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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작업에서 고무옷까지'…제주해녀 복장 이렇게 변했다

테왁 망사리·빗창 등 다양한 작업도구…열악한 작업환경 극복한 지혜 엿볼 수 있어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드넓은 제주 바닷속으로 들어가 소라·전복·미역 등을 채취하는 해녀의 복장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일까.

제주 해녀
제주 해녀1962.8.9 (본사자료)<저작권자 ⓒ 2001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과거 해녀들은 알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낫으로 전복과 미역 등 해산물을 채취했다.

남자들도 함께 물질 작업을 하곤 했는데,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육지로부터 고립된 제주의 독특한 풍속상 남녀가 서로 알몸을 보여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흔한 모습이었다.

기록을 보면 고려 숙종 10년인 1105년 탐라군의 구당사(句當使)로 부임한 윤응균이 '해녀들의 나체(裸體) 조업을 금한다'는 금지령을 내렸고, 조선 인조(1623∼1649) 때는 제주목사가 남녀가 어울려 바다에서 조업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인 1629년에 이건이 유배지 제주에서 쓴 한문수필 '제주풍토기'에도 '잠녀(潛女)들은 발가벗은 몸으로 낫을 들고 바다 밑으로 들어가 미역을 따고 나온다. 남녀가 뒤섞여 일하고 있으나 이를 부끄러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기록했다.

조선 숙종 1702년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화공 김남길에게 그리도록 한 '탐라순력도'에는 지금의 제주시 용두암 인근에서 흰색 수중작업복을 입고 물질을 하는 해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탐라순력도 속 제주 해녀
탐라순력도 속 제주 해녀(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조선 숙종 1702년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화공 김남길에게 남기도록 한 '탐라순력도' 병담범주 편에는 지금의 제주시 용두암 인근에서 흰색 수중작업복을 입고 물질을 하는 해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흰색 동그라미 안에 해녀의 잠수조업 모습이 담겨 있다. 2016.11.30
bjc@yna.co.kr

이러한 기록을 미뤄짐작해 보면 조선 초·중기까지 자유롭게 물질을 하던 해녀들은 육지에서 내려온 관리들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점차 '물옷'이라 일컬어지는 재래작업복을 입기 시작했고, 각종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옷과 물질 도구는 거친 바다 환경과 열악한 작업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기존 농사 도구 등을 적절히 개량해 만든 것으로, 기능과 창의적인 측면에서 제주 해녀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물옷은 하의에 해당하는 '물소중이'와 상의에 해당하는 '물적삼', 머리카락의 흐트러짐을 막기 위해 쓰는 '물수건'으로 이뤄져 있다.

물소중이는 옆트임이 있어 체형의 크기 또는 체중 변화에 구애받음 없이 품을 조절할 수 있고, 입고 벗기 편할 뿐만 아니라 활동하기 좋게 다자인 돼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성의 허리와 가슴, 몸을 감싸주면서 보온력도 있어 물질할 때뿐만 아니라 속옷으로도 종종 입었다.

조선 시대에는 흰 무명으로 만들어 입다가 일제 강점기에 광목이 나오면서 검정 물을 들여 입기도 했다.

비교적 나중에 일반화된 물적삼은 물소중이 위에 입는 흰 무명옷으로 물의 저항을 고려해 소매통이 좁게 디자인됐다. 물질하고 나와 불턱에서 불을 쬘 때 등이나 어깨를 두르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됐다.

물질도구로는 테왁 망사리, 빗창, 호맹이, 족쉐눈 등이 있다.

테왁은 부력을 이용한 작업도구로, 해녀들이 물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그 위에 가슴을 얹고 헤엄쳐 이동할 때 사용한다. 테왁에는 채취한 수산물을 넣어둘 수 있는 망사리가 부착돼 하나의 세트처럼 이뤄져 있다.

해녀들은 과거 잘 여문 박에 구멍을 뚫고 씨를 빼낸 다음 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구멍을 막아 테왁을 만들었으나, 이후 플라스틱 또는 스티로폼 등 더욱 가볍고 편한 재료를 사용해 만들었다.

제주 해녀복의 변천
제주 해녀복의 변천(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 해녀는 조선시대부터 '물옷'이라 일컬어지는 재래작업복을 입기 시작했고, 각종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해녀가 물질할 때 쓰는 도구인 테왁망사리, 1970년대 일본에서 들어온 잠수복, 해녀들이 즐겨 입었던 물소중이의 모습. 제주해녀박물관에서 촬영. 2016.11.30 bjc@yna.co.kr

빗창은 해녀들이 물속 바위에 붙어있는 전복을 떼어내는 데 쓰고, 종개호미는 미역이나 톳·모자반 등 해조류를 채취할 때, 호맹이는 호미처럼 생겼지만, 전체적으로 길쭉하고 가늘게 만들어 암반 틈의 소라·문어·성게 등을 잡을 때 사용했다.

이런 다양한 모양의 도구들은 밭일할 때 사용하던 기존 호미와 낫을 변형해 만든 것으로 대장간에 따로 주문해 만들어야 했다.

족쉐눈은 해녀들이 물질할 때 끼는 작은 알이 둘인 물안경이고, 쉐눈은 알이 하나로 된 큰 물안경이다. 유리를 주재료로 하고 주위를 둘러싼 테는 놋쇠나 구리로 만들었다.

이런은 물옷과 도구 등 15점은 지난 2008년 제주도 민속자료로 지정됐다.

재래작업복인 물옷은 1970년대 초 일본에서 속칭 고무옷이라고 하는 잠수복이 들어오면서 대체됐다.

고무옷은 목까지 내려오는 통으로 된 모자와 고리가 달린 상의, 그리고 발목을 덮고 가슴까지 올라오는 바지 형태의 하의, 오리발(물갈퀴)로 이뤄져 있다. 고무옷은 부력이 있어 연철이라는 납추를 몸에 매달아야만 물에 들어갈 수 있다. 고무옷이 등장하면서 해녀의 작업환경이 크게 변했다.

이전 30분에서 1시간 남짓하던 작업시간이 고무옷을 착용하면서 3∼5시간 또는 그 이상으로 늘어났고,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작업할 수 있게 됐다.

바닷속 20m 가까이 물질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잠수병과 같은 부작용이 생기고 장시간 해산물 채취로 인한 바다 밭의 황폐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으나 해녀 스스로 자정작용과 수입 증가, 편리성 등 이유로 고무옷은 현재 모든 해녀에게 널리 보급됐다.

2012년부터는 선박과의 충돌 등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눈에 잘 띄지 않는 검정색 잠수복 대신 주황색 잠수복이 보급되고 있다.

제주해녀박물관 전시물
제주해녀박물관 전시물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해녀박물관에 전시된 해녀 물옷과 각종 도구의 모습. 2016.11.30

<※ 이 기사는 제주해녀박물관 기록, 제주 해녀 옷 이야기,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제주도, 제주학과의 만남,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등을 참고해서 제주해녀의 복장을 소개한 기사입니다.>

bjc@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2/01 00:4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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