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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D-15] ③ "운전대 잡은 사장님"…기업 자구책 '골몰'

주요 그룹, 유연근무제 등 시범운영…업종별 대책 마련 분주
중견·중소기업 "인력도 부족한데 근무시간까지 줄이면…"

직장인들 야근 모습
직장인들 야근 모습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윤보람 김은경 기자 = 한 대기업 대표이사는 지난달 모처럼 자가용의 뒷자리가 아닌 운전석에 앉았다고 한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자신의 운전기사가 지금처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근무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운전연습을 해서 주말 일정만이라도 직접 운전대를 잡고 소화하겠다는 생각에서다.

한 중견기업의 영업직 사원은 다음달부터 거래처 관계자와 저녁식사를 한 뒤 계산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일주일에 최소 2∼3차례 '접대' 자리가 불가피하지만 법인카드를 쓰면 곧바로 시간외 근무에 포함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2004년 도입된 '주 5일 근무제' 이후 직장인들에게 가장 큰 변화로 여겨지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보름 앞두고 일선 기업들은 이처럼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신세다.

◇ 대기업 '선제대응'…업무집중 시즌 대비책 고민

삼성, 현대차 등 주요 그룹의 계열사들은 '주 52시간'이 아닌 '주 40시간' 근무를 지향하면서 일찌감치 다양한 방식으로 대비에 나섰다.

지난해 10월부터 주 52시간 근무 '예행연습'을 시작한 삼성전자는 다음 달부터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재량근로제를 동시에 도입하기로 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주 40시간이 아닌 '월평균 주 40시간' 내에서 직원들이 출퇴근 시간과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제도이고, 재량근로제는 업무 수단이나 근로시간 관리와 관련해 직원에게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달부터 본사 일부 조직을 대상으로 '유연근무제'를 도입·운영하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집중 근무시간'에는 반드시 근무하되 나머지 시간은 개인 여건에 맞춰 자유롭게 출퇴근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시범 운영 결과를 토대로 추가 대책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1월 국내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주 35시간 근무제를 적용했다. 이마트는 매장 폐점시간을 자정에서 밤 11시로 한 시간 앞당겼고, 최근 유연근무제도 추가로 도입했다.

롯데마트도 이달부터 모든 점포의 영업 종료시간을 자정에서 오후 11시로 한 시간 앞당겼다. 영업시간 단축으로 자정까지 근무하는 인원 가운데 10%가량을 피크 시간대인 오후 2∼5시로 전환했다.

그러나 대기업들도 업종과 직무에 따라 집중 근무가 필요한 기간에 적용할 '묘수'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IT·전자 업계의 경우 신제품 출시 등을 앞두고 연구개발(R&D) 부문에서는 수시로 '밤샘 근무'가 불가피하고, 정유업계에서는 주기적으로 공장 유지·보수 기간에 담당 직원들이 근무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다.

조선업종도 새로 건조된 선박이 실제 운항 조건에서 제대로 운항하는지 점검하기 위해 최장 1년간 해상에 머물러야 하는 시운전 부서 등에서는 연장근로가 필수적이지만 아직 뾰족한 대책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 중견·중소기업 "경영여건 악화 불가피"

직원 수 300명 이상 중견기업 가운데 상당수는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준수하겠다면서도 여전히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식으로 사실상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서 당장 다음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될 경우 상황이 더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한 기업 대표는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직원 수를 늘려야 하지만 중견·중소기업은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면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산업·지역별로 차등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견·중소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 대응 방안으로 인력 충원 외에 공정 자동화 등 설비 투자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분위기다.

이의현 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곳이 많아 노후 설비를 첨단 자동화 기기로 교체하는 분위기"라면서 "당장 돈이 들어가더라도 인건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다음달 근로시간 단축 적용 유예 대상인 직원 수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들도 걱정은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연간 12조3천억원의 노동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데,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비용 부담이 이 가운데 70%(8조6천억원)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은 막연하게 '어떤 식으로든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막상 시행되면 엄청난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면서 "특히 이른바 '워라밸'과 '일자리 나누기'를 취지로 도입되는 근로시간 단축이 다른 형태의 업무 스트레스와 고용 감소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다른 기업 임원은 "근로시간 단축은 '시대적 큰 흐름'이므로 피할 수 없다"면서 "기왕에 도입하기로 한 만큼 취지에 맞게 기업문화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uman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6/15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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