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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들어보니 섭섭하더라"…18세기 신광수의 친필 작별시

강순애 교수, 송별기록 '학가증법정동귀' 발견

학가증법정동귀
학가증법정동귀[강순애 교수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신선이 탄 배가 내일 출발한다고 하니 병 때문에 나아가 이별하지 못하고 머리를 들어보니 너무 섭섭하더라."

사실적인 필치의 시문(詩文)으로 유명했던 석북(石北) 신광수(1712∼1775)가 영조 40년(1764) 법정(法正) 정범조(1723∼1801)와 헤어질 때 지은 송별시가 발견됐다.

13일 한국서지학회에 따르면 강순애 한성대 교수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고서점에서 찾은 신광수의 '학가증법정동귀'(鶴歌贈法正東歸)를 분석한 논문을 학술지 서지학연구에 실었다.

강 교수가 발굴한 학가증법정동귀는 가로 37.5㎝, 세로 26㎝ 크기의 종이에 글씨가 정연하게 쓰여 있다. 이 시는 신광수의 문집인 '석북집'(石北集) 권8에 실렸으나 내용이 일부 다르고, 석북의 친필이 담겨 있는 점이 특징이다.

신광수는 영조 27년(1750) 진사에 급제했으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영릉참봉을 시작으로 연천현감, 영월부사 등을 지내며 높은 관직에 오르지 못했지만, 조선 후기 남인 시단의 대표적 시인으로 꼽힐 만큼 뛰어난 문인이었다. 채제공은 석북에 대해 "특히 시에 뛰어나 시격이 높은 것은 당시(唐詩)와 같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학가증법정동귀에는 문집에 있는 제목이 없다"며 "문집에는 지명인 황해도 배천(白川)이 부제에 추가됐고, 일부 글자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끝에 '석북생'(石北生)이라는 글씨가 있어서 신광수가 저작자이자 필서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석북은 이 시에서 정범조를 '학'(鶴) 같은 인물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한양의 객이 되어 경쟁하며 살던 정범조가 이를 부끄럽게 여겨 양 날개를 퍼덕이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노래했다.

석북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새장에 갇혀 머리가 허옇게 된 것이 가련했고, 정범조가 가는 곳을 바라보며 따라갈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강 교수는 학가증법정동귀의 내용뿐만 아니라 서체도 주목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석북집 행장에 따르면 신광수는 작은 해서체(정서체)와 행서체(정서체와 흘림체의 중간)를 잘 썼고, 그의 서체는 씩씩하고 아름다웠다.

강 교수는 신광수의 글씨는 중국의 명필인 왕희지의 필법에 가깝다고 평가한 뒤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이 드러나도록 운필의 기운과 강약을 조절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석북은 남인 지배층은 물론 양인, 천민, 노비, 기생과도 어울리며 시를 지어줬다"며 "학가증법정동귀는 그의 글씨체를 잘 보여주는 진필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8/13 11:2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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