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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경계에서 드러나는 2차대전의 맨얼굴

신간 '마지막 목격자들'·'HHhH'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광기에 가까운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역이 피로 물든 1940년대의 잔혹사는 이후 문학을 비롯한 모든 문화예술 장르에서 다양하게 변주된 주제였다.

그러나 역사 자체가 어떤 문학작품보다 비극적인 까닭에 픽션의 힘이 역사적 사실을 제압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픽션의 틀을 넘어 문학의 경계를 넓히면서 나치 치하 동유럽의 참상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잇따라 국내에 소개됐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왼쪽), 로랑 비네 [글항아리·황금가지 제공]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왼쪽), 로랑 비네 [글항아리·황금가지 제공]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1985년작 '마지막 목격자들'은 0∼14세의 어린 나이로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벨라루스 출신의 평범한 인물 101명의 목소리를 빌려 참극을 복원한 작품이다. 작가는 전쟁고아 클럽과 고아원 출신 모임 등을 찾아다니며 이들을 인터뷰했다.

"우리는 숲에서 지냈어요. 딸기와 버섯을 따러 갈 때면 아주 무서웠어요. 독일군의 셰퍼드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 그 개들이 사람에게 달려들었거든요. 어린아이들을 물어 죽이고요. 인간의 살에, 인간의 피에 맛을 들인 거죠." (나자 사비츠카야)

인터뷰 당시 중년이 된 전쟁고아들의 삶은 여느 소설이나 영화가 차마 그리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다. 갈리나 피르소바는 배고픔에 귀와 눈이 멀어 고양이를 잡아먹었다. 주변에선 단추를 씹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목격한 한 여자아이는 빵을 훔치다가 들통나자 맞아 죽으면서도 빵을 삼켰다.

"엄마, 우리 마을 사람들이 하늘에 매달려 있어요." 표트르 칼리놉스키는 마을 사람들이 교수형을 당한 장면을 목격하고 하늘에 경계심을 품게 됐다. 야코프 콜로진스키는 독일군의 총탄에 "인간의 뼈가 잘 익은 호박처럼 빠지직 부서지던 것"을 기억한다. 어른들이 눈을 가리고, 이불 속에 숨어 있었어도 나치의 잔혹상은 아이들의 머릿속에 반세기 가까이 각인됐다. 인식 능력이 완전하지 않은 시기의 기억인 탓에 목격담은 오히려 현실에 가깝게 들린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여군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짝을 이룬다. 작가는 참전한 여성들을 취재하면서 아이들 역시 전쟁을 응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그들의 체험을 전하기로 했다.

인터뷰를 산문 형식으로 풀어내는 '목소리 소설' 또는 '소설-코러스' 형식으로 쓰인 이들 작품은 나치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낀 동유럽 변방국, 그곳에서도 최약자인 여성과 아이들의 눈으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다.

프랑스 작가 로랑 비네는 신작 'HHhH'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후계자이자 유대인 말살계획을 주도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암살사건의 막전막후를 밝힌다.

하이드리히는 나치 친위대 정보기관의 책임자였다. 친위대 사령관은 하인리히 히믈러였지만 실질적 지휘자는 '프라하의 도살자'로 불린 하이드리히였다. 책의 제목 'HHhH'는 당시 떠돌던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고 불린다'('Himmlers Hirn heiβt Heydrich.')라는 말에서 따왔다.

1942년 5월 나치 독일 치하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하이드리히가 괴한에 습격당해 중태에 빠진다. 하이드리히는 괴한이 던진 수류탄에 즉사하진 않았지만 이때 생긴 감염으로 1주일 만에 숨진다. 암살범을 찾느라 혈안이 된 나치 점령군에 밀고자가 찾아와 체코 망명정부의 '유인원 작전'을 제보한다. 나치는 요제프 가브치크와 얀 쿠비시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이들이 숨어있는 교회를 습격한다.

줄거리만 보면 첩보전과 무력 전투가 뒤섞인 전쟁 중의 한 사건을 다룬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부 실존인물만 등장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작가는 소설 집필을 위해 관련 인물을 인터뷰한 과정, 역사적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 대한 주관적 견해까지 스스럼없이 노출시킨다.

소설에서 '나'는 1인칭 화자가 아닌 작가 자신이다. "어쩌면 히믈러는 얼굴이 시뻘게졌을 수도 있고(내 상상대로), 얼굴이 새하얘졌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내게는 나름 중요한 부분처럼 생각된다."

작가는 1990년대 프랑스어 교관으로 슬로바키아의 사관학교에서 일했다. 당시 빌린 아파트 근처의 성당 지하실에는 엄청난 수의 총알 자국이 남아있었다. 가브치크와 쿠비시가 '최후 항전'을 벌인 장소다. 하이드리히 암살사건을 취재하고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작품 초반에 일기처럼 소개돼 있다.

작가는 실존인물과 실제 사건이라는 역사소설의 기본 조건에 더해 녹음·속기 자료를 토대로 에피소드와 대사를 구성하고 취재·집필 과정을 고스란히 노출한다. 기존 소설의 매끄러운 흐름에 익숙하다면 작가가 자꾸 개입해 몰입을 방해한다고 여길 수도 있다.

책에서 작가는 독자들을 향해 말한다. "나는 그저 소망할 뿐이다. 이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뒤덮은 소설이라는 껍데기가 아무리 휘황찬란할지라도, 그 껍데기 아래 감춰진 역사적 실체를 당신이 꿰뚫어봐 주기를." 이 작품을 '토대 소설'(infra novel)로 명명한 작가는 2010년 프랑스 공쿠르상 최우수신인상을 받았다.

마지막 목격자들 = 글항아리. 연진희 옮김. 420쪽. 1만6천원.

HHhH = 황금가지. 이주영 옮김. 436쪽. 1만3천800원.

dad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1/30 11:3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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