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장악 눈앞에 둔 와타라 대통령은>
(다카르=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국제사회로부터 지난해 11월 대선 당선인으로 인정받은 알라산 와타라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이 사실상의 내전을 끝내고 완전한 권력 장악을 눈앞에 두면서 또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와타라는 1942년 1월 1일 코트디부아르 중부 딤보크로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학창시절 대부분을 코트디부아르와 북쪽으로 국경을 접한 부르키나파소에서 보냈다.
또 어머니가 부르키나파소인이라는 점 등은 훗날 그가 총리에 오르는 등 정치적 중책을 맡을 때마다 반대 세력들이 `국가 정체성'을 문제 삼으면서 공격하는 데 이용됐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와타라는 공부에 뛰어나 1967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6세에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국제기구와 관계를 맺은 와타라는 1988년에는 서아프리카 8개국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폐를 발행하는 서아프리카 중앙은행(BCEAO) 총재, 1994년 IMF 부총재로 임명되는 등 차근차근 출세 가도를 밟았다.
1990년에는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초대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임명돼 3년 뒤 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 총리직을 수행하며 국내에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웃 나라인 부르키나파소와의 깊은 인연 때문에 국내 정치권에서 '외국인' 취급을 받았다.
1995년 대선에서 와타라는 앙리 코난 베디에 당시 후보의 '대항마'로 떠올랐으나 베디에 측이 그의 `국가 정체성'을 문제 삼으면서 대선 진출이 불발됐다.
2000년에도 '의심스러운 국적' 때문에 와타라의 입후보는 좌절됐고 그해 로랑 그바그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절치부심한 와타라는 지난해 10월 대선 1차 투표에서 그바그보 대통령(38.3%)에 이어 2위(32.1%)에 오른 뒤 결선 진출이 좌절된 베디에 전 대통령의 지지를 확보, 지난해 11월 대선 결선 투표에서 54.1%의 지지율로 45.9%에 그친 그바그보 대통령을 꺾고 승리했다.
하지만 그바그보가 권력 이양을 거부하자 대통령궁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선거 때부터 머물던 시내 골프 호텔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의 보호를 받으면서 4개월을 보내게 됐다.
자신의 지지자들이 그바그보에 항의하면서 길에서 쓰러져 죽는데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별다른 조처를 하지 못해 "부유한 국제 관료 출신이라 우유부단하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외교적 노력으로 더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내전의 우려에도 지난달 28일 자신을 지지하는 북부 군대에 아비장으로 진격할 것을 명령, 불과 일주일 만에 수도 아비장을 제외하고 국토의 전 지역을 장악하는 결단력도 보였다.
sungjinpark@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4/03 21:14 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