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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조선 지식인들이 본 세계>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처음 며칠간 나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입술을 자르거나 혀를 찌르지 않고, 또 옷 전체에 고기 조각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 나이프와 포크를 다루는 데는 상당한 기술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중략) 게다가 외국의 풍습은 놀랍게도 숙녀들이 밥상에서 말을 한다는 것이다"
1896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러 떠난 민영환을 수행했던 김득련이 서구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문화적 차이다.

   김옥균, 박영효 등 갑신정변 주모자들을 잡아오라는 고종의 명을 받고 일본에 간 유학자 박대양은 1885년 서구식 사교장인 로쿠메이칸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했다가 아연실색한다.

  



"모든 문무고관들이 자기의 부녀를 거느리고 와서 각국인 남녀와 어울려 둘씩 둘씩 서로 껴안고 밤새도록 춤을 추었다. 그 광경은 비단 같은 꽃 떨기 속에서 새와 짐승들이 떼 지어 희롱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일본 여성이 자신에게 악수를 청한 것에 대해서도 기겁을 한다. "창부(娼婦)나 주모(酒母)의 손도 일찍이 한 번 잡아본 일이 없는데, 갑자기 이런 경우를 당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대 초기 조선인들의 해외여행은 대부분 공무와 관련된 사신 행렬이나 유학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유학 이외의 목적으로도 해외여행을 감행했다.

   근대기에 일본, 중국, 러시아, 동남아시아, 영국 등 해외를 여행한 조선인들의 기행문에서 당시 조선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이승원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가 펴낸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휴머니스트)은 나혜석, 윤치호, 최영숙 등 많은 지식인이 본 세계를 그렸다.

   저자는 근대 초기부터 나온 많은 해외여행기가 서구가 만들어낸 지식과 문명에 대한 설명과 서구 문명에 대한 동경과 비판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설명한다. 또 해외여행은 나와 다른 세계를 경험해 지식을 확장하는 계기였으며 조선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한다.

   민영환은 동남아시아와 아라비아 반도의 나라들을 야만으로 표현했다. 그에게 싱가포르의 원주민은 추하고 더러운 사람들이었다. 그에 비해 서구는 문명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영국 사람은 마음가짐이 정밀하고 일하는 것도 견고하고도 참을성이 있으며…."
서구의 문명을 척도로 세계의 인종과 풍속을 구분하는 민영환의 무의식에는 서구에 대한 동일화의 욕망이 내재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피해자'라고 외쳤던 우리가 언제든지 '가해자'로 돌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였다는 것이다.

   340쪽. 1만6천원.

   kimy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9/12/03 19:04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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