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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인생플랜](18)"남은 인생, 색소폰 행복 전도사로…"

30여 년 목회자 삶 뒤로하고 연주 봉사하는 김완영씨
"건강 허락할 때까지 상처받은 어르신들 위해 공연할 것"

(용인=연합뉴스) 류수현 기자 = 매주 화요일 정오가 되면 용인시 노인복지관 앞 야외무대에서는 묵직하면서도 감미로운 색소폰 소리가 울려 퍼진다.

깔끔한 옷차림에 중절모를 눌러쓴 노신사는 황금빛 색소폰을 양손에 쥐고 한 시간 동안 가요 10여 곡을 능숙하게 연주해낸다.

색소폰 연주하는 전직 목사 김완영(73)씨
색소폰 연주하는 전직 목사 김완영(73)씨

그의 주된 관객은 70∼80대이다.

일주일에 한 번, 그의 무대가 있는 날이면 복지관 건물 앞에 마련된 객석 100여 석은 금세 가득 메워진다.

김완영(73)씨는 30여 년간 걸었던 목회자의 삶을 뒤로하고 4년 전부터 복지관 등에서 색소폰 재능 기부를 하며 노년을 보내고 있다.

2013년 복지관에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밴드를 창단한 그는 일주일에 한 번 복지관 공연 말고도 요양원 곳곳을 찾아다니며 어르신들을 위문한다.

악기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언제가 됐든 몇 시간이 됐든 성심성의껏 연주 방법을 전수해주다 보니 어느덧 밴드에 가입한 단원은 50여 명으로 늘었다.

그가 색소폰을 처음 배운 건 20여 년 전이지만, 배움에 마음을 굳힌 계기는 그보다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2살 되던 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그는 4개월 만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미군 전투기가 잘못 투하한 포탄에 크게 다친 것. 파편 100여 개가 몸에 박힌 김씨는 곧장 필리핀 북부에 있는 클락 지역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긴급 수술을 받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온몸에 붕대를 감아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미국 대표적인 찬송가인 '어메이징 그레이스' 색소폰 연주가 병실 안으로 흘러들었다.

죽음을 눈앞에서 마주한 그에게 이따금 들려오는 색소폰 소리는 "곧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큰 위안으로 느껴졌다.

관객들 앞에서 색소폰 연주하는 김완영(73)씨.

"피투성이가 된 저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간호사 형상과 더불어 어디선가 나지막한 색소폰 소리가 들려오는데, 갑자기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더니 눈물이 나더군요. 음악이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나도 누군가를 음악으로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제대한 뒤 먹고살기에 바빴던 그는 색소폰에 대한 기억은 잠시 접어두고 용접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건물 3층 외벽에서 배관 용접을 하다가 발판이 뒤집히면서 추락해 또다시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사고 후 한동안 사경을 헤매다 깨어난 김씨는 남은 생을 목회자로 살기로 했다.

하나님이 두 번 죽었다 살아난 자신을 살려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국과 캐나다에서 목회 활동에 전념하다가 길거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색소폰 소리에 30여 년 전 필리핀 병원에서 들었던 색소폰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냈다.

당시 그의 나이 50대 초반.

더는 색소폰 배우는 일을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 김씨는 강사들을 찾아 나섰다.

레슨이 없는 날에도 색소폰을 곁에 두고 하루에 최소 10분이라도 연습하려고 애썼다.

부상 후유증으로 색소폰을 오랜 시간 연주하면 어깨가 아파왔지만, 자신의 연주를 듣고 좋아할 사람들의 표정들을 상상하니 고통은 순식간에 씻겨나갔다.

꽉 찬 관객석.
꽉 찬 관객석.

일흔이 됐을 즈음 김씨는 자신이 세운 교회를 후배 목사에게 온전히 맡기기로 했다.

자신이 일군 일터에서 정년 걱정 없이 목사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남은 인생을 소외된 이웃, 특히 노인들을 위해 색소폰을 연주하며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집 근처 복지관에서 만난 노인들의 모습은 병들어 힘이 없어 보였어요. 삶의 낙이 없는 듯 얼굴에는 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죠. '이분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해 지금의 밴드를 꾸리게 됐습니다."

자신이 연주하는 색소폰 소리에 노인들은 힘껏 박수를 쳤고,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까지 췄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연주 내내 함박웃음을 짓던 그들의 모습에 김씨는 앞으로 색소폰을 놓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김씨는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색소폰을 배워 지금까지 실력을 갈고닦은 것"이라며 "돈 한 푼 받지 않는 공연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소외되고 상처받은 어르신들 앞에 계속 서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악기를 배워보니 삶에 활력이 생기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행복한 기운이 전파된다는 걸 깨달았다"라며 "다른 사람들도 70대, 80대라도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악기 배우는 일을 꼭 한번 도전하기를 권한다"고 강조했다.

you@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8/13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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