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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백수린 "진부한 얘기 새롭게 들려주고 싶어요"기사 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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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백수린 "진부한 얘기 새롭게 들려주고 싶어요"

첫 소설집 '폴링 인 폴' 낸 백수린 씨 << 강재훈 씨 제공 >>

"'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바로 재능'이란 말 붙잡고 썼어요"

첫 소설집 '폴링 인 폴' 펴내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한국 문학평론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2012년 인터뷰에서 한 신예작가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것도 등단한 지 겨우 일 년밖에 되지 않은 초보 소설가였지만 김 교수는 "물건 되겠다 싶데"라며 자질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 현대문학사와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비평가로부터 예외적인 찬사를 받은 그는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으로 등단한 소설가 백수린(32) 씨. 그가 표제작을 비롯해 지난 3년여 사이에 발표한 9편의 단편을 담아 첫 소설집 '폴링 인 폴'(문학동네 펴냄)을 내놨다.

최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만난 그는 당시를 돌아보며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분인 김윤식 선생님이 제 작품을 읽어준 것만 해도 영광인데, 거기에다 좋게 평까지 해주셔서 무척 감사했다"며 웃으며 말했다.

전도유망한 신인 작가로 분류되는 그지만 정작 그는 소설가로서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믿는 편이었다. 그가 작가들의 정규 코스로 통하는 문예창작학과가 아닌 불문학과(연세대)를 지망한 것도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소설가의 꿈은 접고 문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미련은 남았다. 서강대 대학원 진학 후 해야 할 일이 쌓여갈수록 글을 쓰고 싶은 욕구는 더 커졌다. 욕망이 불신을 꺾었다. 그는 석사를 마친 2009년 습작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그를 지도하던 서강대 불문학과 교수이자 소설가인 최윤 씨에게 보였다.

"저는 계속 재능 타령을 했죠. '소설은 재능 있는 사람이 써야 하는데, 저는 재능이 없는 데 써도 되나요'라고…. 그러니까 선생님이 '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바로 재능'이라고 말해줬어요. 그 말을 붙잡고 계속 썼던 것 같아요."

그의 이러한 열등감 때문인지 그의 작품에는 많은 신예작가에게서 보이는 치기나 허영 대신 겸손함과 성실성이 엿보인다. 신인답지 않게 시종 일관된 호흡을 유지하며 안정감 있게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저력을 보여준다는 평가 역시 그가 자신의 재능에 도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표제작에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서른 중반의 싱글 여성인 '나'가 등장한다. 그런 내게 재미교포 폴이 서툰 한국어로 고민을 상담해온다. 어떤 여자애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 그런데 그녀가 일본인이라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한다는 것. 그 순간 나는 폴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작품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엮여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하나는 재미교포 부자의 갈등이 극복되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연하남을 짝사랑하는 연상녀의 이야기다. 둘 다 뻔하디뻔한 이야기지만, 이 둘이 겹쳐지면서 우리가 타인의 절실한 이야기를 얼마나 뻔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오래전 폴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도 왜 영화감독의 꿈을 접었느냐 했던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을 것이다. 교포들의 역사는 narrative 적으로 진부하죠. 모든 집의 역사가 다 다르지만 이야기로 만들고 나면 결국 모두 cliche예요. 처음에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건 내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는데, 너무 뻔해. 그래서 관뒀어요. (…)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영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교포의 삶은 더더욱 알지 못하던 내게 왠지 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사실뿐이다. 누군가에게 가장 절실한 사연이 왜 타인 앞에서는 진부해지고 마는 걸까. (…) 주점 밖에서도 사람들은 토해내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품고 비틀거리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내가 폴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81쪽)

그는 "독자들이 이 작품을 통해 내가 남의 얘기를 뻔하게 듣고 있었구나라고 한번쯤 느끼길 바랐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는 새로운 얘기라는 것이 없잖아요. 결국은 같은 얘기를 변주하는 것인데, 다소 진부해 보이지만 우리가 흘려들었던 이야기들을 새롭게 전해주고 싶었어요."

특이한 점은 소설 속 폴의 부모가 그에게 준 한국 이름이 '준찬'(Junchan)이라는 것이다.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음운인 'ㅈ'과 'ㅊ'이 함께 들어 있다.

"외국인은 'ㅈ', 'ㅊ'을 발음하기 어려워하잖아요. 한국 사람만이 발음할 수 있는 건데, 그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그런 이름을 준 거죠. '준찬'이라는 한국 사람만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는 이름을 폴은 갖고 있지만, 그는 한국어가 서툴기에 그 이름을 평생 발음할 수 없죠. 아버지가 부르는 식대로 부를 수 없고 자기 이름이지만 자기가 올바르게 부를 수도 없고 자기가 부르는 방식으로는 자기 아버지도 부르지 않는 그런 이름을 갖고 태어난 거죠. 심지어는 자기를 짝사랑하는 여자도 자기가 부르는 방식으로 부를 수 없고 자기 아내가 될 사람도 마찬가지죠. 누구나 그런 이름을 가진 것 같아요. 아무에게도 불리지 않고 나만 부르지만 내가 부르는 방식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들리지 않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표제작 외 서사적으로 다채로운 다른 작품 역시 낯설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시대상과 호흡을 같이하며 삶의 순수한 핵심에 다가가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으로 읽힌다.

'유령이 출몰할 때'와 '감자의 실종' 등에서는 알레고리적 구성, '밤의 수족관'에서는 망상에 빠진 화자를 통한 반전 플롯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이끌어나가지만 '부드럽고 그윽하게 그이가 웃음짓네', '까마귀들이 있는 나무' 등 대부분의 작품은 정통적이라고 할 만큼 기교를 배제하고 우직하게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제 소설을 두고 사람들이 전통적인 문법의 작품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도 그런 것 같아요. 그게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의 기질인 것 같아요. 전통적인 작법이 더 단단해지면 더 큰 실험을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다음부터는 덜 빽빽하게 쓸 수 있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지금은 너무 많은 말을 하는 느낌이에요."

그는 마지막으로 "제 첫 번째 소설집을 마음껏 오독하셨으면 좋겠고 다양하게 읽어주셨음 좋겠다"면서 "한 작품 한 작품 쓰고 싶은 대로 쓴 소설이라 정제되지는 않았지만 그게 첫 번째 소설집이 가지는 특권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누군가에게, 가상의 독자 한 명에게는 제가 쓴 마음과 의도가 제대로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chang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2/13 13: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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