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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수박 때문에 100대 맞은 사연

송고시간2017/04/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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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사랑한 과일,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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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조금 빠른 감이 있지만, 벌써 수박의 계절이 왔다.

그러나 이 수박은 예전에는 서민들이 구경도 할 수 없을 만큼 귀한 과일이었다.

세조 3년, 세조는 종 두 명에게 곤장 백 대를 때리라 명했다.

이들의 죄목은, '노산군(단종)에게 수박을 가져가려 했다'는 것!

기껏 수박 좀 바친다고 장 백 대라니? 하지만 당시 수박은 '왕'의 진상품이었다.

특히, 세조의 수박 사랑은 유별났다.

세조 6년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음식을 나눠 먹던 잔치 음복연에서,

친히 먹던 수박[西瓜]을 나누어 좌우의 별운검 한명회·구치관 등에게 내려 줬다는 기록도 있다.

세조 외에도 여러 임금이 수박을 사랑했다. 중종은 한 노파가 수박을 바치자 감동하며 그 마음을 '성심'이라 표현하였다. 중종실록 57권, 중종 21년 9월 11일.

"강가에 오래도록 서 있기에 물어보았더니 남새밭에 심은 수박과 가지를 바치려고 한다 했다. 나는 처음에는 받지 않으려 했었으나 백성이 성심으로 가져와 바치는 것이므로 받게 하였다"

그렇다고 수박이 그렇게 생소한 과일은 아니었다.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이 1611년 전라도 함열로 귀양 가 있던 그는 귀양지의 거친 음식에 질려 과거 맛봤던 음식들을 기록했으니 바로 도문대작(屠門大嚼).

여기 따르면 수박이 고려 시대부터 재배됐다고 한다. 연산군일기를 보면 조선 시대 들여왔다는 기록도 있으니, 여하튼 우리 땅에 뿌리내린 지 오래된 과일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경작 기술로 수박은 재배하기 어려운 과일이었다. 세종 때 기록을 보면 수박 한 통 가격은 쌀 다섯 말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일반 백성까지 수박을 먹게 된 건 일제강점기 후 여러 과학자와 농민들의 노고 덕분이었다.

특히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재연하며 농업이 발전해야 백성이 배부르다고 역설했다. 그 뜻을 이어 우리 농업은 계속 발전해 출하 시기도 빨라졌다.

수박 산업특구 함안은 지금이 오히려 수박 제철! 함안 수박 축제도 이번 주말 열린다.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조은솔 인턴기자.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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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4/21 12:0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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