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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스토리] 이별을 말한 순간, 애인의 폭력이 시작됐다

송고시간2018/09/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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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요구로 매년 여성 60명 이상 죽거나, 위협당해
관계 초기 작은 폭력도 분명히 '싫다'고 말해야
"피해자 보호할 수 있는 법망 마련 시급"

[https://youtu.be/ShlRuvQohDc]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지난달 3일 경남 김해의 한 모텔. A(30) 씨는 헤어진 여자친구 B씨를 감금하고 수차례 폭행했다. A 씨는 "일방적으로 헤어지자고 한 뒤 만나주지 않아 화가 나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같은 달 14일 인천의 한 20대 회사원은 전 여자친구에게 교제 당시 찍은 나체사진을 보내 협박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헤어지기 보름 전인 2016년 말 여자친구의 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등 폭행 혐의도 받았다.

지난 5일에는 결별을 요구한 여자친구의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경찰관 B(29) 씨가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8월 당시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자 신체 일부를 촬영한 사진을 다른 사람에게 유포하겠다고 겁을 준 혐의로 기소됐다.

시작은 아름다웠을지라도 끝은 그렇지 못했다.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물리적 폭행이나 협박, 사진·영상 유포 등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이들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안전이별'이라는 말이 화두로 떠오른 이유다. 그러나 폭력 이후에도 가해자와 인연을 완전히 끊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에 달했다. 비극의 반복이다. 안전하게 이별할 방법은 없는 걸까.

◇ "헤어져요" 말 한마디에 시작된 비극

박 모(31) 씨는 4년 전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남자친구의 차에서 "그만 만나자"고 말했던 그 날이다. 예전부터 남자친구는 구속이나 집착이 심한 편이었고, 그 강도는 조금씩 심해졌다. 폭언도 일삼기 시작했다. 박 씨는 "더이상 교제하다가는 위험하겠다 싶어서 이별을 요구했는데 돌변하기 시작했다"며 "한두 시간은 족히 난폭운전한 뒤에야 외딴 길에 내려주고 갔다"고 말했다. 이별 이후로도 집 앞에 찾아오거나 연락이 수차례 오는 등 한동안 시달려야 했다.

박 씨처럼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데이트 폭력을 당한 이들은 매년 수십 명에 달한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매년 발표하는 보고서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이혼 및 결별 요구로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지난해 17명이다. 살인 미수까지 더하면 66명이다. 최근 4년간 가장 많은 수치다.

이별 통보로 목숨을 잃거나 위협을 느낀 여성은 2014년 63명, 2015년 64명, 2016년 63명 등 매년 60명 이상 발생했다.

이별 요구는 데이트 폭력 가해자가 밝힌 범행 동기의 가장 큰 요인이다. 피해자 3명 중 1명 이상이 이별을 요구하다 배우자나 연인으로부터 살해 위협에 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홧김에 우발적으로'(23%), '자신을 무시해서'(13%) 등 다른 요인보다도 많다.

데이트 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꼽은 유발 요인으로도 '이별 통보'가 많았다. 한국데이트폭력상담연구소에 따르면 피해 여성 5명 중 1명 이상(20대 22.7%, 30대 21.9%)은 이별을 통보하자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고 밝혔다. '파트너 간 의견 차이', '특별한 이유 모름' 등에 이어 높은 비율이다.

◇ 이별을 얘기했지만…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이별을 얘기했지만 헤어진 것은 아니다. 피해자 중 상당수는 이별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 이후에도 가해자와 만남을 이어가거나,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데이트폭력상담연구소가 데이트 폭력을 외부에 알리거나 신고하는 등 조처를 한 피해자 중 관계를 유지했다고 답한 이는 34.7%에 달했다. 폭력을 당했음에도 조처를 하지 않고 관계를 유지한 경우도 절반에 육박한다.

이들 중 대다수는 "파트너를 여전히 사랑해서", "단호하게 (관계를) 끊지 못해서", "인내하면 파트너가 달라질 거로 생각해서" 등의 이유로 만남을 이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박민선 씨(가명)의 경우가 그랬다. 박 씨에게는 2년여간 만난 애인이 있었다. 행복했다.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이별을 입에 올리면서다. 남자친구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 연락했고, 집 앞에까지 불쑥 찾아왔다. 박 씨는 "헤어지고 싶었다. 그래도 헤어질 수가 없었다"며 "그동안 쌓아왔던 추억이 아까웠고, 동정심이 들었고, 다시 폭력을 쓰지는 않겠지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안전이별이 어려운 이유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힘들어서'라고 지적한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 교수는 "'진짜' 이별이 어려운 것은 데이트 폭력 이후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가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폭력→사과→용서→다시 폭력의 순으로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염 교수는 "데이트 폭력 재범률은 76%에 달한다. 이는 한 번의 실수로 그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며 "저 사람을 사랑하니까 용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폭력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별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작은 폭력도 분명히 '싫다'고 밝히고, 정확히 거부감을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안전이별 최선은 초기 징후 발견"

출처=데이트폭력 대응을 위한 안내서 캡처(서울시)

"사람은 역시 겉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인스타그램 구독자가 4만명을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웹툰 '다 이아리'에서 나온 대사다. 작가가 실제로 겪은 데이트폭력을 소재로 해 독자의 공감을 끌어낸 작품이다. 의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조차 폭력 성향을 발견하고서 두려워하던 장면이다.

최근 데이트폭력을 겪은 뒤 이별한 김 모 씨는 "처음에는 정말 몰랐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 씨는 "만남을 시작했을 때는 다정다감했고, 이렇게 잘 맞는 상대는 없을 거라 믿을 정도였다"며 "폭력 성향을 드러냈을 때도 한 번의 실수라고 여기고 싶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별 범죄를 막는 최선책은 교제 초반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안전이별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초기 징후 발견 시,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정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작은 폭력이나 사소한 구속이라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며 "폭력을 당했을 경우에는 지인이나 경찰 등 외부에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측도 "초기 관계 형성 시기에 데이트폭력이 시작됐으나, 이를 자신에 대한 사랑 혹은, 관심으로 해석하는 등 폭력을 '정당화'하는 모습이 보였다"고 분석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6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 중 59.9%가 교제 6개월 미만 내에 데이트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서울시는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상대방이 다음과 같은 행동이 보인다면 데이트 폭력의 의심 신호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 큰소리로 호통을 친다 ▲ 과거를 끈질기게 캐묻는다 ▲ 많은 양의 전화나 문자를 한다 ▲ 다른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등이다.

◇ 안전한 이별 위해 피해자 보호할 대책 시급

더 큰 문제는 데이트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이별을 할 수 있는 보호막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성용 계명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경찰이 판단하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며 "가령 집 앞에서 헤어진 애인이 종일 기다리고 있더라도 위험 방지 조치를 할 수 없다. 독일 같은 경우는 개입이 가능한데 우리는 힘들다"고 말했다. 데이트 폭력을 국가가 방조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별 이후 상대방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거부했음에도 꾸준히 연락이 왔다고 답한 이는 20대가 40.9%, 30대가 66.7%에 달했다. 4명 중 1명 이상은 상대방이 내 주변을 배회했거나 미행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자해할 것이라 협박했다(20대 22.7%, 30대 5.6%)고 답한 이도 있었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외부 활동을 기피(20대 36.4%, 30대 22.2%)하거나, 상황이 반복될까 봐 새로 교제를 시작 못했다(29.5%, 33.3%)는 경우도 상당수였다. 학교 또는 직장생활 등의 유지가 어려웠다고 밝힌 경우도 20대 22.7%, 30대 16.7%에 달했다.

이수정 교수 역시 "스토킹 방지법이나 여성 폭력 방지법 등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망이 필요하다"며 "사랑했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감형이 아니라 더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는 2014년부터 매년 늘어 2016년에는 555명을 기록했다.

검찰은 지난 7월 데이트 폭력 범죄를 3회 이상 저지른 경우, 적극적으로 구속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보복범죄 방지를 위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피해자에게 비상호출기나 보호시설, 주거 이전비 지원, 법정동행 등 안전장치도 제공한다.

여전히 데이트 폭력을 호소하는 피해자는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 이후 데이트 폭력 검거 인원은 매년 늘고 있다. 지난해는 집계 후 처음으로 1만명을 넘겼다.

(인포그래픽=장미화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9/09 08: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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