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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스토리] "역차별" vs "새 희망"…첫 블라인드 채용 앞둔 취준생들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김서연 인턴기자 = "지방대 학생에게는 블라인드 채용이 반가운 소식이죠. 학교 이름과 성적을 가리고 당당하게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공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이수현(24) 씨는 작년보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최근 취업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블라인드 채용' 때문이다. 올해부터 공공기관 이력서에서 사진, 학력, 가족관계 등의 정보가 빠진다.

이미 7월에 모든 공기업에서 시행됐으며, 지난달에는 지방 공기업, 이달부터는 지방출자·출연기관을 포함한 지방 공공기관 전체로 확대될 예정이다. 당장 30일을 기점으로 인천공항공사, 코레일 등 3천500명의 대규모 채용이 시작된다.

첫 블라인드 채용을 맞이하는 청춘들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12일 주요 공기업 입시 학원이 모인 서울 동작구 노량진 일대를 찾아 분위기를 직접 살폈다. 실제로 결전을 앞둔 공기업 취업준비생들의 함께 목소리도 들어봤다. 노량진 중심가에 위치한 한 공기업 입시 학원은 이른 시간임에도 수험생으로 북적댔다. 100여 석의 스터디룸은 빈자리가 찾기 힘들 정도다. 학원 복도 게시판에는 스터디원 모집, 수험서 판매 등의 내용이 담긴 쪽지로 빽빽했다.

고용노동부에서 제공한 공공기관 표준 이력서

강의실 복도를 비롯해 휴게실과 강의실 주변에도 수험생으로 가득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전화 통화와 문자 메시지 전송 정도만 가능한 구형 2G 휴대폰을 쓴다. 드물게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한 수험생마저도 "(공기업 시험 준비를 위해) 모바일 메신저와 SNS를 모두 삭제했다"고 말했다.

학원 로비에 위치한 입시 상담실 근처에는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리는 예비 수험생들로 혼잡스러웠다. 학원 관계자는 "요즘 채용 방식이 (블라인드로) 변하면서 수강생 문의가 많다"며 "기본적인 스펙만 있어도 1차는 통과하니까, 학생들이 2차 필기 시험에 대해 특히 궁금해한다"고 전했다.

'공공기관 합동채용 발표' 노량진에 붙은 전단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7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공기업 입시학원에 수험생 모집 광고물이 붙어 있다. 2017.9.7 kihun@yna.co.kr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수험생들의 관심은 뜨겁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대졸 신입 공채에 도전하는 청년 577명 중 64.5%(복수응답)가 블라인드 채용을 핫이슈로 꼽았다. 그 뒤를 '채용규모 확대'(38.5%), '직무중심 채용'(30.2%), '열린 채용 확대'(28.1%) 등이 따랐다. 사실상 처음 쓰는 '사진 없는 이력서'에 대한 열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수험생들은 블라인드 채용 도입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공기업 입시 준비 2년 차인 김모(27)씨는 "학벌이 채용 과정에서 가려진다고 자신이 쌓아온 능력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공정하게 평가받지 못했던 사람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준생의 82.2%가 찬성에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불필요한 개인신상 정보 등 기존 이력서 항목에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해서'(56.5%), '스펙이 곧 현업에서의 실무 역량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서'(51.6%)가 나란히 절반 이상의 응답률(복수응답)을 얻었다.

반면에 달라진 채용 방식에 불안감을 느끼는 이도 있다. 올해부터 공기업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는 이모(25) 씨는 "전보다 한정적인 정보만으로 심사하게 될 텐데, 지금 요구되는 서류들은 지나치게 획일적이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공공기관이 블라인드 채용만으로 지원자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는 게 가능하냐는 얘기다.

학벌 블라인드가 역차별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서울시립대학교에 재학 중인 유재규(25) 씨는 "좋은 대학에 가기까지 (초중고 도합) 16년의 노력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며 "기회의 균등이라는 정부의 취지와 상반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블라인드 채용의 바람은 서점가에서도 감지된다. 서류 통과 가능성이 커지면서 필기 시험 대비에 집중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필기 전형에서 주요 항목인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시험에 대한 관심이 높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들어 8월까지 NCS 수험도서 판매량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9.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적성검사 교재도 1만여 권 더 팔렸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이번 블라인드 채용이 얼어붙은 취업 시장에 활기를 불러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취업준비생의 절반가량(48.6%)은 "블라인드 채용으로 취업이 유리해질 것 같다"고 응답했다.

올해 공기업 채용규모가 사상 최대치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정부는 올해 초 공공부문에서 대거 신규채용을 시행할 계획이라 밝혔다. 사상 처음으로 공공기관 신규채용 인력이 2만 명을 돌파했던 지난해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블라인드 채용에 더 기대를 거는 이유는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 때문이다. 지난 13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14~29세) 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999년 8월의 10.7% 이후 가장 높은 9.4%다. '사진 없고, 가족 관계 없고, 학력 없는 이력서'는 취업 한파 속 훈풍이 될 수 있을까.

인포그래픽=김유정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9/17 08: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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