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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참전용사 4명이 회상하는 한국전쟁>
"전쟁은 막아야 한다"
(시러큐스<미 뉴욕주>=연합뉴스) 이상원 특파원 =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미군 참전용사 4명이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 인근 제임스빌의 시러큐스 제1침례교회에서 훈장을 놓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전쟁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브루스 애커먼(83), 레지너드 롤스(81), 노먼 샴페인(87), 해리 히스(82) 씨. 2011.6.22 leesang@yna.co.kr

"한국전 참혹..전쟁 겪지 않은 것은 큰 행운"

(시러큐스<美 뉴욕주>=연합뉴스) 이상원 특파원 = "전쟁을 겪지 않은 것은 큰 행운입니다."
낯선 이국 땅에서 처참한 전쟁을 경험했던 노먼 샴페인(87) 씨가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온 후 한국전쟁에 대해 묻는 아이들의 질문에 해주는 첫 대답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1년 가까이 흐른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주 시러큐스 인근 제임스빌의 시러큐스 제1침례교회(기쁨의 강 한인교회)에서 한국전쟁에 참가한 미군 참전용사 4명을 만났다.

   샴페인 씨와 브루스 애커먼(83), 레지너드 롤스(81), 해리 히스(82) 씨는 한종우 시라큐스대 교수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전쟁 디지털 아카이브에 자신들이 갖고 있던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교회에 들렀다가 1시간여 동안 자신이 경험한 한국전쟁을 소개했다.

   한국전쟁에 13개월 동안 참전했던 샴페인 씨는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3년 3월26일부터 30일까지 4일간 치러진 판문점 인근의 문산리 전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남과 북, 양측이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치열한 전투를 했던 시기였다.

   샴페인 씨는 "이길지, 질지 모르는 도박 같은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어서 그곳을 `네바다 시티'라고 불렀다"고 소개했다.

   라스베이거스, 리노 등 도박으로 유명한 도시가 있는 미국 네바다 주를 연상해 이렇게 부른 것이다.

   그는 "고지를 뺏고 뺏기기를 수차례 반복했고 나흘 동안의 격전에서 미 해병대 194명이 전사했다"고 말했다.

쓰레기장의 한국 어린이들
(시러큐스<미 뉴욕주>=연합뉴스) 한국전쟁 당시 미군 부대 쓰레기장에서 한국 어린이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다. 2011.6.22 << 국제뉴스부 기사참조, 한종우 미국 시러큐스대학 교수팀 제공 >> leesang@yna.co.kr

   샴페인 씨는 귀국해서 한국전쟁을 묻는 아이들에게 참혹했던 모습을 얘기해주면서 "너희는 생존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전쟁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걸 정말 행운으로 알아야 한다고 말해 줬다"고 전했다.

   먹을 것을 찾으려고 미군 쓰레기장을 뒤지던 한국 아이들을 보곤 했다는 그는 "이런 모습을 보거나 경험하지 못한 미국 아이들도 전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전투사에 남을 정도로 유명한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히스 씨는 "아직도 장진호 전투를 생각하면 두렵고 괴롭다"며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26일부터 12월13일까지 미 해병 1사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함경남도 개마고원 장진호에서 중공군 7개 사단, 12만명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빠졌다가 탈출에 성공한 작전이다.

   그는 "11월27일 정탐을 나갔다가 수백 명의 중국군에 포위됐다"며 "포탄이 떨어졌고 포탄에 부서진 돌에 얼굴을 맞아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2시간여의 교전 뒤 옆에서 죽어 있는 동료를 발견했다는 그는 "왜 내가 아니라 그가 죽었는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힘들다"며 "함께 전투에 참가했던 전우 중에는 장진호 얘기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전쟁에서 "여성과 아이들 등 10만 명의 북한 주민을 남한으로 철수시켰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장진호 전투는 중국군의 남하를 늦춰 국군과 유엔군뿐만 아니라 북한 피란민 10만여 명의 흥남 철수 작전을 가능하게 했다.

북한.중국군의 투항 권유 전단
(시러큐스<미 뉴욕주>=연합뉴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국군이 유엔군을 상대로 뿌린 것으로 보이는 영문 투항 권유 전단. 2011.6.22 << 국제뉴스부 기사참조, 한종우 미국 시러큐스대학 교수팀 제공 >> leesang@yna.co.kr

   한국전에서 7개월 복무했다는 애커먼 씨는 "장진호 전투에도 참여했지만 어떤 전투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2차 대전 이후 군 복무를 했는데, 한국전을 제외한 군 생활은 유람선 여행 같았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의미였다.

   1951년 5월부터 한국에서 근무한 롤스 씨는 "운전병이어서 전투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한국 친구들이 그립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쟁 이후 한국의 발전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을 잊지 않는 한국인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애커먼과 샴페인 씨는 "한국의 높은 빌딩과 도로는 마치 뉴욕을 보는 것 같았다"며 "공항도 시러큐스보다 훨씬 컸다"고 한국의 달라진 모습에 감탄했다.

   이들 2명의 참전용사는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전쟁에 참전한 우리를 만날 때마다 감사하다고 인사한다"며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한국인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4명의 참전용사는 자신들이 보관했던 자료가 전쟁을 겪지 못한 후세대에 전쟁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데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leesa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6/22 11:4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