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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스토리] 어둑한 밤길…누군가 나를 따라온다

송고시간2018/09/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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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 범죄 경험률 낮아도 불안감은 유럽보다 높아
성폭행 강력범죄 10년 전보다 2배 증가…강력범죄 대상 87%가 여성
주거지서 성폭행 주로 발생…재산·소득 적으면 범죄에 더 노출
CCTV·방범창·공공임대주택 확대 등 안전한 환경 조성 필요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직장인 김 모(33·여) 씨는 최근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회식했다. 서울 마포 일대에서 어렵사리 택시를 잡아 영등포에서 내렸다. 혼자 사는 집은 후미진 골목길 끝에 있는 4층짜리 빌라. 취객들은 이미 거리에서 비틀대고 있었다. 김 씨는 집으로 향했고, 취객 중 한 명이 그와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조금씩 발걸음 속도를 높였다. 간신히 집 앞에 도착해 뒤돌아보니 그 취객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늦게 나오면 늘 경험하는 불안이다. 김 씨는 "동네가 어수선해서 그런지 밤길 걷기가 두렵다"며 "치안이 안전한 동네로 빨리 이사하고 싶다"고 했다.

◇ 밤길 걷기에 불안한 여성들

술자리라도 길어지면 여성들은 불안감에 휩싸이기에 십상이다. 서울 강남 모처에 사는 직장인 이 모(31) 씨는 "밤늦게 택시를 타면 늘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들어갈 때까지 통화한다"며 "택시 타는 건 물론 밤길 걷는 게 불안하다"고 말했다.

실제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우선희 전문연구원이 분석한 '범죄피해 불안과 인구 사회학적 요인:유럽국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보고서를 보면, 한국 여성(만19∼75세)들은 유럽 여성들보다 혼자 밤길 걷는 데 불안함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았다.

2016년 조사대상 16개 국가 가운데 한국은 독일(35.2%), 체코(35.2%), 프랑스(33.9%)에 이어 4위(30.8%)에 올랐다. 특히 한국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의 정도는 아이슬란드(10.9%)나 핀란드(11.6%)에 견줘 3배 가까이 높았다.

하지만 실제 범죄 경험률은 조사대상국(남·여 포함) 중 한국이 최하위다. 그만큼 치안이 안전하다는 의미다.

2011년부터 5년간 강도나 신체적 위해를 당한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1.49%로, 16개 조사대상국 중 가장 낮았다. 핀란드가 26.72%로 여성들이 겪는 범죄 경험률이 가장 높았고, 스웨덴(24.83%), 프랑스(23.40%), 벨기에(20.41%)가 그 뒤를 이었다.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이 가장 낮았던 아이슬란드는 15.59%로 한국보다 14.1%포인트나 범죄 경험률이 높았다. 핀란드와의 격차는 무려 25.23%포인트나 됐다. 이처럼 치안이 상대적으로 안전함에도 한국 여성들이 느끼는 '밤길 불안'이 유럽인들보다 전반적으로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 유럽보단 안전하지만…급상승하는 강력범죄

최근 강력범죄율이 상승하고 있는 데다가 여성들을 타깃으로 삼은 범죄가 늘고 있는 게 주요한 원인이다.

2016년 경찰통계연보를 보면 성폭력과 관계된 범죄 발생 건수는 2006년 1만4천369건에서 2016년 2만8천993건으로 10년 만에 두 배 증가했다. 성폭행을 포함한 각종 범죄도 늦은 밤에 주로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29만7천734건(16.1%)의 범죄가 오후 9시부터 자정 이전에 발생했다. 범죄 시간을 특정할 수 없는 미상 시간대(21.3%)에 이어 범죄가 이 시간대에 빈번히 발생한 것이다.

강력범죄 피해자 대다수도 여성이다. '서울1인가구 여성의 삶 연구: 2030 생활실태 및 정책지원방안'보고서에 따르면 강력범죄피해자 중 87.0%는 여성이며 이 중 91.7%는 강간·강제추행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간·강제추행 피해여성 중 55.6%는 40세 미만 여성으로 집계됐다.

대학생 김 모(22) 씨는 "작년 이맘때 남자 한 명이 계속 따라오길래 동네 주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재빨리 집으로 들어갔다"며 "그 남자는 내 집 현관 앞에 멈추더니, 다시 뒤돌아서 갔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 사건 이후 자정 이전에 귀가한다고 했다.

설문조사에도 여성들의 불안은 고스란히 묻어난다.

서울여성가족재단이 2016년 서울의 20∼30대 1인 거주 여성 7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결과, 44.6%가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별로 안전하지 않다는 여성이 41.2%였고, 전혀 안전하지 않다고 답한 여성도 3.4%였다. 현재 주거지가 불안하다는 응답도 36.3%나 됐다.

◇ 저소득도 불안의 요인…"연립, 저층일수록 위험"

주거지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은 타당한 이유가 있다. 실제 강간·강제추행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 주거지(19.8%)이기 때문이다. 주거지에서의 성폭력 사건은 길거리(17.3%), 숙박업소·목욕탕(10.9%), 유흥접객업소(9.4%), 기타교통수단(4.8%)을 웃돌았다.

거주 형태별로 불안의 정도는 달랐다. 주거지 불안에 대한 비중은 연립·다세대, 고시룸·원룸, 단독주택, 아파트 순으로 높았다. 여성들은 아파트를 가장 안전하다고 인식했고, 연립·다세대 주택을 가장 불안한 거주지로 꼽은 것이다. 층별로는 낮은 층보다는 높은 층을 안전하다고 여겼다.

문제는 주거형태나 층수 모두 자산과 소득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의 7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7억3천821만원으로, 연립주택 매매가(2억7천803억원)의 세배에 육박했다. 연립의 평균전세 가격도 1억8천779만원으로,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4억5천46만원)의 41.6%에 불과하다.

또, 소득이 낮을수록 안전하지 않은 지하나 1층에 거주하는 비중도 높았다. 월평균 소득 300만원 이상 청년 여성 1인 가구 중 지하·반지하에 거주하는 비중은 2.2%에 불과했다. 반면 월평균 소득 150만원 미만의 청년여성 1인가구의 경우 지하·반지하 7.8%, 1층은 20.6%로 나타나 상대적으로 안전에 취약한 주거환경에 놓여 있었다.

장진희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연립·다세대에 거주하는 서울시 청년여성 1인가구는 오피스텔 거주자와 달리 주로 창문, 베란다 등을 통한 외부 침입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음에도 설치비용의 부담, 집주인과의 문제 등으로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며 "경제적 여건은 주거환경뿐 아니라 안전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혼자 살면 배달음식 시켜먹기도 어려워요"

"배달음식 안 시켜먹거든요 무서워서…그리고 애프터서비스(A/S) 받을 때도 기사님들이 거의 남자잖아요. 솔직히 무서워요. 혼자 오는데 집에 들여야 하니까 뭔가 무섭고…A/S 오시는 분들 다 진짜 열이면 열 다 남자분들이 오시니까…그래서 문을 열어놔요. 언제든 달려나갈 수 있게"

연립 다주택에 사는 30세 여성 A씨의 말이다. 홀로 사는 경우, 여성들은 쉽게 불안에 노출된다. 서울시 25∼49세 여성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황성은의 연구(2013)에 따르면 응답자 77%의 여성이 혼자 생활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성폭력 등 범죄에 대한 불안을 꼽았다.

홀로 사는 1인 여성 가구는 증가추세다. '서울1인가구 여성의 삶' 보고서를 보면, 여성 1인 가구는 1990년 13만2천가구에서 2015년 57만구구로 4.3배 증가했다. 이 가운데 43.7%(24만8천가구)는 39세 이하의 청년여성 1인가구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다 보니 안심택배, 안심스카우트 등 '여성안심정책'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안심택배는 택시기사를 가장한 강도사건 등 여성을 타깃으로 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서울시가 2013년 도입한 정책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4년 12만8383건이던 이용자 수는 2015년 두 배가량인 25만8895건으로 늘었고 2016년에는 37만162건으로 증가했다. 지난 5년간 누적 이용자는 149만8천명이며 안심택배보관함도 210곳에 이른다. 여성의 안전한 귀가를 돕고 어두운 골목을 순찰하기 위해 2013년 6월 시작한 서울시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도 2014년 약 10만건에서 2016년 24만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여성안심택배함과(좌), 여성안심화장실(우)

전문가들은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CCTV 설치를 확대하는 등 여성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장미혜 선임연구위원은 '공공장소에서의 여성안전 강화를 위한 정책방안' 보고서에서 "여성의 안전을 고려해야 하는 장소에 여성 안전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고 환경도 개선해야 한다"며 "폭력과 범죄로부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공중화장실 근처에 CCTV를 설치하고 주차장의 조도를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밖에도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나 안심보안관 서비스 확대. CCTV·방범창 등 안전시설 설치 확대, 공공임대주택을 통한 안전한 환경 조성, 경찰 소방인력 강화 등의 대책을 주문했다.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

(인포그래픽=이한나 인턴기자)

buff27@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9/02 08: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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