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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도망가는 시민을 쫓지 말라" 5·18의 숨은 영웅 안병하 치안감

[https://youtu.be/TxNajBdql7I]

<<시각장애인 음성정보 지원을 위한 텍스트입니다>>

"광주사태 초기 계엄군이 시위진압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전남 경찰국장의 중대한 과실 때문이었다"

자료 / 전두환 회고록

5·18 민주화 운동 때 직무유기 혐의로 체포된 당시 전남 경찰국장 안병하 치안감(당시 경무관).

바로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당시 신군부의 명령은 '시민을 향한 발포'와 '무장 경찰의 강경한 시위 대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안 치안감은 이를 거부하고 경찰의 무기를 회수했습니다. 또한, '시민들의 야유에 대응하지 말라', '도망가는 시민을 쫓지 말라'는 등 시민의 안전을 위한 지시를 내렸죠.

"아버지는 자신의 고집 때문에 부하를 잃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 안병하 치안감 아들 안호재

강경하게 진압하지 말라는 지시에 따라 시위대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경찰관 4명이 순직했습니다. 안 치안감은 죽기 전까지도 "순직한 부하들을 챙겨달라"며 애통해 했습니다.

신군부의 명을 거부했던 그는 5·18 직후 체포돼 직위해제 됐으며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결국, 1988년 10월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됐죠.

그의 일생은 나라를 위한 삶이었습니다. 6·25전쟁 당시 육군 중위였던 그는 '춘천대첩'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또한, 경찰이 된 뒤에도 북한 무장공비를 소탕하는 활약을 보였습니다.

절대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경찰 희생자가 있더라도)

주동자 외에는 연행치 말 것(교내에서 연행 금지)

경찰봉 사용 유의(반말, 욕설 엄금)

군에게 인계받는 부상자 치료, 식사제공

- 메모 내용 중 일부

10일 안 치안감의 유족은 5·18 당시 고인의 자필 메모를 공개했습니다. 안전 집회를 위한 지시사항, 5·18 발생 원인, 시민에 대한 고마운 마음 등이 담겨있었습니다.

"안 경무관의 온건 진압 지침은 유혈사태 확산을 방지하고 국민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한 민주화운동의 일환이었다"

자료 /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그는 1992년 5·18 유공자에 이어 2006년 순직 경찰로 등록됐으며 지난해 1계급 특진으로 치안감이 됐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를 기억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박효연 이한나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5/18 06:5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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