불하서인(禮不下庶人·예는 서민에게 내려가지 않고) 형불상대부(刑不上大夫·형은 대부에게 올라가지 않는다)'를 상기시키면서다. 이는 약자의 불법과 범죄에 대해서는 최대한 냉혹하게 다루면서도 강자의 그것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곤 하는 우리의 현실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한다. 정치인이나 경제사범은 그 처벌도 경미하고 형을 받을지라도 얼마 후 사면되기 예사였다. 병동에 있다가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거나 휠체어로 검찰과 법정에 출두하는 게 다반사가 아니던가.

감옥이 곧 대학이었다는 신 교수는 교도소에서 보낸 20년 세월은 실수와 방황과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배움과 깨달음의 여정이기도 했다며 감회에 젖는다. 그 고통과 불안의 시간과 공간이 사회학의 교실이었고, 역사학의 교실이었고, 최종적으로 인간학의 교실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가슴이 절로 뭉클해지는 대목이다.

"변방은 창조의 공간입니다. 기존의 틀 속에 갇히지 않고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을 '스스로를 추방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합니다. 중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오싱젠은 추방은 독립이고 독립이 자유라고 합니다. 어린이는 혼자일 때 비로소 어른이 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감옥은 최고의 변방입니다. 각성의 영토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교실입니다. 수많은 비극의 주인공들이 있고, 성찰의 얼굴이 있고, 환상을 갖지 않은 냉정한 눈빛이 있습니다. 감옥은 '대학(大學)'입니다."

돌베개. 428쪽. 1만8천원.

id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5/04/23 11:2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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