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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열두 봉우리마다 기암절벽 품은 청량산

(봉화=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백두대간 큰 산줄기에서 살짝 비껴 있는 청량산(淸凉山ㆍ871.7m)은 그리 높지도 않고 전체 둘레도 40㎞ 남짓하지만 육육봉(六六峯)으로 불리는 12개의 봉우리마다 기암절벽을 품고 있어 빼어난 자태를 뽐낸다. 이름 그대로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 청량산은 예부터 당대의 학자와 시인 묵객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창건한 청량사. 봉우리들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조선 시대에는 금강산과 지리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유산기(遊山記)를 낳았다. 소수서원을 세운 것으로 유명한 풍기군수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ㆍ1495∼1554)이 청량산을 유람하고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을 쓴 이래 조선 선비들은 청량산을 소재로 100편이 넘은 기행문과 1천여 수에 달하는 시를 남겼다.

주세붕은 "북쪽에 묘향산, 서쪽에 구월산, 동쪽에 금강산, 중앙에 삼각산, 가장 크고 남쪽에 있는 산이 두류산(지리산)이다. 그러나 작으면서도 신선이 살만한 산은 청량산"이라고 말했다. 학자 오두인(1624∼1689)은 유람기 '청량산기'에서 "강을 건너 위로 올라 산길을 회전하니 별계의 동천(洞天)이 있었다. 바위산이 천길 수직으로 솟아 칼과 창을 둘러놓은 것 같고, 호랑이와 용이 걸터앉은 모습이었다. 수많은 바위가 한 빛깔의 돌이고, 붉은 벼랑 푸른 절벽 맑고 초절한 경계가 진실로 나그네의 수심을 씻을만했다"라고 묘사했다.

퇴적암으로 형성된 청량산은 고대 이후로 '수산'(水山)으로 불리다가 조선 시대에 '청량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주세붕은 불교식 이름이던 봉우리 이름을 유교식으로 바꿨다. 청량산 내 암자에서 글을 읽었던 퇴계 이황(李滉ㆍ1501∼1570)은 아예 청량산을 불가에 대비되는 '유가의 산'이라는 뜻에서 '오가산'(吾家山)이라 부르기도 했다.

1982년 도립공원으로, 2007년에는 명승 제23호로 지정된 경북 봉화의 청량산은 경북 청송의 주왕산, 전남 영암의 월출산과 함께 '대한민국 3대 기악(奇嶽)'으로 꼽힌다. 청량산 트레킹은 짧게는 1시간, 길게는 9시간까지 다양한 코스를 선정할 수 있다. 최장 코스(12.7㎞)는 안내소를 출발해 축융봉∼오마도터널∼경일봉∼자소봉∼하늘다리∼장인봉∼금강대를 거쳐 안내소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로 꼬박 9시간이 소요된다. 입석에서 청량사로 올라갔다가 선학정으로 내려오는 최단 코스(2.3㎞)는 1시간 정도다.

입석에서 출발해 응진전∼김생굴∼자소봉∼연적봉∼뒷실고개∼하늘다리∼장인봉∼하늘다리∼뒷실고개∼청량사를 거쳐 입석으로 다시 하산하는 코스를 걸어 봤다. 느긋한 걸음으로 6시간 정도 걸린다. 이 코스의 장점은 청량산의 빼어난 절경과 하늘다리, 불교와 유교 유적을 두루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길 또한 경사가 완만하고 험하지 않다.

청량산 삼거리에서 도립공원으로 진입해 2.7㎞를 올라가면 도로변 입석을 만나게 된다.

◇ 명승으로 지정된 '대한민국 3대 기악(奇嶽)'

청량산 트레킹은 도로변의 커다란 선돌인 '입석'을 들머리로 삼는다. 청량산도립공원 입구인 청량산 삼거리에서 청량교를 지나 도립공원으로 진입한 뒤 청량폭포와 선학정을 지나면 트레킹 기점인 입석에 닿는다. 입석 주차장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산 위로 난 계단을 50여m 오르면 비교적 평탄한 산길이 이어진다.

청량한 기운을 느끼며 10여 분 올라가면 첫 이정표(청량사 1.0㎞, 응진전 0.6㎞, 김생굴 1.1㎞, 자소봉 2.0㎞)가 나타난다. 청량사로 향하는 왼쪽 길 대신 대부분 등산객이 선호하는 윗길로 발길을 옮긴다. 조금 다리품을 팔자 명당이라고 느낄 정도로 멋진 배산임수형의 지세인 청량사가 한눈에 들어오고,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수직 암벽에 매달리듯 서 있는 응진전(應眞殿)이 진경산수화를 펼쳐낸다.

청량산도립공원의 김덕호 씨는 "청량산 산세를 설명할 때는 흔히 육육봉(6ㆍ6봉)이라 하는데 12개의 바위봉우리가 안팎으로 둥그렇게 솟아 연꽃 형상을 띠고 있고, 꽃술 자리에 청량사가 들어앉아 있다"며 "맞은편 축융봉(祝融峯)에 오르면 장인봉(丈人峯)에서부터 가장 오른쪽의 탁립봉(卓立峯)까지 11개 봉우리가 병풍처럼 연결된 청량산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말한다.

3개의 층암절벽으로 형성된 금탑봉 암벽에는 층마다 소나무들이 테를 두른 듯 뿌리를 내리고 있다.

금탑봉(金塔峯) 아래에 이르니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청량사의 부속암자인 응진전이다.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암자 뒤로 3층의 층암절벽으로 형성된 금탑봉이 우뚝 서 있고, 담쟁이덩굴과 붉은 칡꽃이 수직 암벽을 따라 길게 뻗어 있다. 암자 바로 옆 절벽 위엔 동풍석(動風石)이라는 작은 바위가 놓여 있는데 금세 아래로 떨어질 것 같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한 스님이 이곳에 절을 지으려 했는데 암봉 위에 바위가 있는 걸 보고 올라가 떨어뜨렸다. 그런데 다음날 그 바위가 제자리에 있어 결국 절을 짓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홍건적의 2차 침입 때 피란 온 고려 공민왕이 노국공주와 함께 불공을 드린 응진전 아래로는 천 길 낭떠러지를 이룬다. 암자 뒤편에는 석간수가 있다.

금탑봉 벼랑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신라말 대문장가 고운 최치원(崔致遠ㆍ857∼미상)이 마시고 머리가 좋아졌다는 총명수(聰明水)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자리 잡은어풍대(御風臺)가 나타난다. '청량지'(淸凉誌)에 따르면 전국시대 정나라 사람인 열어구가 바람을 타고 보름 동안 놀다가 돌아갔다고 전해지는 이곳에 서면 단애를 깎아놓은 듯해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고개를 들면 봉우리가 겹겹이 높이 솟아 있고, 바위 절벽에 둥지를 튼 절간 건물이 그대로 한 폭의 동양화다.

이어 신라 명필 김생이 글씨 공부를 한 곳으로 알려진 김생굴(金生窟)과 반원형의 벼랑을 타고 떨어지는 김생폭포가 반긴다. 김생은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천연 암굴에서 10년 동안 서예를 연마해 왕희지체나 구양순체를 능가한다는 '김생체'를 남겼다. 붓을 씻었다는 우물의 흔적이 현재까지 남아 있고, 9년 만에 하산하려 했던 김생과 청량 봉녀(縫女)가 글씨와 길쌈 기술을 겨루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신라시대 명필 김생이 10년간 공부했다는 굴(김생굴) 전경

◇ 많은 얘깃거리 깃든 명산

김생굴을 지나면 가파른 산길이 이어진다. 다리가 뻐근해지고 숨이 차오를 때 '자소봉 0.2㎞ 15분, 경일봉 2.4㎞ 2시간 5분'이라고 쓰인 이정표를 만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가파른 산길과 철제계단을 타고 자소봉 표지석이 있는 전망대(840m)에 오르면 봉화의 동북쪽 산세는 물론 영양의 일월산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청량산에서 가장 높은 자소봉(871.7m)은 9층의 층암을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 11개의 암자가 층마다 나열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보살봉'으로 불리는 자소봉에서 잠시 쉬고 다시 내려와 주봉인 장인봉으로 향한다. 이곳부터는 탁필봉(卓筆峯)과 연적봉(硯適峯), 자란봉(紫鸞峯)과 선학봉(仙鶴峯)을 거쳐 장인봉에 이르는 능선길이 시작된다.

자소봉 전망대에 오르면 봉화의 동북쪽 산세와 영양 일월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잠시 후 생긴 모습이 마치 붓끝을 모아 놓은 듯한 탁필봉을 지나 철제계단이 설치된 연적봉에 오른다. 벼루에 먹을 갈 때 쓸 물을 담아두는 그릇을 닮았다는 연적봉 정상은 최고의 전망대다.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해 청량산의 절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왼편으로는 방금 지나온 탁필봉과 자소봉이 키 재기를 하듯 나란히 서 있다. 오른편으로는 자란봉과 선학봉, 장인봉 등이 위풍당당하게 도열해 있다. 벼랑 위의 멋진 소나무 건너편으로는 청량산의 12봉 중 11봉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축융봉과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에 대응하기 위해 쌓았다는 청량산성이 시야에 잡힌다. 주세붕이 '소금강'이라 감탄할 만한 풍광임을 느끼게 한다.

연적봉 정상에서 내려서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700여m의 산길을 따라가면 주능선이 이어지는 갈림길인 뒷실고개에 닿는다. 이곳에서 500m 직진하면 하늘다리이고, 왼편으로 800m 하산하면 청량사다.

장인봉을 올랐다가 되돌아 나와 하산을 하게 될 지점이다. 뒷실고개에서 완만한 능선을 따라가면 10여 분 만에 해발 800m 지점의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하늘다리 앞에 다다른다. 자란봉은 '자색의 난새가 춤을 추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선학봉은 학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형상이다.

하늘다리는 길이 90m, 폭 1.2m, 지상고 70m의 산악현수교로, 최대 100여 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게 설계됐다. 안내를 해준 김덕호 씨는 "2008년 개통된 하늘다리는 건너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험준하고 가파른 두 봉우리를 연결한 다리 가운데에서 바라보는 청량산의 산세와 풍경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가 절경"이라고 감탄한다.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해발 800m 지점의 현수교 '하늘다리'

◇ 낙동강 상류에 우뚝 솟은 바위산

구름 위를 걷듯, 하늘에 떠가듯 하늘다리를 건너 선학봉을 내려선 후 일명 '의상봉'으로 부르는 장인봉(870m)에 올랐다. 정상은 나무와 수풀에 가려 전망이 시원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표지석에서 '丈人峰'(장인봉)이라는 김생의 필체와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두 손으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니/ 햇빛은 머리 위에 비추고 별빛은 귓전에 흐르네./ 아래로 구름바다를 굽어보니 감회가 끝이 없구나./ 다시 황학을 타고 신선 세계로 가고 싶네'라는 주세붕의 '정상에 올라'라는 시를 만난다.

장인봉에서 금강대 방향으로 30m 정도만 내려서면 아찔한 절벽 끝에 전망대가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이 눈에 들어온다. 금강대와 학소대를 거쳐 안동호로 흘러들어 가는 낙동강 풍경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답다.

장인봉(丈人峰) 표지석

저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을 뒤로하고 하늘다리를 지나 뒷실고개까지 되돌아 나와 청량사로 내려선다. 선경에 취한 탓에 그리 힘들다는 기분은 들지 않지만, 경사가 가파른 계단길이라 무릎이 시큰거린다.

한때 27개의 암자를 거느린 청량사의 법당인 유리보전(琉璃寶殿)에는 모든 중생의 병을 다스리는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는데, 종이를 다져 만든 '지불'(紙佛)이다. 본전 앞에는 원효대사의 전설이 깃든 '삼각우송'(三角牛松)이 서 있다. 지난 5월 봉화군 제51호 보호수로 지정된 적송(赤松)은 세 방향으로 뻗은 가지가 일품이다.

청량사를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시멘트길 왼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청량정사와 '산꾼의 집'에 들른다. 퇴계 이황이 공부하던 자리에 제자들이 세운 청량정사는 구한말 의병투쟁의 근원지였다. 청량정사의 요사채인 '산꾼의 집'에서는 무료로 제공하는 약초차를 마시며 다양한 솟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산책로라 할 만큼 평탄한 오솔길1㎞를 쉬엄쉬엄 내려오면 입석이다.

걷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는 청량산 가을은 붉게 물드는 단풍(丹楓)도 좋지만 노란 빛깔을 띠는 생강나무의 황풍(黃楓)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기암절벽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9/12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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