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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 독도 표시한 울릉도지도 있었다"
선우영준 박사, 한일경제사학회 월례발표서 주장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신라 시대 때 이미 독도를 표시한 울릉도 지도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독도 영유권' 논문으로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동안 울릉도ㆍ독도 관련 논문을 꾸준히 발표해온 선우영준 박사는 12일 한일경제사학회 월례발표회에 앞서 11일 배포한 '서기 512년 그 전의 우산국도의 기본 틀과 독도'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이 같이 주장하고, 자신이 복원한 '우산국도'를 공개했다.

   선우 박사는 "일본과 울릉도의 영유권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했던 조선 숙종 때 영의정 남구만이 '신라 때 이 섬(울릉도)을 그린 지도에도 또한 나라 이름이 있다(新羅圖此島亦有國名)'는 점을 들어 울릉도가 조선 땅임을 주장하는 내용이 나온다"며 "이는 신라 때의 울릉도 지도가 숙종 때까지 전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우영준 박사가 복원한 우산국도


이어 그는 이 우산국도는 신라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한 512년보다 앞서 그려졌을 것이며,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와 울릉도인의 어업 등을 고려해볼 때 이 지도에는 독도가 그려졌을 것이라고 논증했다.

   독도는 맑은 날 울릉도에서 육안으로도 보이는 거리에 있는 데다, 거주민들은 독도에만 있는 강치를 잡아 기름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울릉도 지도에 독도를 표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선우 박사는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한 지도책 '지승(地乘)'을 바탕으로 해서 이 우산국도를 복원하고 우산국의 실제 이름으로 추정하는 '우루마'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이 지도의 남동쪽에 '배가 머무를 수 있다(船泊可居)'는 설명과 함께 그려진 섬이 독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1800년 이전에 제작된 지도들인 '대동총도(大東總圖)'와 '팔도여지도(八道輿地圖)', '지승' 등에 수록된 울릉도가 "울릉도에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릴 수 없는 지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 근거로는 이들 지도가 섬 내의 6개 하천을 중심으로 제작됐다는 점을 들었다. 하천이 중심이 된 것은 식수를 구하기 어려운 '섬에서의 생활'과 연계된다는 것이다.

   또 이들 하천 가운데 하나에는 '대천유출(大川流出)'이라고 쓰여 있는데, 지도 제작을 위해 잠깐 이곳을 답사한 외부인들이라면 뭍의 하천에 비해 엄청나게 작은 규모의 하천을 두고 '대천'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봤다.

   지도에 중봉(中峰. 지금의 성인봉)에서 외곽 5곳까지의 거리가 체계적으로 표시됐다는 점도 중요 근거로 제시됐다.

   선우 박사는 이와 같은 정보는 잠깐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조사할 수도 없고 조사해야 할 필요성도 없는 것으로, 이곳에 고도의 행정 체계가 있었을 때 조사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 밖에 섬이 실제 모양과 같이 둥근 모양으로 그려졌다거나 섬 주위의 '이용가치 없는' 기암괴석을 표기하지 않았다는 점도 거주민들의 입장에서 그려진 근거라고 덧붙였다.

   더구나 이들 지도의 모양과 표기정보가 서로 거의 유사하다는 점으로 미뤄보아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원형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지도가 바로 숙종실록에 나오는 '우산국도'라고 결론을 내렸다.

   512년에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한 이후로는 울릉도에 정밀한 행정 체계가 있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comma@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0/06/11 11:0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