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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2cm] 조선은 노비라도 80살 넘으면 임금이 깍듯이 예우했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서울 강남역~수원 광교를 잇는 민자철도 신분당선이 만 65세 이상 승객에게도 요금을 받을 계획이라고 한다.

노인 요금 유료화 방침은 2016년 말 기준 무임승차 비율이 16.4%에 달해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신분당선은 개통 3년만인 2014년 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갔고, 2017년 6월 기준 누적 적자는 3천931억 원으로 늘어났다.

국토부가 신분당선 측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수도권 전철 구간에서 노인에게 운임을 매기는 첫 사례가 된다.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6개 도시철도에서도 무임승차로 생기는 운임 손실이 매년 늘어나 2016년에 5천543억 원을 기록했다.

신분당선 요금체계 개편안을 계기로 우리나라 노인 연령 기준을 올리는 방안을 공론화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추세를 고려해 노인연령 기준을 조정하겠다는 의지를 2011년부터 피력해왔다.

평균 수명이 연장되고 실제 은퇴 연령이 70대로 늦춰진 점을 조정 필요성의 근거로 삼았다.

유엔(UN) 등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노인 기준은 독일이 1889년 노령연금을 세계 최초로 도입하면서 수급 시작 연령을 65살로 정한 데서 비롯됐다.

의료기술 발달과 복지혜택 확대 등으로 기대수명이 부쩍 늘어났는데도 노인연령은 128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1960년 출생아 기대수명이 60세였으나 2015년에는 82.1세로 크게 높아졌다.

노인 연령을 올린다면 가난한 은퇴자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진다는 반론도 만만찮아 노인 기준 변경을 둘러싸고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노인을 공경하고 우대하는 제도는 조선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다만, 노인 기준 연령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 수혜자는 소수였다.

조선은 고위 관료 출신 고령자를 예우하는 기로소를 운영했다.

70살과 80살을 각각 의미하는 기(耆)와 노(老)를 합쳐 작명한 국립 경로당이다.

입소 조건은 무척 까다로웠다.

70살을 넘은 정2품 이상 문관 출신 은퇴자로서 도덕성까지 겸비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태조 이성계가 60살이 된 1394년 기사라는 관청을 만들어 문신과 무신을 가리지 않고 70살 내외 정2품 이상 관료 출신들을 예우하도록 한 게 기로소의 기원이다.

해당자들은 논밭과 노비, 고기잡이 기구 등을 하사받았고 매년 봄과 가을에 왕이 베푸는 잔치에 초대됐다.

기로소로 명칭이 바뀐 이후에는 입소 자격이 달라진다.

음직(과거를 보지 않고 조상 덕으로 얻은 벼슬)이나 무관 퇴직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복지혜택은 더 나아졌다.

입소자들이 무병장수할 수 있도록 건강식품과 의복, 의약품을 정례적으로 제공하고 단체운동도 마련해줬다.

생일과 과거 급제 60주년(회방), 결혼 60주년(회혼), 자손 과거 합격 축하연에 드는 비용도 지원했다.

요즘은 흔하지만, 그때는 매우 귀해서 주로 왕실 보양식에 사용한 우유도 입소자들에게 나눠줬다.

활쏘기 대회도 주기적으로 열었다. 우수 성적을 거두면 활을 하사받지만, 표적 명중률이 저조할 때는 벌주를 마시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건강에 나쁜 술을 억지로 마시고 싶지 않으면 틈나는 대로 활 쏘는 연습을 함으로써 건강을 챙기도록 독려하려는 조처로 추정된다.

기로소 입소 조건이 워낙 까다로워서 조선 시대를 통틀어 기인은 700여 명에 그쳤다.

이 때문에 유력 가문이나 문벌을 따질 때 기인 배출 숫자를 잣대로 활용했다.

왕족인 전주 이씨(48명)를 제외하면 파평 윤씨가 23명으로 가장 많았고, 연안 이씨, 청송 심씨, 안동 김씨 각 21명, 동래 정씨와 남양 홍씨 각 20명 등 순으로 많았다.

왕은 나이가 적어도 기로소에 들어가는 특혜를 누린다.

조선 왕 27명 가운데 기로소에 들어간 태조, 숙종, 영조, 고종 등 4명의 입소 연령은 50~60세였다.

왕의 입소 때는 궁중 잔치를 벌이고 전국 70세 이상 고령자에게 쌀과 음식을 내려주고 축하연을 베풀어 줬다.

일반 백성에게는 세금을 줄여줬다.

왕이 입소 영광을 백성과 더불어 누림으로써 ‘여민동락’ 정신을 실천한 것이다.

흉년으로 백성이 굶주리거나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는 입소 잔치를 연기했다.

숙종(1661~1720년)은 입소 축하연을 열자는 제안에 "백성이 기근과 천연두로 고통받는 마당에 잔칫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거절했다가 신하들의 강권을 못 이겨 가을 농사가 풍작이고 전염병이 진정되면 잔치를 수용하겠다고 했다.

왕이라도 조기 입소는 잘못이라며 신하가 강하게 반발하다가 봉변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사헌부 지평(정5품) 박성원(1697~1767년)은 1744년 영조가 51살에 기로소에 들어가려고 하자 역대 왕들보다 너무 젊다며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경남 남해로 귀양 갔다.

기로소는 왕을 포함한 국가 원로들이 모인 데다 임금 자문위원회 역할을 한 덕에 관청 서열에서 늘 으뜸이었다.

고위 관리 은퇴자들이 기로소 입소를 본인은 물론, 가문의 영광으로 여긴 이유다.

조선 말기에는 대기 인원이 늘어나 80살을 넘어 간신히 들어가기도 했다.

기로소와 별도로 70세 이상 퇴직 공신에게 왕이 의자와 지팡이를 하사하는 사궤장 제도도 운용했다.

의자와 지팡이에 몸을 기대어도 좋으니 임금 곁에 오래 머물면서 국정을 도와달라는 취지로 만든 제도다.

궤장 전달식 때는 궁궐에서 고위 관료들이 전부 참여하는 성대한 잔치를 연다.

궤장을 받는 노인은 국가 공인 원로로 존경받고, 자손은 공무원 특채 혜택까지 누린다.

평민은 물론, 노비라도 80살을 넘으면 정부에서 잔치를 여는 양로연 제도도 있었다.

양로연 대상에 신분을 따지지 않았으나 부패 범죄자는 제외했다.

뇌물 범죄에 연루돼 이맛살 속에 먹물로 죄명을 새기는 자자형을 받은 노인은 초청 대상에서 빠진다.

양로연은 세종대왕 이후 국상이나 흉년을 제외하고는 웬만해서는 중단하지 않을 정도로 정부가 크게 신경 쓴 국가 중대사였다.

양로연 혜택은 연령별로 달랐다.

100살 이상이면 1년 치 쌀과 함께 매달 술과 고기를 받고, 90살을 넘으면 매년 술과 고기, 술잔을 챙긴다. 80살에는 지방관이 축하연을 베풀어준다.

왕과 왕비가 따로 하거나 합동으로 주관하는 양로연은 신분의 존비를 문제 삼지 않았기에 노비들도 왕을 알현하는 영광을 누린다.

지방 양로연은 왕이나 고관대작이 출장 가서 챙기거나 지방 수령이 관청별로 주재했다.

국가대사나 자연재해, 흉년 등으로 양로연을 열지 못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생기면 음식이나 의자를 선물했다.

양로연 의전 절차를 보면 임금이 얼마나 예우를 갖추려고 애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반 잔치에서 왕세자를 비롯한 왕족과 문무백관이 왕에게 네 차례 하는 절을 양로연에서는 두 차례로 줄인다.

그것도 일어서지 않고 앉은 자세로 머리만 두 번 땅에 닿도록 고개를 숙이면 된다.

연세가 많아서 절하기 힘든 점을 고려한 예법이다.

국가 중요 의식을 행하는 궁궐 근정전에 모든 노인이 자리 잡을 때까지 세종은 용상에 앉지 않고 오랫동안 서서 기다리며 깍듯이 모셨다. 절은 아예 하지 못하도록 했다.

조선 노비는 물론, 평민조차도 궁궐에서 임금과 어울려 술과 음식을 먹는 기회는 양로연이 유일했다. 세종은 여진족도 양로연에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경로효친 전통은 대한민국 정부에도 이어져 1982년 세계 최초로 노인헌장이 선포된다.

노인은 나라의 어른인 만큼 의식주 걱정 없이 건강한 사회활동과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가정과 사회, 정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정부는 1981년 노인복지법을 만들어 65세 이상이면 국가나 자치단체 운송시설이나 다른 공공시설을 무료 또는 할인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을 근거로 지하철 무료 탑승, KTX·새마을호·무궁화호 기차 요금 30% 할인, 항공료 10~20% 할인, 국공립 박물관·미술관·공원 무료입장 등 혜택을 제공한다.

하지만 노인복지 정책은 소리만 요란했을 뿐 내실은 없었다.

유엔이 2015년 발표한 세계노인복지지표를 보면 한국 성적표는 매우 초라하다.

복지지표는 96개 조사 대상국 중 60위였으나 상대적 복지 수준과 소득 안정성은 각각 93위와 83위로 나타났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한국 노인의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가 장수국 대열에 들어섰으나 노인 정신건강은 최하위 수준이라는 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신분당선 유료화 방침을 계기로 노인 연령 기준을 조정하는 문제와 노인복지를 재설계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기대수명 증가로 은퇴 연령이 높아지는 현실을 고려해 노인 취업률과 고용 질을 개선함으로써 소득을 올리는 방안 등을 내놓고서 노인 기준 조정안에 접근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늙은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노인이라는 용어를 바꾸는 문제도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평균 수명이 35세 안팎인 조선에서도 80살을 넘어야 노인 호칭이 붙었는데 100세 시대를 앞두고 인생 이모작을 막 시작하는 65살에 노인 소리를 듣는다면 삶의 활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50대 나이에 손주를 본 여성들이 할머니 소리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무기력해지는 것과 같다.

조선처럼 최고 연령대 어르신을 특별 관리하면서 국가가 극진한 예우를 해준다면 새로운 노인상을 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had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7/18 08: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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