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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즘과 권위주의가 판치는 시대…원인은

신간 '분노의 시대'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냉전의 장막이 걷히면서 인류는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맞은 듯했다.

경제는 성장하고 무역은 확대됐으며 정보기술(IT) 혁명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전 세계는 하나로 연결됐다. 인류애와 공공선이 확대되고 진보가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세계 곳곳에서 끔찍한 폭력사태가 계속 터져 나오고 인종주의와 민족적 차별, 종교적 증오, 여성 혐오 같은 구시대 유물로 여긴 편견과 분열이 다시 고개를 든다.

전근대적 향수를 자극하는 권위주의 정치가들이 세계적으로 득세하면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도 커진다.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계몽됐으면서도 무정부적 폭력과 지향점 없는 증오가 폭발하는 이율배반의 이 시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평단의 주목을 받는 칼럼니스트이자 역사가인 판카지 미슈라는 신간 '분노의 시대'(열린책들 펴냄)에서 지금을 '분노의 시대'로 명명한다.

세상은 거대하고 동질적인 세계 시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화적 배경이나 개인적 특질과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똑같은 것을 열망하라고 부추긴다. 이런 세상에서 밀려나고 뒤처지고 버림받은 인간들이 느끼는 분노가 바로 우리 시대 위기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분노의 시대
분노의 시대

인도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히말라야 산골 마을에서 수년간 독학으로 독창적 세계관을 구축했다는 저자는 현재 영국 런던을 무대로 저술 활동을 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서구의 근대화가 아시아와 전 세계에 미친 영향에 천착한 자신의 연구를 한층 더 심화한다.

극심해진 테러리즘 원인을 이슬람국가(IS)와 같은 뒤틀린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의 발호와 이들을 저지하지 못한 군사적 대응의 실패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좀 더 심오하게, 서구 문명과 서구가 구축한 지배적인 세계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주변 문명이 빚는 갈등을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제기한 문명충돌론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 같은 서구 중심의 현실 인식에 단호하게 반기를 든다. 그는 오히려 위기의 뿌리가 산업자본주의를 통해 추진한 서구의 근대화에 있다고 지적한다.

19세기 산업자본주의가 태동할 당시 개인의 자율성과 평등 의식은 계몽사상에 의해 한껏 고양됐으나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해지면서 사회적 불만과 갈등이 고조됐다.

이를 틈타 온갖 기회주의적 협잡꾼이 정치적으로 득세하고 인종·민족 간 증오가 판을 쳤다. 파시즘, 나치즘, 스탈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 체제가 탄생했으며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

책은 서구의 근대화에 내재한 모순이 냉전 이후 세계화를 통해 중국, 인도, 중동, 아프리카 등 나머지 지역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빚어진 갈등과 혼란이, 지금은 전 세계를 무대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과 같은 분노의 시대를 이해하려면 그 격변의 시대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자율성과 평등에 대한 기대심리와 개개인의 인정 욕구는 어느 시대보다 높아져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경험하는 부와 기회의 불평등은 그 기대와 욕구를 가차 없이 배반한다.

1998년부터 2011년 사이 늘어난 전 세계 소득 중 거의 절반이 상위 10% 부자에게 집중됐으며, 부유한 나라들조차 경제적 불평등과 계층 간 기대수명 격차가 커졌다.

형식적 평등이 쉽게 배반당할 때 사람들은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상대를 시샘하고 적의를 갖게 된다. 사상가들은 이를 '원한'이라 부른다.

이러한 원한에서 분노와 증오, 좌절감이 배태된다.

발전을 거듭하는 디지털 매체들이 가상의 평등을 연출함으로써 개인과 경제 질서 간의 충돌을 중재하는 완충 역할을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고 잘 사는 모습을 끊임없이 지켜보게 만듦으로써 원한을 키울 뿐이다.

세계 도시 인구 4분의 1에 해당하는 18억 명이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직장과 희망을 갖지 못한 채 박탈감 속에 방치돼 있다.

저자는 이를 극단주의 테러단체가 신입 회원을 손쉽게 모집할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득세한 권위주의자들이 조장하는 부족주의적 증오와 분열, 도덕적 혼돈에 대중이 투항하는 이유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한나) 아렌트가 두려워했듯이 '상호간의 증오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분노가 상당히 보편화되었다'. 한마디로 서로에 대한 원한이 깊어졌다. 시샘과 굴욕감과 무력감이 복합적으로 뒤섞이며 야기되는 다른 사람을 향한 실존적인 원망이 계속되며 깊어지면, 시민 사회에 악영향을 주고 정치적 자유를 약화시키기 마련이며, 지금은 전 세계가 권위주의와 백해무익한 국수주의로 회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강주헌 옮김. 464쪽. 2만2천원.

abullapi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6/14 05:5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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