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뉴스 홈

다국어 사이트 바로가기
영어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패밀리 사이트 바로가기
뉴스Y
한민족센터
축제장터
이매진
콘텐츠판매

로그인



광고배너

기본 서비스

검색

  • 트위터
  • 페이스북
  • 구글
  • 미투데이
  • RSS


속보

핫이슈
  1. 1
  2. 1
  3. 1
  4. 1
  5. 1

광고배너


<조국이 버린 천재화가 변월룡의 재발견>기사 공유하기
트위터와페이스북
종합5개SNS
기사보기옵션

<조국이 버린 천재화가 변월룡의 재발견>

신간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샤갈조차 들어가지 못했던 러시아 최고의 명문 미술대학의 교수까지 오른 한국인이 있다. 한국인 최초로 미술학 박사 학위를 따내고 국립러시아미술관에 당당히 작품을 걸어놓은 주인공은 바로 변월룡(1916-1990)이다.

미술평론가 문영대 씨의 신간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은 변월룡의 삶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본 책이다.

변월룡은 1916년 러시아 연해주의 어느 한인 유랑민 마을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이미 출중한 그림 실력을 인정받아 교과서의 삽화를 부탁받기에 이르렀다.

그는 스베르들롭스크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러시아 최고의 미술 교육기관으로 손꼽히는 레핀미술대학에 진학한다.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학교가 있던 레닌그라드는 끔찍한 포위전을 견뎌내야 했지만, 다행히 변월룡은 어머니 병구완차 타슈켄트로 떠난 뒤였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47년, 졸업작품 '조선의 어부들'이 A학점을 받는 것으로 그는 학부 생활을 마무리한다.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해 '1946년 청진항에서 소련 해군 마중', '모택동의 초상' 등 많은 그림과 석판화를 남겼다.

1953년 변월룡은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들어간다. 당시 소련·북한 간 문화교류의 하나로 평양으로 떠나게 된 것.

변월룡은 이 시기 '개성 선죽교', '박연폭포', '금강산 풍경', '판문점 근교 연병장' 등 많은 작품을 남긴다. 또 평양미술대학 학장을 맡아 학교의 기초를 세웠다.

그는 평양에 머물며 정관철, 문학수 등 북한미술계의 거장들과 막역한 사이로 지낸다. 동양화를 접한 후 연구에 몰두한 것도 이 즈음이다.

1954년 아내의 간청으로 잠시 소련으로 돌아간 그는 복잡하게 돌아가는 정세에 휘말려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대신 소련에서 열리는 전시회마다 줄기차게 고국 관련 작품을 출품하며 향수를 달랬다.

레핀미술대학 교수로 35년간 재직하면서 변월룡은 데생, 인물화, 판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저자는 그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뒤틀린 소나무에 주목한다.

"변월룡의 작품에 유독 많이 등장하는 뒤틀린 소나무는 한국 자체를 상징한다. 심지어 그는 무덤 비석에도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게 했다."(376쪽)

변월룡은 고국을 사랑했던 만큼이나 한국 미술사에도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한국 서양미술은 일본을 통해 급히 수입하다 보니 그 뿌리가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변월룡은 최승희, 홍명희 등 당대 유명인들을 그린 생생한 초상화로 빈약한 한국 서양미술을 더욱 풍성하게 가꿨다는 것이 저자의 평이다.

"그는 반드시 미래 한민족의 귀감으로 삼아야 할 위대한 예술가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398쪽)

컬처그라퍼. 404쪽. 1만8천원.

tsl@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2/04/30 06:00 송고


그 외 기사 모음


광고


많이 본 사진

14


도서 홍보

희망멘토 11인의 백수 탈출기 도시탈출 귀농으로 억대 연봉벌기 아주 특별한 베트남 이야기 건강 100세 따라하기 수험생의 머리를 좋게하는 음식 61가지 암을 이기는 한국인의 음식 54가지 2012 한국인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