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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백제 각축지 옥천서 7세기 산상 군사도로(종합2보)

길이 322m, 폭 5.5m, 깊이 90㎝…수레바퀴 흔적 뚜렷

충북 옥천에서 나온 7세기 무렵 산상 군사도로 유적.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각축을 벌인 지역인 충북 옥천에서 신라가 능선을 따라 조성한 산상 군사도로 유적이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원장 장준식)은 의료기기 산업단지 예정지인 옥천군 옥천읍 서대리 431번지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7세기 무렵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도로 유구(遺構·건물의 자취)를 찾아냈다고 16일 밝혔다.

조사단은 "문헌과 출토 유물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늦어도 7세기 이후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조성한 군사도로, 즉 관도(官道)로 추정된다"며 "국가가 직접 관리한 도로인 관도가 신라 수도 경주가 아닌 지방에서 확인된 첫 사례"라고 강조했다.

도로 유구가 나온 지역은 경주, 대구, 김천, 대전, 공주를 잇는 선상에 있고, 지금도 경부고속도로에서 2㎞ 정도 떨어져 있다.

옥천에서 나온 신라시대 산상 군사도로.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제공]

신라 도로 유구는 해발 150∼160m 정도인 능선 정상부에서 남동-북서 방향으로 직선에 가깝게 약간 곡선을 그리는 형태다. 규모는 현재까지 확인된 길이가 322m이며, 폭은 5.2∼5.6m, 최대 깊이는 90㎝다.

도로는 U자형으로 땅을 파내 만드는 굴토(掘土) 기법과 흙을 켜켜이 다지면서 쌓은 성토(盛土) 기법을 고루 사용해 조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굴토 기법을 쓴 구간에서는 바닥에 흑갈색 점토를 다진 흔적이 나타났고, 배수를 위해 도로 끝에 설치하는 도랑인 측구(側溝)는 대부분 유실된 상태였다.

조사단은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옥천은 신라가 554년 백제 군사 3만 명을 궤멸했다는 관산성이 있던 곳"이라며 "이후에도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싸웠고,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660년에도 신라 진군로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삼국사기에 언급된 보은·옥천 방면에서 공주에 이르는 군량 운송로인 웅진도(熊津道) 일부일 수도 있다"며 "정상 부근에 직선에 가깝게 도로를 낸 것을 보면 군수물자를 쉽고 빠르게 운송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옥천에서 나온 신라시대 산상 군사도로. 수레바퀴와 동물 발자국 흔적이 표시됐다.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제공]

노면에서는 바퀴 사이 너비가 110∼170㎝, 바퀴 폭 10∼20㎝, 깊이 5∼20㎝인 수레바퀴 흔적을 비롯해 사람과 동물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확인됐다.

정춘택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팀장은 "동물이 수레를 끌었다는 사실이 명확하다"며 "당시 수레 바퀴 사이 너비가 140㎝ 안팎이었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는데, 이번 발굴 성과가 신라 수레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물은 7세기 신라 토기 조각과 고려청자, 조선백자 조각이 다양하게 출토돼 이 길이 신라부터 조선 전기까지 군사상 도로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다만 1896~98년 무렵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작성한 지형도에는 해당 도로가 '소로'(小路)로 표시됐다.

주변 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구덩이 유구,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광묘, 조선시대 청동 숟가락도 출토됐다.

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8/16 16:4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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