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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안중근 의거 후원한 항일 기업인 최재형

송고시간2018/03/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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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 탕'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 일곱발의 총성이 울리자 조선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집니다. 조선 침략의 원흉을 처단한 안중근 의사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길이길이 기억되고 있죠.

그런데 이 일화에는 또 다른 주인공이 숨어있습니다. 책 '페치카 최재형'에 따르면 바로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헌신적으로 도운 항일 기업가 최재형 선생입니다.

최재형 선생은 1860년 8월 15일,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2세 때부터 배를 탔고, 이후 상업에 종사하며 거액을 모아 러시아의 조선인 최고 부자가 됐죠.

그는 일제의 한반도 침략 야욕이 노골화한 1905년부터 항일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안중근 의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두 사람은 단지동맹 동지들과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며 각별한 사이가 됐죠.

*단지동맹: 1909년 안중근을 중심으로 12명의 동지가 결성한 소규모 독립운동 결사대. 동지들이 왼손의 약지를 끊어 피로서 태극기 앞면에 ‘대한독립(大韓獨立)’이란 글자를 쓰며 맹세함. 자료/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재정난으로 망해가던 한인 민족지 대동공보는 최 선생의 지원으로 1909년 3월 재간됐습니다. 대동공보는 의병 등의 항일투쟁 활약상을 보도하는 등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는데요.

*대동공보<大東共報>: 1908년에 창간되었던 러시아 주재 교민단체신문으로 자주독립정신과 국권회복을 고취하는 논설과 기사를 실음. 재정난에 시달리자 최재형이 매월 거금을 희사, 사장에 취임했음 자료/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 의사는 대동공보를 통해 고급 정보를 입수했는데요. 이토 히로부미가 북만주를 시찰하러 러시아에 온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대동공보 사무실에 머무르며 거사를 준비했죠.

최재형 선생은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과 물품을 물심양면 지원했는데요. 안중근이 거사 당일 쏜 일곱 발의 총탄도 그가 준 8연발 브라우닝식 권총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안 의사가 이토를 사살하고 수감됐을 때는 변호사를 선임해줬고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주며 끝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습니다.

"최재형은 수많은 애국자의 경비를 모두 지불했다. 조선인 최고 부자였으나 1917년에는 온전한 집 한 채도 없었다. 혁명사업으로 빈민이 됐다” - 박은식 민족주의 사학자

하지만 최재형 선생은 수많은 애국자를 도우며 1917년도에는 집 한 채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 처했죠. 러시아어로 난로라는 뜻의 ‘페치카’ 애칭을 얻을 정도로 그는 동포들에게는 늘 따뜻한 사람이었죠.

최재형 선생은 1920년 ‘4월 참변' 당시에 붙잡혀 순국했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고려인이 거주하는 연해주 신한촌을 습격해 독립운동가 등 한인 300여 명을 학살했는데요.

일제는 유해를 가족에게 넘겨주지 않고 매장 장소조차 숨겼습니다. 만주와 함께 국외 독립운동의 양대 근거지가 된 연해주의 항일투쟁 대부는 이렇게 사라졌습니다.

"독립운동사에서 최재형은 중심 인물인데도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 유족 등의 기록과 자료를 모아 선생을 재조명했다” -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

오늘날 러시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유일한 항일 투쟁 영웅인 최재형. 독립운동의 핵심 역할을 한 최재형 선생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이 카드뉴스는 책 ‘페치카 최재형’(박환)를 바탕으로 재구성됐습니다.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강혜영 장미화 인턴기자

junepe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3/09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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