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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인생플랜](17) '열정의 바리스타' 격조있는 인생2막

엄기용 전 구리시 국장…박완서 작가 만난 뒤 커피에 풍덩
체험 교육장 운영하며 커피나무 키우는 여유있는 전원생활

공직자에서 커피 농부로 인생 2막
공직자에서 커피 농부로 인생 2막 (가평=연합뉴스) 김도윤 기자 = 커피 농부 겸 바리스타로 인생 2막을 시작한 엄기용 씨가 자신의 가평 농장내 교육장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가평=연합뉴스) 김도윤 기자 = "인생 1막 때는 실패해도 곧 재기할 수 있지만 2막 때는 쉽지 않기 때문에 적성에 맞는지 충분히 고민한 뒤 준비해야 합니다."

엄기용(61)씨는 경기도 구리시에서 34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가평에서 커피 농부 겸 바리스타로 인생 2막을 열었다.

엄씨의 교육장은 갓 구워낸 커피 향이 가득하다.

이곳에서 엄씨는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방문객 모두에게 커피의 숨은 매력을 알려준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체험교육으로도 인기다.

바로 옆 비닐하우스에는 커피나무 5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대여섯 그루에는 수확 시기를 훨씬 넘긴 보랏빛 커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엄씨는 "커피 체험을 위해 일부러 남겨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체험 교육장을 중심으로 좌우에 있는 포도밭과 머루밭은 커피의 시큼한 맛과도 퍽 잘 어울린다.

그의 농장 한가운데 있는 예쁜 주택은 멋진 전원생활을 꿈꾸게 한다.

엄씨는 지난해 4월 가평군 조종면 상판리에 1천700평 규모의 '가평하늘커피농장'을 열었다.

씨앗 심기부터 잔에 커피를 내릴 때까지 전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형 농장이다.

1년간 2천700여 명이 다녀갔으나 벌써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소문이 나면서 지난 5∼6월에만 1천300여 명이 방문했다.

개장 초기 200만원 정도이던 월수입도 1년 만에 500만원 정도로 늘었다.

엄씨가 처음부터 커피를 좋아한 것은 아니다.

"공직에 있을 때 동료들이 커피 한잔 하자고 하면 '무슨 맛으로 마시나'라는 생각이 들어 동참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니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커피를 마셨지만 단지 어울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농장에서 커피를 수확하는 모습
농장에서 커피를 수확하는 모습

지금은 고인이 된 박완서 작가의 집을 방문하고 난 뒤 엄씨는 커피에 매료됐다.

구리시청 과장이던 2007년 어느 날 아천동 민원현장을 다녀오다 인근에 사는 박 작가를 만났고 차 한잔 마시고 가라는 권유에 집에 들렀다.

엄씨는 "박 작가를 따라 들어서는 순간 집 안 가득한 커피 향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고 충격적이기까지 했다"며 "커피를 내리는 박 작가의 뒷모습이 너무 멋있어 이때부터 바리스타를 꿈꿨다"고 회상했다.

이후 커피를 공부했고 알면 알수록 커피의 매력에 끌렸다.

결국 집 안에 커피나무 한 그루를 들였고 정성껏 키우면서 바리스타를 공부했다.

그리고 2014년 6월 엄씨는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노후를 염두에 두고 가평에 농지를 사 둔 뒤였고 귀농 교육도 착실히 받았다.

인생 2막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공직 후배에게 길을 열어 주고자 남들보다 1년가량 일찍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해 도심 아파트를 처분하고 농촌 마을로 이사할 때는 도시 생활에 익숙한 부인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설득해야 했다.

부농의 꿈에 부풀어 1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 시험용 커피나무를 심고 포도나무도 재배하기로 했다.

누구보다 충실히 준비했지만 실상은 녹록지 않았다.

농기계를 잡은 '커피 농부'
농기계를 잡은 '커피 농부'

이 지역의 골바람을 예상하지 못한 탓에 비닐하우스가 통째로 100m가량 날아가 데굴데굴 굴러 인근 포도 농장 언저리에 걸렸고 남의 농사를 망칠 뻔했다.

땅이 건조하다는 것을 몰라 겨울을 난 포도나무는 모두 말라 죽었다.

엄씨는 "지역의 기후와 지형, 특성 등을 충분히 알아야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그런 면에서 마을 주민은 훌륭한 멘토이자 선생님"이라고 조언했다.

이후 마을 주민에게 다가갔고 무엇이든 물어봤다.

마을 주민들이 골라 준 공사업체에 농가주택 신축을 맡겼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일상을 SNS에 수시로 기록했다.

정이 넘치고 여유로운 전원생활이었고 마을 주민들도 내 일처럼 도와줬지만 부농의 꿈과 달리 2년간 수입이 없었다.

방향을 잃고 헤매던 지난해 겨울 인터넷을 뒤지다 농업기술센터의 공모사업이 한눈에 들어왔다.

농촌교육농장을 시범 추진하는데 2천500만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설 연휴인데도 일상을 SNS에 기록해 둔 덕분에 사업계획서를 일사천리로 만들었다.

공직에 있을 때 기획안 등을 부하 직원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작성했던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신청한 11개 농가 중 2곳을 선정하는데 그중에 뽑혔다.

텃세가 심한 농촌에서 엄씨 같은 이방인이 선정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가평 농장 내 교육장에서 커피를 설명하는 엄기용 씨
가평 농장 내 교육장에서 커피를 설명하는 엄기용 씨

엄씨에게 지원금 2천500만원은 10배의 가치였다.

이 지원금으로 체험·편의 시설 등을 보완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체험교육농장인 '가평하늘커피농장'을 문 열었다.

첫해에는 다소 부진했지만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소문 나면서 방송에도 소개되고 이제 교육생 수도 제법 늘었다. 올해는 교육생 5천명이 목표다.

공공기관 등에서 인생 2막 비법을 듣고자 엄씨를 강사로 초청하기도 한다.

엄씨는 "사전 예약을 받기 때문에 일정을 조정하면서 체험교육장을 운영하고 좋아하는 커피나무를 돌보는 등 여유 있고 격조 있는 2막 인생에 너무 만족한다"며 활짝 웃었다.

kyoo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8/12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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