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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할퀸 상처 70년 참아낸 안동 탑동마을>
중앙선 복선화로 철길 옮길 듯
경술국치 100년 상처 아물지 관심

(안동=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일본제국이 1942년에 부설한 중앙선 철도(서울 청량리∼경주)의 복선전철화 사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최근 충북 도담∼경북 안동 구간에 대한 복선화 사업이 사실상 결정되면서 안동 탑동마을의 역사적 비극이 회자되고 있다.

   일제는 당시 철도를 만들면서 지금의 안동시 북후면에서 안동시내로 직진하는 코스 대신에 한참을 우회해 이 마을 앞을 지나게 했는데, 이 구간이 70년 만에 새롭게 조정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탑동마을이 속한 안동시 법흥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한국 독립운동사의 빛나는 별로 남아 있는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년.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臨淸閣)이 자리 잡고 있다.

   고성 이씨 집안의 종택이기도 한 이 집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법흥사라는 절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데 1500년대 초에 99칸의 대저택으로 조성됐으나 일본강점기인 1930년 후반에 중앙선 철도가 집 마당을 가로지르면서 50여칸으로 줄어드는 아픔을 겪었다.

   일제는 명망 있는 독립운동가 집안의 맥을 끊고자 일부러 먼 거리를 우회해 철로를 부설했지만 나라 잃은 백성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석주 선생은 이역만리에서 숨을 거둔 뒤였으며 그의 아들과 손자가 귀국한 상태였지만 일제의 호적을 거부함에 따라 임청각의 소유권은 고성 이씨 집안 사람 등 4명에게 분산된 채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

   영남산을 뒤로하고 낙동강을 앞에 둔 천하명당의 고택이 일제의 무자비한 삽질에 맥없이 무너지면서 '大독립운동가' 집안은 그야말로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석주 선생의 아들은 나라 잃은 울분을 견디다 못해 자결했고 손자 또한 해방 후 친일세력의 탄압을 견디다 6.25 전쟁 중에 한 많은 삶을 마감해야 했다.

   남은 자손들도 이렇다 할 유산 없이 평생 어려운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명문대갓집 마당 한가운데를 가로지른 철길은 이 집안뿐 아니라 집 앞에 서 있던 한 그루 고목(古木)의 생명도 앗아가고 말았다.

   300여년 전에 이 집 대문 앞에 심었던 회화나무가 철길이 나면서 고립돼 70년 가까이 외롭게 풍상을 겪어오다가 결국 지난 2008년 여름 어느 날 새벽에 밑동이 잘리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 나무는 안동지역에서 신령스러운 나무로 여겨져 왔던 터라 주민들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심한 철길은 우리나라 국보급 문화재를 훼손하는 데도 한몫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벽돌탑인 국보16호 안동 신세동 7층 전탑이 그 주인공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1천년 넘게 풍상을 견디며 꿋꿋한 자태를 뽐내 왔지만, 일제가 불과 몇 미터 옆에 철길을 내는 바람에 70년 가까이 밤낮으로 소음과 진동에 시달리면서 급격한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 탑신이 점점 한쪽으로 기우는 가운데 하루빨리 철길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또한 '신세동 전탑'이라는 이름부터가 원래 지명인 '법흥동'을 일제가 마음대로 고쳐 부른 것이어서 더욱 비애를 느끼게 해 주고 있다.

   김호태 안동문화지킴이 대표는 "중앙선 철길이 지나는 안동 탑동마을은 철길이 놓이기 전인 1910년에는 일본군 수비대가 머물렀고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 군대가 주둔한 역사적 아픔이 짙게 밴 곳"이라며 "하루빨리 철길을 허물고 잃어버렸던 70년 역사를 되찾아야 할 때가 됐다."라고 말했다.

   yongmin@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0/07/12 06:3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