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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생각한 통일에 고구려는 없었다…삼국통일론은 허구"

신형준 씨, '신라인은 삼국 통일을 말하지 않았다' 출간

경주 무열왕릉.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태종대왕께서 (중략) 삼한에서 전쟁을 그치게 하고 통일을 달성하신 때에…"(太宗大王 (중략) 戈三韓之年垂衣一統之日被)

신라 진성왕 4년(890)에 건립된 월광사 원랑선사탑비에는 통일의 주체가 태종대왕으로 기록돼 있다. 태종대왕은 무열왕 김춘추(재위 654∼661)를 지칭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책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시점이 676년으로 나와 있다. 신라는 당과 함께 백제를 공격해 660년에 멸망시켰고, 668년에는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이후 당의 군대를 몰아낸 것이 바로 676년이다.

그런데 원랑선사탑비는 어떤 연유로 문무왕(재위 661∼681)이 아닌 무열왕이 통일을 달성했다고 했을까. 그리고 왜 삼국이 아니라 삼한이라고 적었을까.

일간지 문화재 기자 출신인 신형준 씨는 신간 '신라인은 삼국 통일을 말하지 않았다'(학고재 펴냄)에서 신라인은 삼국을 통일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명료하다. 신라인이 생각한 통일의 대상은 백제 혹은 그보다 약간 더 넓은 영역이었고, 고구려는 통일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고구려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라인이 삼국 대신 한반도 중남부에 있었던 삼한(마한, 진한, 변한)을 통일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라인이 직접 쓴 금석문, 원효나 최치원 등 신라인의 글을 모은 문집, 고구려와 백제 유민의 묘지명,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모두 살폈다.

조사 결과, 신라가 '삼국 통일'이라고 남긴 기록은 3건에 불과하다. 반면 '삼한 통일'이라는 표현은 11차례 등장한다.

한데 논쟁은 '삼한'이라는 단어에서 발생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학자는 삼한을 곧 삼국으로 간주했다. 근거는 최치원이 885년에 쓴 '태사시중에게 올린 글'(上太師侍中狀)이다. 이 글에서 최치원은 "마한은 고구려이고 변한은 백제이며, 진한은 신라"라고 언급했다. 삼한을 삼국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셈이다.

하지만 저자는 '태사시중에게 올린 글'에서 이 주장을 반박할 논거를 찾는다. 글의 뒷부분에 있는 "고구려의 잔당이 북쪽에 있는 태백산 아래에 모여서 국호를 발해라고 했다"는 내용을 주목한다. 이는 고구려 세력이 발해로 이어졌다는 의미인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생각한다면 나올 수 없는 문장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사료에서 확인되는 통일 시기에 대한 기록도 비슷한 맥락에서 풀이된다. 통일 군주로 무열왕은 7차례 언급됐지만, 문무왕을 꼽은 사례는 3회밖에 되지 않는다.

저자의 논지는 '통일신라시대'와 '남북국시대' 중 어느 쪽이 옳으냐는 학계의 해묵은 논쟁과 연결된다. 그는 당연히 남북국시대가 맞다고 주장한다. 통일신라시대라고 하면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제외될뿐더러 신라인의 생각과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라가 통일한 영토는 고구려를 포함하지 않았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도 존재했는데 한국사 교과서는 왜 신라의 삼국 통일을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우리 역시 신라인들처럼 '신라의 삼한 통일'로 교과서를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448쪽. 1만8천원.

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7/18 18:2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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