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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아메라시안의 대모 펄 벅과 소사희망원

소사희망원이 있던 자리에 부천펄벅기념관이 들어섰다. 기념관 앞에 세워진 펄 벅 여사 흉상. [연합뉴스 자료 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푸른 눈의 노파가 1960년 초겨울 경주를 지나다가 한 농부가 지게에 볏단을 진 채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볏단도 실으면 될 텐데 한국 농부는 왜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한 노파는 농부에게 다가가 "소달구지에 볏단을 실으면 되지 왜 직접 볏단을 지고 가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농부는 오히려 질문이 의아하다는 듯 대답했다. "오늘 우리 소는 종일 밭을 갈았소. 그러니 집에 갈 때라도 좀 가볍게 해줘야 하지 않겠소?" 노파는 농부의 말을 듣고 한국이 참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서양 노파는 미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자란 작가 겸 사회운동가 펄 벅(1892∼1973)이다. 1931년 소설 '대지'를 선보이고 1933년 '아들들'과 '분열된 일가'를 잇따라 펴내 3부작을 완성했다. 이 작품으로 1932년 퓰리처상을 받은 데 이어 1938년에는 미국 여성작가로는 최초로 노벨상의 영예를 안았다. 땅에 뿌리박고 사는 중국 농민 왕룽과 오란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대지'는 세계 각국에서 출간됐고 영화로도 꾸며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벅이 한국을 무대로 한 또 다른 걸작 '살아 있는 갈대'(초역 당시 제목은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를 집필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을 무대로 한 펄 벅의 소설 '살아 있는 갈대' 영문판(오른쪽)과 한글판 초판본. 부천펄벅기념관 소장. [연합뉴스 자료 사진]

벅이 한국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것은 가축의 고단함까지 헤아릴 줄 아는 농부의 마음에 탄복했기 때문이다. 벅은 경주 일대를 여행할 때 감나무 끝에 매달린 10여 개의 감을 보고 "저 감들은 따기 힘들어 그냥 놓아둔 것이냐"라고 일행에게 물었다. 그러자 "먹을 것이 부족한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둔 까치밥"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또다시 탄성을 지르며 "이것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그 뒤 소설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한국은 고상한 국민이 살고 있는 보석 같은 나라다. 이 나라는 주변의 세 나라-중국·러시아·일본-에는 여러 세기 동안 잘 알려져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나 서구 사람들에겐 아시아에서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살아 있는 갈대'는 한미 수교가 이뤄진 1882년부터 1945년 해방 후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기까지 4대에 걸쳐 국권을 되찾으려고 헌신한 안동 김씨 일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말의 관료 김일한이 주인공이지만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벌이는 아들 연춘의 활약상이 핵심이다. 제목은 폭력 앞에 굴하지 않는 김연춘의 별명이기도 하다. 벅은 미국과 중국에서 식품기업과 제약회사를 세워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1895∼1972)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중국에서 지낼 때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서 큰 감화를 받았고, 그 정신적 뿌리를 확인하고자 한국을 찾았다가 소설까지 썼다.

"조선인들은 대단히 긍지가 높은 민족이어서 어떤 경우에도 사사로운 복수나 자행할 사람들이 아니었다"라거나 "갈대 하나가 꺾였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는 다시 수백 개의 갈대가 무성해질 것 아닙니까? 살아 있는 갈대들이 말입니다"라는 대목에서처럼 소설 곳곳에 한국인을 향한 경의와 애정이 묻어난다. '살아 있는 갈대'는 1963년 영어와 한국어로 동시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뉴욕타임스'가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벅은 한국을 소재로 한 소설을 두 편 더 발표했다.

펄 벅이 받은 노벨 문학상 메달. 그는 미국 여성 중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부천펄벅기념관 소장. [연합뉴스 자료 사진]

벅의 한국 사랑은 소설 쓰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1964년 평생 모은 돈의 대부분인 700만 달러를 희사해 미국에서 펄벅재단을 만들고 이듬해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태국, 베트남에 차례로 지부를 설립해 혼혈 고아들을 보살폈다. 고아들의 입양을 주선하고 자신도 7명을 양자로 받아들였다. 1967년 6월(날짜 미상)에는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에 보육원(고아원) 소사희망원을 세웠다. 1960년부터 69년까지 8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몇 달씩 머물며 손수 아이들을 씻기고 입히고 먹였다. 그가 중국에서 오래 생활한 미국인이어서 미군과 아시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메라시안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기도 했지만 이들이 가부장적 분위기 탓에 버려지고 천대받는 일이 잦아 더 애정을 쏟았다. 벅은 이들을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아이들"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앞으로 500년 뒤면 모든 인류가 혼혈이 될 것"이라며 글로벌 시대를 예견하기도 했다.

소사희망원은 유일한이 기부한 유한양행 소사공장 터 3만3천58㎡(약 3만 평)에 들어섰다. 훗날 벅은 "수백 명의 아메라시안 아이들이 참석한 개원식 날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술회했다. 1975년 문을 닫을 때까지 소사희망원에는 2천여 명의 혼혈아가 거쳐 갔다. 한국펄벅재단은 지금도 다문화가정 자녀 지원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부천시는 소사희망원 자리에 2006년 부천펄벅기념관을 세웠다. 이곳은 '살아 있는 갈대' 초판본, 80회 생일 때 소사희망원 출신들에게서 선물받은 산수화, 타자기, 가방, 머리핀 등 유품 250여 점을 전시하고 있으며 펄벅문학상 공모, 그림 그리기 대회, 문화예술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 3월 4일 부천펄벅기념관에서 열린 펄 벅 여사 44주기 추모식에서 소사희망원 출신 혼혈 가수 정동권이 벅 여사를 추모하며 만든 노래 '연꽃처럼 뿌리내려'를 열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지난 3월 4일 부천펄벅기념관 앞에서는 펄 벅 여사 44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인기 그룹 '함중아와 양키스'의 원년 멤버였던 혼혈 가수 정동권은 "그분은 제게 뚜렷한 목적을 주셨습니다. 기술을 배우고 공부해서 여기서 한국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1993년 벅 여사를 추모하며 만든 노래 '연꽃처럼 뿌리내려'를 열창하기도 했다. 이달로 소사희망원이 문을 연 지 50년을 맞았다. 오는 26일은 펄 벅 탄생 125주년 기념일이다. 노벨상 수상작을 쓴 그의 작가 정신보다 더 위대한 그의 헌신과 봉사와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 주변의 어려운 아이들을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hee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6/05 07: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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