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배너

[실시간뉴스]

최종업데이트YYYY-mm-dd hh:mm:ss

검색

"'목포의 눈물' 아코디언 연주하는 수녀 보셨나요"

에세이집 '겨울빨래 수녀한테 걸렸니?' 펴낸 김현남 수녀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최근 도서 '겨울빨래 수녀한테 걸렸니?'를 펴낸 김현남 수녀가 14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가소비녀회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9.14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중학교 1학년 소풍날, 한 부잣집 딸 아이가 장기자랑에서 어떤 악기로 이탈리아 가곡 '라스파뇨라'를 멋지게 연주했다.

이를 본 소녀는 "저 계집애가 가진 저게 뭐냐"고 물었다. 아코디언이었다.

그날 이후 아코디언 꿈을 꿀 정도로 오매불망하던 소녀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 악기를 앞세워 행복을 전한다.

70대 후반 나이에도 10㎏이 넘는 아코디언을 지고는 전국을 누비며 웃음치료를 하는 김현남(76) 메히틸다 수녀다.

1960년 성가소비녀회에 입회한 그는 수녀원에 들어간 지 10년 만인 1970년 종신서원 선물로 아코디언을 받았다.

지금도 '라스파뇨라'는 가장 아끼는 곡이지만, 요즘 그가 주로 연주하는 곡은 따로 있다.

'눈물 젖은 두만강', 칠갑산', '소양강 처녀', '내 나이가 어때서' 등 트로트가 주요 레퍼토리다.

노인대학, 성당, 교도소 등지에서 하는 웃음치료 강의가 그 무대다.

그는 "'아베마리아' 같은 곡에는 할머니들 박수에 힘이 없었다"며 "트로트를 하면 기립박수가 나올 것 같은 예감에 한 곡당 500번 넘게 연습했다"고 말했다.

요즘도 강의가 없는 날에는 세 시간 넘게 아코디언을 연습할 정도로 그의 노력과 도전은 끝이 없다.

10년전 웃음치료사가 되기에 앞서 그는 '수형자의 대모' 였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8년간 청주교도소와 청주여자교도소를 드나들며 수형자들을 보살폈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수녀가 된 후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지에서 아이들을 돌보던 김 수녀는 '가난한 자를 위해 일하라'는 성가소비녀회 창설자 성재덕 신부 유언을 떠올리며 교정사목 소임을 자청했다.

유치원에서 어린아이들을 돌보다가 하루아침에 수형자들과 지낸다는 게 겁이 날 법도 하지만 김 수녀는 험악한 사내들도 아들처럼 대했다.

그는 "머리 빡빡 깎고 무서운 사람들을 생각했는데 옷(수의)도 푸르스름하게 예뻐 보이고 사람들도 다 착해 보였다"며 "콩깍지가 끼여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조폭 수녀, 왈패 수녀, 불도저 수녀 등 '거친' 별명도 대부분 이때 붙었다.

그는 "유치원 수녀 때는 말도 예쁘게 했는데, 그놈들하고 살다 보니 달라졌다"며 "수녀원에서 습관적으로 욕이 나올 때도 있다"며 웃는다.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최근 도서 '겨울빨래 수녀한테 걸렸니?'를 펴낸 김현남 수녀가 14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가소비녀회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기도하고 있다. 2018.9.14

김 수녀는 최근 60년 가까운 좌충우돌 수녀 생활 이야기를 풀어낸 '겨울빨래 수녀한테 걸렸니?'(예지출판사 펴냄)를 출간했다.

책에는 독실한 천주교 집안 넷째딸로 태어나 '절대음감'을 자랑한 어린 시절부터 수녀가 돼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하며 봉사활동을 펼친 에피소드들, 웃음치료사로 변신해 또 다른 소임을 다하는 이야기까지 빼곡히 담겨 있다.

제목에 등장하는 '겨울빨래 수녀'는 그가 가장 아끼는 별명이다. 잘 마르지 않는 겨울빨래에 빗대 '못 말리는 수녀'라는 뜻이다.

교도소에서도 해결사였던 그는 이가 빠진 무기수에게 틀니를 해주고, 과수원에서 포도를 한 트럭 얻어와 재소자들에게 실컷 먹이기도 했다. 교도소 측에서는 술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며 포도 반입을 제지했지만 "내가 책임지겠다"고 우겨 기어이 통과시켰단다.

이 외에도 여장부 수녀의 파란만장한 무용담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에게는 교도소 등지에서 만난 '아들'이 많다.

인터뷰 도중 걸려온 한 남자 전화에 그는 "네가 내 보람이고 희망"이라며 진짜 아들처럼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냈다.

신용불량자가 돼 삶을 포기할 생각을 하고 마지막으로 김 수녀를 찾았다가 용기를 얻어 새 삶을 사는 젊은이였다.

이번 책에서 나오는 수익도 그를 돕는 데 쓸 거라고 한다.

"내 통장에는 3만원 밖에 없지만 가난한 이들 돕는 게 내 긍지야. 나 같이 산 사람 나와보라고 해"라며 호탕하게 웃던 김 수녀에게 앞으로의 바람을 묻자 갑자기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엄마가 교도소에 있는 아기들이 팔려가는 것을 볼 수가 없다"며 "젖먹이들을 잘 키워 엄마가 출소하는 날 안겨주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출소한 사람 가운데 오갈 데 없는 할머니들, 장애인들을 위해 지난 2001년 청주에 '하늘빛자리'라는 이름의 출소자 집이 마련됐다.

김 수녀가 방방곡곡 뛰어다니며 갖은 노력 끝에 만들어 낸 공간이다. 이곳에서 수녀들이 아이들을 잘 보살펴서 교도소에 간 미혼모들이 아이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게 그의 마지막 바람이다.

doubl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9/17 06:00 송고

광고

댓글쓰기

배너
비주얼뉴스
  • 포토
  • 화보
  • 포토무비
  • 영상
배너
광고
AD(광고)
광고
AD(광고)
AD(광고)
광고
AD(광고)

위키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