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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극복 주역들의 회고·경제해법 책으로 나왔다

KDI '코리안 미러클 4 :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출간
구조조정 주역 이규성·강봉균·이헌재·진념 전 장관 등 증언

(세종=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 "구조조정은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경쟁력을 잃은 분야는 상시적으로 퇴출하고 새로운 경쟁력을 갖춘 분야는 상시적으로 진입이 가능해야 합니다"(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

"롯데그룹의 친족 간 경영권 분쟁사태를 초래한 상황은 아직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진적 기업지배구조 확립, 경영투명성 확보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와 규제감독기능이 강화돼야 합니다"(강봉균 전 청와대 경제수석·재정경제부 장관)

"지금 대우조선해양[042660] 문제가 불거졌는데 정말 결단력이 있으면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털고 출자전환하고 자를 것 자르고 분리해서 살릴 것 살리고 해야 합니다. 정부의 책임있는 리더십이 필요해요"(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재정경제부 장관)

"지금 정부의 4대 부문 개혁의 실체는 무엇인가요. 외환위기 때는 아주 간명하고 구체적 메시지를 내보냈습니다. 지금은 담론만 있고 구체적 실천계획은 없는 실정입니다. 이런 문제를 빨리 정리하고 해야할 것을 선정해 공략하고 성과를 내보이는 것에 국력을 집중해야 합니다"(진념 전 기획예산처 장관·재정경제부 장관)

최근 한국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제2의 외환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의 핵심역할을 했던 전직 고위관료들이 한국경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육성으로 듣는 경제기적 편찬위원회'는 3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코리안 미러클 4 :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발간보고회를 개최했다.

KDI는 한국 경제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정책담당자들의 입을 빌려 정책 수립의 경험과 지혜를 후대에 전수하고 개발도상국과 이를 공유하기 위해 '코리안 미러클' 시리즈를 발간해오고 있다.

2013년 발간된 1권은 1950∼1970년대 고도성장 및 개발정책을, 이듬해 발간된 2권은 1980년대 자율·개방시대로의 정책전환을 담았고 지난해 나온 3권은 중화학공업화, 산림녹화, 새마을운동을 다뤘다.

이번에 발간된 4권은 1997년 외환위기 전후의 어려움과 극복과정을 이규성·강봉균·이헌재·진념 전 재경부 장관과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 등의 증언을 통해 전하고 있다.

◇ 이헌재 "외환위기는 '신뢰의 위기'"…이규성 "'위장된 축복"

이들 전직 고위관료들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원인과 이후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에 대해 다양한 평가를 했다.

이규성 전 장관은 "외환위기는 '위장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창달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틀을 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한국경제 역사에 치욕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런 낙인을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개혁을 통해 어느 정도 지웠다. 그 결과가 위장된 축복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헌재 전 장관은 1997년 외환위기를 '신뢰의 위기'로 정의했다.

"한국의 회계를 믿을 수 없다. 단기외자 부채규모 통계도 부실하고 기업들의 부채규모 역시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는 등의 문제의식이 미국 월가에 퍼져 외환위기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를 헤쳐나오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신뢰자본을 전보다 더 단단히 구축하는 데 성공, '한국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나라이며 신뢰자본 차원에서는 이미 선진국'이라는 국제사회 믿음을 얻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이 전 장관은 밝혔다.

진념 전 장관은 "외환위기를 통해 우리는 적정한 때에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변화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면서 "우리 스스로 경제체질을 바꾸고 미리 대처하지 못한 결과라는 점에서 안타깝지만 국제사회에서 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한 사례로 평가받은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 한 목소리로 대우그룹 오판 지적…일본에 대한 서운함 드러내

이 전직 장관들은 외환위기 직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대기업 간 '빅딜'과 관련한 후일담도 소개했다.

당시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를 주고 받는 '슈퍼빅딜'은 삼성그룹과 대우그룹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딜로 관심을 모았다.

강봉균 전 장관은 "삼성에서 온 이학수 씨와는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대우 쪽 사람과는 대화가 전혀 안됐다. 아무 권한이 없으니 이야기하다 김우중 회장에게 잠깐 전화하고 온 뒤 다시 들어와서는 딴소리를 하더라. 당시 대우그룹은 김우중 회장 1인 경영체제였던 거다. 나는 대우그룹이 무너진 것이 이런 1인 경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대우 측에 의해 협상이 지루하게 계속되자 삼성 측은 대우에 끌려다니느니 자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오히려 깨끗하고 비용도 덜 들 것이라고 판단해 법정관리를 선언했다. 결국 빅딜이 허망하게 백지화되자 대우그룹의 붕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헌재 전 장관은 "김우중 회장은 시장변화를 못 읽었다. 시장은 늘 꼴찌부터 삼킨다.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다. 대우는 그런 시장의 법칙을 외면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의 요구를 매몰차게 거절한 사실도 밝혀졌다.

1997년 11월 말 우리 정부가 IMF와 구제금융 협상을 벌이는 와중에 임창렬 부총리가 일본을 방문, "한국이 무너지면 일본도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러니 이번에 우리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특유의 외교적 화법으로 "IMF를 통하라"며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김영삼 정부와 일본 정부의 사이가 나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헌재 전 장관은 "일본과 정치상황이 나빴다. 그것이 결국 어업협정 보복으로 나타났다"면서 "신규대출은 안 줬더라도 일본이 기존 대출을 회수하지 않는 것 정도는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그랬다면 한국 금융이 일본에 상당한 빚을 졌다고 고맙다고 생각했을 텐데 일본이 싸늘하게 털었다. 단견이었다"고 지적했다.

◇ "위기대응 위해 재정여력 필요"…"공직자가 중심 잡아야"

비록 현직에서 물러난 우리 경제의 원로들이지만 이들은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와 관련한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이헌재 전 장관은 지금 한국 경제는 '버퍼(buffer·완충제)'가 필요한 시대라고 진단했다.

그는 "은행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이를 실물부문으로 전가하지 않으려면 부실을 흡수할 충분한 버퍼가 있어야 하는 데 현재 우리는 이런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은행뿐만 아니라 닥쳐올지 모르는 위기에 대응하려면 재정에도 항상 충분한 버퍼가 필요하다고 이 전 장관은 강조했다.

강봉균 전 장관은 향후 우리 경제의 개혁방향과 관련해 "금융기관은 타율적 준 관치체제에서 자율적 경쟁체제로 하루빨리 전환돼야 한다"면서 "노동개혁에서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과보호 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치 최근 국정 비선실세 파문의 원인을 지적하는듯한 발언도 책자에 담겼다.

강 전 장관은 "김대중 정부 때는 야당 시절 정치적 측근들이 국정참여를 스스로 포기하는 공개선언이 나오고 청와대 비서실부터 정치권 인사채용을 엄격히 제한, 정권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뢰가 있었고 관련 고위직들의 비리부정이 없었다"고 전했다.

강 전 장관은 공직 후배들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 내에서 소신있게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일하라"는 조언도 내놨다.

이규성 전 장관은 "우리 경제의 성잠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총요소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면서 "향상의 요체는 기술혁신의 추진과 인재양성, 구조조정"이라고 밝혔다.

진 전 장관은 국가 전체의 기강과 규율이 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업은행은 이명박 정부 당시 민영화한다고 정책금융공사를 만들었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그 이전으로 돌아갔다"면서 "누군가는 그에 따른 비용과 낭비를 책임져야 하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근래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의 낭비사례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서 "이는 국가의 기강과 규율이 안 서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진 전 장관은 "과거의 공직자들은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지는 자세를 갖고 있었다"면서 "공직자들이 눈치를 보기보다는 나라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pdhis9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1/30 12: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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