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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암살범 향한 10년의 추격…청년 곽태영을 아십니까

안두희 자백받고자 비수로 응징…양구서 광복절마다 기념식

(양구=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백범 김구 선생의 시해범 안두희를 이곳에서 비수로 응징했지만 죽이지는 못했습니다. 민족의 반역자가 어떻게 단죄받지 않고 이 땅에 떵떵거리고 살 수 있단 말입니까."

백범 김구 선생 장례행렬 [연합뉴스 자료사진]
백범 김구 선생 장례행렬 [연합뉴스 자료사진]

1949년 6월 26일 낮 12시 45분, 백범 김구 선생이 육군 소위 안두희가 쏜 45구경 권총에 맞아 숨졌다.

광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73세 독립운동가가 쓰러지자 남북 통일정부 수립을 염원하던 국민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때 국민학교 6학년생 곽태영 군은 "안두희를 죽여야겠다"는 각오를 새겼다. 그는 숙부가 독립운동가였던 애국 집안의 자손이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곽태영은 김구 선생 묘역을 찾았다. 그곳에서 안두희를 응징하기로 맹세하고 그의 사진을 가슴에 품은 채 보따리 장사를 시작하면서 추적에 나섰다.

안두희는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사면 복권돼 군에 복귀, 중령으로 예편했다.

그는 양구에서 3군단 예하 2개 사단에 군납업을 했는데, 강원도 납세 실적 2위를 기록할 만큼 사업을 키웠다.

집 앞에는 커다란 연못을 만들고 그 가운데 정자를 세워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 [연합뉴스 자료사진]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구 선생 암살범이 양구에 사는 것을 알게 된 청년 곽태영은 인근 염소농장에 하숙하며 기회를 엿봤다.

1965년 12월 22일 아침.

안두희는 세수를 하려고 목에 수건을 걸치고 양치질을 하며 공장 앞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곽씨는 그에게 다가가 목에 비수를 겨누며 "백범 선생님 시해 배후를 밝혀라"고 윽박질렀다. 뒷걸음질 치는 그를 습격한 곽씨는 커다란 돌로 다시 머리를 내리쳤다.

곽씨는 의식을 잃은 그가 숨졌다고 생각해 그 자리에서 "김구 선생 만세! 남북통일 만세!"를 외쳤다. 그의 나이 29세, 추격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던 해 일이었다.

하지만 안두희는 두 차례 수술을 받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 곽씨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다음 해 7월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범행 동기가 '공분'이었다는 판단에서였다. 곽씨는 수감된 지 7개월이 지나 석방됐다.

조성만 민주국민장 영결식 참석한 곽태영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성만 민주국민장 영결식 참석한 곽태영 [연합뉴스 자료사진]

청년 곽태영의 의분과 결단에 안두희는 백범 암살 16년여 만에 처음으로 응징받게 됐다.

이 사건으로 전국에서 애국 청년 곽태영을 석방하라는 서명운동이 일어나 60만 명이 참여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장한 일을 했다는 격려 편지를 1만여 통이나 받았다.

또한, 아버지는 아들이 자랑스럽다며 마을 사람들에게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이후 안두희는 1996년 10월 23일 오전 인천시 중구 자택에서 당시 버스 기사였던 박기서 씨가 휘두른 정의봉에 맞아 사망했다. 온전한 죗값을 받는 데는 47년이 걸린 것이다.

곽씨가 안두희를 응징했던 곳 인근인 양구교육청 옛 도서관 앞마당에는 현재 비석 세 개가 우뚝 서 있다.

오른쪽은 곽태영 선생 의거비로 '국부 광복의 거성 김구 선생, 만고의 원흉 괘심한(괘씸한) 아드흐(안두희), 억만인 흠모할 곽태영 의사'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가운데는 김구 선생 어록비로 '평생염원 오국독립'이 담겼으며, 왼쪽은 민족정기소생협회 33인이 세운 곽태영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나란히 놓인 비석
나란히 놓인 비석

과거 이 비석들은 가시덤불과 쓰레기 더미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2002년 김영진 양구주민연대 대표가 방치된 비석을 발견하고 여러 시민단체와 뜻을 모아 사업비 440만원을 들여 말끔히 정비해 2004년 8월 15일 지역 주민 150여 명과 함께 정비 준공식을 열었다.

양구 주민들은 해마다 8·15 광복절 기념행사를 이곳에서 열고 백범 김구 선생의 독립정신과 곽태영 선생의 의거를 기리고 있다.

김영진(71) 대표는 "지금 세대는 곽태영 선생과 안두희는 물론 백범 김구 선생도 잘 알지 못한다"며 "광복절마다 높은 뜻을 기리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이어져야 할 책임"이라고 말했다.

곽태영 씨는 일제 잔재 청산과 박정희 흉상 철거,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반대 운동 등 사회 운동에 앞장서다 2008년 12월 1일 지병으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김구·곽태영 선생 비석 정비 준공식 [김영진씨 제공]
김구·곽태영 선생 비석 정비 준공식 [김영진씨 제공]

yangdo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8/15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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