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뉴스 홈

다국어 사이트 바로가기
영어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패밀리 사이트 바로가기
뉴스Y
한민족센터
축제장터
이매진
콘텐츠판매

로그인



광고배너

기본 서비스

검색

  • 트위터
  • 페이스북
  • 구글
  • 미투데이
  • RSS


속보

핫이슈
  1. 1
  2. 1
  3. 1
  4. 1
  5. 1

광고배너


<격동의 공간 명동..주인공은 '명동 아가씨'>기사 공유하기
트위터와페이스북
종합5개SNS
기사보기옵션

<격동의 공간 명동..주인공은 '명동 아가씨'>

신간 '명동 아가씨'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스왕 미용실의 간판은 굉장히 컸어요. 그래서 지나가는 손님이 보고 찾아오기에 좋았죠. 손님은 주로 정치인 부인, 장관 부인, 잘사는 사업가의 부인, 직업여성… 신세계 동화 나이트클럽의 댄서, '하이클래스' 등 상당히 멋쟁이이고 명동에서 의상실을 다니는 사람이었어요." (93쪽)

미용사 김영남 씨는 1960년대 명동 거리에 거세게 불던 '여풍(女風)'을 회상한다.

파마나 커트가 흔하지 않던 시절 이틀에 한 번꼴로 미용실에 들러 고데로 스타일을 손질하던 당대의 멋쟁이 여성을 소개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 한복판 명동이 여성의 소비·문화·생존의 공간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담은 책 '명동 아가씨'(마음산책 펴냄)가 나왔다.

여성학자 김미선 씨는 논문을 다듬어 펴낸 이 책에서 전후 근대화 시기 여성이 지금의 명동을 일군 주인공이었음을 보여준다.

당시의 대표 여성지 '여원'에 실린 사진·기사 등을 그대로 인용하고 명동을 삶의 터전 삼아 일했던 이들의 증언을 옮겨 당시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총성이 그친 후 도시 재건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명동은 국가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사회복지부, 상공부, 증권거래소 등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고 전쟁 중 폐업했던 백화점이 다시 문을 열었으며 양장점과 미용실이 빠르게 거리를 점령했다.

"명동의 하루는 낮이면 낮대로, 밤이면 밤대로 온갖 사치와 유행과 오락과 술과 여자로 그칠 사이 없는 소란 속에 그래도 한국 최고의 호사로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는 다소 '호들갑스러운' 신문기사도 에너지 충만했던 당시 시대상의 반영이다.

저자는 격동하는 공간 명동에서 여성은 소비와 노동의 주체였다고 설명한다.

일부 여성이 백화점에서 자신을 치장하고 가꾸며 전쟁으로 눌려 있던 소비 욕망을 분출하는 한편 또 다른 여성은 전쟁으로 가장을 잃고 생계를 위해 미용실과 양장점의 노동자로 흘러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명동의 디자이너는 "시일을 맞추어 (옷을) 완성시키기까지 밤이 이슥하도록 일을 해야 하고 정열을 소모시켜야 한다"고 했고, 한 미용사는 "손님들이 바쁘다고 성화를 부릴 때는 손끝이 말을 듣지 않아서 울고싶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따라서 명동은 여성에게 유행의 새로운 희열을 선사하는 공간이자 녹록지만은 않은 생존의 터전이었다.

저자는 "다양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조건에 처한 여성들이 공존하면서 새로운 도시 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명동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측면"이라며 "전쟁으로 인한 '폐허'와 '허무'가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여성들은 부딪쳐 싸웠고 도전했다"고 전했다.

224쪽. 1만3천원.

hrseo@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2/08/07 09:09 송고


그 외 기사 모음


광고


많이 본 사진

14


도서 홍보

희망멘토 11인의 백수 탈출기 도시탈출 귀농으로 억대 연봉벌기 아주 특별한 베트남 이야기 건강 100세 따라하기 수험생의 머리를 좋게하는 음식 61가지 암을 이기는 한국인의 음식 54가지 2012 한국인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