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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총격전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우태경 김유정 인턴기자 = 서울 을지로 한가운데서 총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습니다.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던 사내는 자신의 몸에 총을 쏘고 말했습니다. "나는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남도리에 사는 나석주다."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1926년 12월28일 일어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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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다

"타앙-" "타앙-" "타앙-" 서울 을지로 한가운데서 총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습니다.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던 사내는 자신의 몸에 총을 쏘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남도리에 사는 나석주다"

1926년 12월 26일, 인천항. 한 중국인 남성이 배에서 내렸습니다. "중국 산둥 성 출신. 나이 35세. 이름 마중덕(馬中德)."

이 남성은 바로 임시정부와 의열단에서 활동하던 나석주 의사입니다. 그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 건물을 폭파하려고 중국인으로 위장한 채 입국했죠.

당시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와 조선식산은행은 조선의 토지와 재산을 수탈하고, 수많은 조선인들을 빚에 시달리게 한 식민 통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중국에서 독립 활동을 하고 있던 나석주는 민족 지도자 김창숙에게서 이들의 횡포를 듣고,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거사에 나선 것입니다. "저는 이미 죽기로 결심한 바 오래되었습니다"

이틀 뒤인 28일 오후 2시 5분. 그는 식산은행에 잠입해 폭탄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기둥에 부딪히고 아래로 떨어진 폭탄은 애석하게도 터지질 않았죠.

"동척이라도…!" 나석주는 곧바로 동척으로 향했습니다. 권총으로 경찰 등 일본인 7명을 사살하며 건물에 진입해 폭탄을 던졌지만, 이번 역시 폭탄은 불발됐습니다.

경찰에 쫓기다 총알을 맞은 나석주는 마지막을 직감하고 동포들을 향해 몸을 돌렸습니다.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 그렇게 총알 3발을 쏴 자결한 그의 나이는 불과 35세였습니다.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그는 그 공을 인정받아,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지금도 을지로에는 그의 애국을 기리는 동상이 서 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조국을 부르짖었던 사나이, 나석주. 그의 거사는 안타깝게도 미완에 그쳤지만, 그의 투쟁은 '완전한 애국 그 자체'였습니다. (*자료참조: 국가보훈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hye1@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2/28 08: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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