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이 폭탄테러 악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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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폭탄테러 미수 용의자 샤자드 (AP=연합뉴스) ** 판매금지** |
(뉴욕.이슬라마바드 AFP.AP=연합뉴스) 뉴욕 폭탄테러 미수 용의자로 체포된 파이살 샤자드(30)는 지난 1일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폭탄테러를 시도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웃들에겐 조용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통했다.
파키스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전형적인 이민자였다.
1990년대 말 학생 비자로 미국에 입국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MBA 과정을 이수했으며 재무분석가로 일했다. 2004년에는 코네티컷주(州) 교외에 2층짜리 집을 샀으며 지난해 4월에는 그렇게 바라던 미국 시민권도 획득했다.
파키스탄계 아내와 만나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남매를 둔 샤자드 부부는 남 부러울 게 없었다. 콜로라도대학에서 공부한 그의 아내는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시작페이지에 "남편은 나의 전부"라는 글을 올려놓았다.
한 이웃 주민은 샤자드는 평범한 젊은이였다면서 "두 번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샤자드 부부에게도 시련은 닥쳐왔다.
2004년에 산 집이 문제였다. 그는 21만8천400달러의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을 받아 27만3천달러에 집을 샀다. 부동산 붐을 타고 집을 팔아 이익을 남기려 했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2008년 미국 경제가 극심한 침체에 빠지면서 집은 큰 두통거리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다니던 금융 서비스 회사를 사직했으며 집은 압류됐다. 지난달 말 아직 갚지 못한 빚이 약 21만2천870달러나 됐다.
아메리칸 드림이 산산조각난 샤자드는 결국 가족과 함께 지난해 말 부모님이 살고 있는 파키스탄으로 갔다.
그리고 5개월 뒤인 지난 2월 3일 그는 홀로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으로 돌아온지 불과 3달 만에 그는 뉴욕 한복판에서 폭탄테러를 시도했다.
아메리카 드림을 꿈꿨던 평범한 청년이 어떻게 폭탄테러범이 됐을까
친척들과 친구들은 그가 18살 때 미국에 공부하러 가기 전 만에도 과격 성향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 친척은 "여기(파키스탄에) 있었을 때만 해도 종교적이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종교적으로 변해있었다고 말했다.
텍사스주 오스틴 소재 싱크탱크 스트랫포의 캄란 보크하리는 "그는 미국에 오기 전만 해도 좋은 배경을 갖고 있었다. 대체 뭐가 잘못됐을까"라고 반문한 뒤 "나는 그가 미국 주류 삶에 결코 동화되지 않았으며 무슬림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주장에 쉽게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 여권을 소지하고 미국과 파키스탄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샤자드가 테러단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요원이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평화연구소(USIP)의 모에드 유수프는 테러를 할 용의가 있고 미국 여권을 소지한 사람보다 "더 나은 (테러요원) 후보감이 있겠느냐"며 말할 것도 없이 파키스탄 탈레반 등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폭스뉴스 인터넷판은 파이살 샤자드라는 이름의 남성이 급진 이슬람 사이트에 올려놓은 수십 개의 글을 찾아냈다면서 테러 용의자 샤자드가 인터넷을 통해 지하드(聖戰)에 대한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5일 보도했다.
미국 수사당국은 아직까지 급진 단체들과의 연계를 찾아내지 못했으며 일단 샤자드의 단독 범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yunzhen@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0/05/06 11:38 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