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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얼'이 야스쿠니신사에 누워 있었다>
80년전 절멸된 조선시대 실전용 활 일본서 발견
(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일본 야스쿠니신사 내 유물 전시관인 유슈칸(遊就館)이 8일까지 개최하는 '가미카제(神風)'라는 이름의 특별 전시회에서 국내에서는 자취를 감춘 조선시대 실전용 활이 공개됐다. 전문가들은 이 활이 검은색 옻칠이 돼 있고, 실 등으로 표면을 둘러싼 흔적이 뚜렷해 지금까지 발견된 조선시대 활 중에서 실전용 활이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입을 모았다. 2010.12.3 <<국제뉴스부 기사 참조>> chungwon@yna.co.kr

(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흔히 '조선은 활, 일본은 칼'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실제로 전투에서 쓰인 활은 본 적이 없어서 답답했죠. 그동안 조선 활의 우수성을 얘기하려면 수노(手弩.특수형 실전용 활) 얘기를 할 수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진짜 조선의 활을) 본 거죠"
경기도 파주에 있는 영집궁시박물관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인 유영기씨와 함께 조선 활 복원에 열중해온 아들 유세현씨는 3일 연합뉴스가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유슈칸(遊就館)에서 촬영한 조선 활의 사진을 본 뒤 다소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유세현씨가 이 활이 국내에서는 자취를 감춘 조선시대 실전용 활이라고 단정하는 근거는 비교적 단순했다. 활 표면에 검은색 칠이 돼 있는 것은 옻칠을 한 것으로 보이고, 실 등으로 둘러싼 흔적이 뚜렷하다는 점.

   왜 이같은 특징이 연습용 활과 실전용 활을 가르는 기준이 될까.

   조선 활의 특징은 뿔과 산뽕나무 등을 잘라붙여 만들었다는 점이다. 작고 동그란 모양의 조선 활은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의 활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활 줄을 오랫동안 걸어두면 활이 갈라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연습용 활은 쏘고 난 뒤에는 반드시 줄을 풀고서 보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전용 활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실을 여러 번 감아서 강도를 보강하고, 그 위에 옻칠까지 했다.

   군사편찬연구소의 김병륜 객원연구원이나 전쟁기념관의 박재광 팀장은 활 양쪽 끝이 꺾이는 모양새나 활 시위가 걸쳐지는 '도고자'라는 부분의 모양새도 연습용 활과는 다른 실전용 활이라고 지적했다.

   그럼 이같은 조선의 실전용 활이 왜 국내에는 남아있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을까.

   이에 대해 유세현씨는 활의 특성상 8년 이상을 쓰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특별히 보관하지 않는 한 이래저래 상하기 쉬운 게 활이라는 것. 김병륜 연구원은 조선시대 말기 군 제도 개편과 일제강점기 체계적인 회수 과정을 거치면서 활을 비롯해 조선시대 무기가 자취를 감췄다고 설명했다.

80년전 절멸된 조선시대 실전용 활 일본서 발견
(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일본 야스쿠니신사 내 유물 전시관인 유슈칸(遊就館)이 8일까지 개최하는 '가미카제(神風)'라는 이름의 특별 전시회에서 국내에서는 자취를 감춘 조선시대 실전용 활이 공개됐다. 전문가들은 이 활이 검은색 옻칠이 돼 있고, 실 등으로 표면을 둘러싼 흔적이 뚜렷해 지금까지 발견된 조선시대 활 중에서 실전용 활이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입을 모았다. 2010.12.3 <<국제뉴스부 기사 참조>> chungwon@yna.co.kr

   일본에 건너간 경로는 여러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전쟁기념관의 박 팀장은 "구한말∼일제강점기에 걸쳐서 여러 경로를 통해서 반출됐기 때문에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며 "당시 경복궁을 비롯한 여러 무기고에 군에서 사용하던 전통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반출되기 쉬운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1875년 운요(雲揚)호 사건 당시 조선의 영종진에서 약탈해간 군사 유물이 유슈칸 창고에 소장돼 있는 것 아니냐고 추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 연구원은 "일제강점기에 유슈칸에 전시된 유물을 촬영한 사진을 보면 조선시대 활과 화살, 방패를 찍은 것과 창 종류 무기를 모아서 찍은 것이 있는데 이중 창 종류의 무기에만 '운요호 전리품'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그리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선궁술연구회가 1929년에 펴낸 책 '조선의 궁술'에서 절멸됐다고 적은 조선시대 실전용 활이 최소한 81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박 팀장과 김 연구원은 "사진만으로도 조선의 무기 발달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스로 활 복원 작업을 해온 유세현씨는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조선 활이 최고이긴 한데, 남아있는 건 연습용 활뿐이었거든요. 반면에 외국 활은 다양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이제 조선시대에 연습용 활 말고 실전용 활이 따로 존재했다고 확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부여하는 의미는 각각 달랐지만 '조선의 활', 아니 '조선의 얼'이 일본 어딘가에 남아있다는 데 대해 안도하는 심정은 마찬가지인 듯했다.

   chungwon@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0/12/03 16:14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