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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돌문화공원 & 해녀박물관

제주 역사와 문화, 삶이 녹아 있는 두 공간

(제주=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제주는 돌을 빼놓고는 상상할 수도, 이야기할 수도 없는 '돌의 섬'이다. 땅과 산은 물론이고 섬을 빙 두른 해안선까지 온통 돌투성이다. 올렛담, 울담, 밭담, 원담 등 손으로 일일이 쌓아 두른 돌담의 총 길이는 지구를 거의 한 바퀴 돌 수 있는 3만6천여㎞로 추정된다.

박물관이자 생태공원인 돌문화공원 전경 [사진/전수영 기자]

◇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 할망'

돌문화공원은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설문대 할망과 그의 오백아들에 얽힌 슬픈 전설과 제주민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돌 문화를 주제로 한 박물관이자 생태공원이다. 매표소에서 물장오리를 상징하는 연못과 오백장군을 상징하는 '전설의 통로'를 지나면 아들들을 위해 자기 몸을 바친 숭고한 모성애와 오백아들의 슬픈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설문대 할망 모탑과 8기의 위령탑이 기다린다.

설문대 할망은 얼마나 키가 컸던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다리는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졌다고 한다. 신고 있던 나막신으로 바닷가에 있는 흙을 퍼다가 한라산을 쌓았고, 할망이 걸을 때마다 나막신에서 떨어진 흙덩이가 오름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설문대 할망은 양식을 구하러 나갔다 돌아온 아들들에게 먹일 죽을 끓이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죽솥에 빠져 죽었다. 그 죽을 먹다가 엄마의 뼈를 발견한 막내아들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차귀도의 바위가 되었다. 나머지 형들은 한라산 서남쪽 산 중턱의 기암절벽 '오백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설문대 할망이 자신의 큰 키를 자랑하다가 '물장오리'라는 연못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도 있다.

무슨 연유로 탑이 9기일까. 현길홍 문화관광해설사는 "한라산 영실의 오백장군 바위 499의 9, 돌문화공원 주소 교래리 119번지의 9, 그리고 백운철 탐라목석원 원장이 평생 모은 자연석과 민속품을 북제주군과 무상 기증한 협약일인 1월 19일의 9, 돌문화공원 기공일 9월 19일의 9를 따서 9기의 돌탑을 쌓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곳에서 숲길을 지나면 지름 40m, 둘레 125m에 달하는 대형 연못이 눈에 들어온다. 깊이 8m로 패여 있던 낮은 구릉지를 이용해 지상 1층, 지하 2층 규모로 세워진 돌박물관의 옥상에 설계된 '하늘연못'은 설문대 할망 전설 속의 죽솥과 물장오리, 백록담을 상징적으로 디자인한 것으로, 수상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제주형성전시관은 화산활동으로 동굴, 오름 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제주형성전시관이다. 사진과 영상, 패널을 통해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동굴, 오름 등 제주의 형성과정이나 서귀포층과 용천수 등 제주에 관한 기본 지식을 배울 수 있다. 이어지는 돌갤러리는 한라산이 폭발해 용암이 지상으로 분출하면서 빚어낸 기묘한 돌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다.

돌갤러리 입구의 양편으로 20여 개의 크고 작은 용암구들이 전시돼 있다. 왼쪽은 원형 그대로이고, 오른쪽은 내부의 단면을 볼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파낸 것이어서 용암구의 내외부 특징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다.

삼나무 위에 사람 머리 모양의 자연석을 올려놓은 두상석을 지나 마그마 방울들이 공중을 날아갈 때 굳어져 지표에 떨어진 화산탄, 타다 남은 숯이나 나무잔재들의 틈으로 용암이 흘러들어가 생성된 독특한 형태의 용암수형 캐스트(부채돌), 용암동굴의 생성물인 종유석과 석순, 오랜 시간에 걸쳐 빚어진 풍화혈 등을 대면하면 제주만의 독특한 돌들의 추상적인 자연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듯한 형상을 만나고, 시선에 따라 돌이 짓는 표정과 형상이 달라지는 특이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익살맞고 해학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동자석

돌박물관을 나오면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의 돌문화를 엿볼 수 있는 돌문화야외전시장이 이어진다. 곶자왈 생태를 그대로 보존한 숲 속 곳곳에서 집 길목을 지켜주는 정주석, 외양간에서 소나 말이 도망가지 못하게 줄을 묶어 두는 맴돌, 밭을 갈아본 적이 없는 송아지에게 밭갈이를 가르치기 위한 곰돌, 화로의 일종인 봉덕 등 돌을 이용한 다양한 도구를 만날 수 있다.

또 상반신만 표현된 신체와 앞가슴에 촛대·술병·꽃·부채·표주박 등을 두 손 모아 받들고 있는 다양한 동자석에서는 제주민들의 숨겨진 유머를 볼 수 있다. 제각각 익살맞고 해학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동자석은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이곳으로 옮겨와 오롯이 버티고 서 있을까.

돌하르방이 줄지어 서 있는 포토존 명소를 지나면 오백장군 갤러리다. 갤러리 지하 1층 상설전시실에서는 '살아 백 년 죽어 천 년을 산다'는 조록나무의 고사목(枯死木)뿌리(조록형상목)를 감상할 수 있는데, 약한 부분은 썩어 없어지고 단단한 수지(樹脂) 부분만 남은 절묘한 조형적 아름다움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온다.

오백장군 이미지를 형상화한 수십 기의 군상들을 지나 출구 쪽으로 나가면 '어머니 방'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곳에는 일본으로 반출될 뻔했던 사연을 안고 있는 용암이 빚어낸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볼수록 오묘한 형상이다.

오묘한 형상의 관세음보살상

◇ 인류무형문화유산 '제주 해녀문화'

제주 탄생의 신 설문대, 생명의 신 삼승, 바람의 신 영등, 운명의 신 가믄장아기 등 제주도의 중요한 신들은 물론 마을을 관장하는 당신들은 거의 여신(女神)이다. 이는 척박한 환경과 거친 역사 속에서 꿋꿋하게 삶을 이끌어온 제주 해녀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을 길어오고 밭일을 하며, 물때에 맞춰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는 등 땅과 바다를 부지런히 오가며 생계를 꾸려온 것이 해녀들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뿌리를 내린 제주도 특유의 해녀 문화는 지난해 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현재 제주 해녀는 4천400여 명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해녀박물관은 제주 해녀의 삶과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제주시 구좌읍의 해녀박물관은 3개의 전시실과 어린이해녀관, 3층 전망대로 구성됐다.

제1전시실에는 '해녀의 생활'을 주제로 이남숙 해녀(1921∼2008)가 사용했던 생활용품을 전시한 해녀의 집이 있다. 해녀가 즐겨 먹던 음식과 신앙 관련 유물을 만날 수 있다. 80세까지 물질을 한 이남숙 해녀는 제주 4·3사건 때 남편을 잃은 뒤 어린 두 딸을 키우며 억척같은 생활을 꾸려 나간 상군해녀였다.

제2전시실 주제는 '해녀의 일터'로 해녀들이 가슴에 안고 헤엄치는 태왁, 해산물을 채취할 때 쓰는 도구인 까꾸리와 빗창, 물안경인 왕눈과 눈곽 같은 물질도구들을 살펴볼 수 있다. 물질할 때 입는 물소중이와 고무옷은 물옷의 역사와 변천 과정을 잘 보여준다.

'해녀의 생애'가 주제인 제3전시실에서는 해녀들이 직접 들려주는 삶의 기억을 담은 영상물을 시청할 수 있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해녀들은 물질의 고됨과 위험함을 이겨냈다. 헤드폰으로 듣는 제주어와 영상 자막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린이해녀관에는 해녀처럼 숨참기, 재미있는 고망낚시, 불턱(해녀들이 불을 쬐던 쉼터) 책방 등 다채로운 체험 시설이 마련돼 있다. 3층 전망대에 오르면 해녀들의 작업장인 바다와 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올레 21코스의 시작점인 해녀박물관 야외광장에는 제주 해녀 항일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수산물 수탈과 민족 차별에 항거한 해녀들의 항일운동 집결지였다.

해녀박물관에 가면 해녀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엿볼 수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12/08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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