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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연일 충돌…예루살렘의 '뇌관' 알아크사 사원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달 들어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시위대의 충돌이 격화된 알아크사 사원은 역사적으로 양측간 무력 분쟁의 시발점이 된 예민한 곳이다.

영어식 표기로 템플마운트(아랍어 하람 알샤리프·고귀한 성소)로 불리는 동예루살렘의 고지에 있는 이 사원은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이슬람에서 제3의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무슬림은 이슬람 예언자 모하마드가 천사 가브리엘과 함께 하룻밤 만에 메카에서 예루살렘으로 날아와(이스라) 승천해 천국을 갔다왔다(미라즈)고 믿는다.

7세기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슬람 제국 우마이야 왕조는 8세기 초 이곳에 알아크사 사원을 처음 지었다.

알아크사 사원 전경(AFP=연합뉴스자료사진)
알아크사 사원 전경(AFP=연합뉴스자료사진)

템플마운트의 황금돔사원(AFP=연합뉴스자료사진)
템플마운트의 황금돔사원(AFP=연합뉴스자료사진)

유대교에서도 템플마운트는 성지다.

구약성경엔 아브라함이 차남 이삭을 신(야훼)에게 바치려고 했던 곳이 모리아산으로 기록됐는데 유대인은 템플마운트가 이 산이라고 여기고, 이후 솔로몬왕이 지은 성전도 이 곳에 있었다고 믿는다.

이렇게 두 종교와 민족 모두의 양보할 수 없는 성지이다 보니 이를 둘러싸고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에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종교적으로 예민한 템플마운트와 이곳에 있는 알아크사 사원, 바위돔(황금돔 사원)의 관리를 독립 이슬람 기구인 '이슬람 아우카프'에 맡겼다.

이스라엘 군경의 감시를 받았지만 팔레스타인 측은 이 기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통제할 수는 있었다.

알아크사 사원은 1990년 이스라엘 극우단체가 템플마운트에 구약시대의 선지자 에제키엘(에스겔)이 환상에서 본 유대교 성전을 짓는다고 발표하면서 충돌이 본격화된다.

당시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해산하면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인 20여명을 죽였다.

10년 뒤 2000년엔 더 큰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당시 이스라엘 우익 민족주의 야당 지도자 아리엘 샤론이 1천명의 호위병력을 이끌고 알아크사 사원을 전격 방문했다.

이는 5년간 이어진 제2차 인디파다(알아크사 인디파다)를 촉발한다.

최근 알아크사 사원에서 연일 계속되는 양측의 충돌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없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제2차 인디파다 뒤 이스라엘 정부는 치안을 이유로 알아크사 사원에 출입하는 연령과 시간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통제를 강화했다.

그럼에도, 알아크사 사원이 반(反)이스라엘 투쟁의 구심점이 되자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해 11월 사상 처음으로 사원 내부로 병력을 진입시켜 무슬림을 쫓아냈다.

1967년 전쟁으로 빼앗긴 동예루살렘의 최고 성지를 지켜야 하는 팔레스타인과 역시 성지를 회복하고 싶은 이스라엘의 충돌은 좀처럼 돌파구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책을 고수하는 우파 정권이 집권한 이스라엘의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알아크사 사원은 언제라도 폭발을 촉발하는 뇌관일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의 알아크사원 접근을 막는 이스라엘 경찰(EPA=연합뉴스자료사진)
팔레스타인의 알아크사원 접근을 막는 이스라엘 경찰(EPA=연합뉴스자료사진)

알아크사 사원에서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충돌하고 있다(AFP=연합뉴스자료사진)
알아크사 사원에서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충돌하고 있다(AFP=연합뉴스자료사진)

hsk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5/09/29 07:14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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