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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참전용사 자료로 본 한국전쟁>
쓰레기장 앞의 한국 어린이들
(시러큐스<미 뉴욕주>=연합뉴스) 한국전쟁 당시 미군 부대 쓰레기장 앞에서 한국 어린이들이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서 있다. 2011.6.22 << 국제뉴스부 기사참조, 한종우 미국 시러큐스대학 교수팀 제공 >> leesang@yna.co.kr

(시러큐스<美 뉴욕주>=연합뉴스) 이상원 특파원 = 한국전에 참가한 미국 참전용사들이 한종우(49) 미국 시러큐스대학 맥스웰 대학원 겸임교수(정치학과) 팀에 제출해 디지털화한 자료 1천400여 점에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전쟁의 포화 속에서 폐허가 된 한국과 기아에 시달렸던 아이들의 모습, 적군에 뿌린 투항 권유 전단, 북한 채권, 친선 권투경기 초대장, 크리스마스 파티 초대장 등 다양한 역사의 흔적들이 당시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참전 용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전쟁 당시보다 후의 결과가 더 비참하고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후세들에게 남겼다.

  
◇최고의 행복은 `달력의 날짜 지우기'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주는 자료와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편지들이 많았다.

   통신병으로 복무했던 빌 오케인 씨는 1953년 3월1일 한국을 떠나기 3개월 전부터 귀국 날짜를 세려고 달력에 표시했다며 `X 표'가 가득한 당시 달력을 제출했다.

   오케인 씨는 한국전 당시 달력에 표시할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말했다고 한 교수팀은 전했다.

   장진호 전투에 참여했던 브루스 해커먼 씨는 1950년 10월31일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족들과 보스턴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다"며 참을 수 없는 향수를 드러냈다.

북한 귀순용사에 대한 안전보장 증명서
(시러큐스<미 뉴욕주>=연합뉴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은 귀순하는 북한군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안전보장 증명서를 발행했다. 사진은 증명서의 뒷면으로 귀순 방법과 순서가 설명돼 있다. 2011.6.22 << 국제뉴스부 기사참조, 한종우 미국 시러큐스대학 교수팀 제공 >> leesang@yna.co.kr

   편지 등의 자료를 보면 술을 구하지 못해 의료용 알코올에 주스를 타셔 마셨다거나 맥주를 시원하게 먹으려고 휘발유에 묻었다가 마셨다는 내용도 있다.

   한ㆍ미군의 친선 권투 경기 티켓도 있고 종교 행사 사진도 많았으며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저녁 초대장들도 있었다. 젊은 병사들의 사기를 돋우고 향수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한 행사도 자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엔군 총사령관 다글레쓰 맥아-더 "투항하라"
투항을 권유하는 양측의 심리전 자료들도 있었다.

   유엔군의 안전보장 증명서는 한글과 영어, 중국어로 "대한민국 병사들에게, 이 증명서는 북한군 귀순병에게 인도적 대우를 할 것을 보증한다. 이 귀순병을 곳 상관에게 인도할 것과 명예포로로 대우할 것을 명령한다. 유엔군 총사령관 다글레쓰 맥아-더"라고 귀순병에게 공정한 대우를 해줄 것을 지시하고 있다. 뒷면에는 투항 순서와 방법까지 적혀 있다.

   유엔군은 귀순병이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이들이 음식을 먹거나 치료받는 모습 등을 담은 사진을 첨부한 선전지도 뿌렸다. 문맹자들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만화 전단도 있었다.

   `당신 가족은 당신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고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투항'이라는 내용으로 북한군과 중국군이 뿌린 영문 전단도 있다.

   북한 채권과 당시 한국의 천원(千圓) 지폐, 미군 내 화폐 등도 있다.

한국전쟁 당시 배포된 만화 전단
(시러큐스<미 뉴욕주>=연합뉴스) 한국전쟁 당시 문맹자들을 위해 배포된 만화 전단. 만화로 북한군의 약속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011.6.22 << 국제뉴스부 기사참조, 한종우 미국 시러큐스대학 교수팀 제공 >> leesang@yna.co.kr

  
◇美서 복무한 여군 참전 용사
미국에서 근무했지만, 한국전 참전 용사로 인정받은 여군의 자료도 있다.

   미국은 한국에서 직접 복무하지 않아도 한국전쟁 관련 업무를 했으면 한국전 참전 용사로 인정해줬다고 한 교수는 밝혔다.

   도리스 포필리아 씨는 1951년 8월15일부터 1953년 3월14일까지 캘리포니아 군부대 우체국에서 복무하면서 한국전 업무를 했다.

   그는 "남편이 한국전 참전을 반대했지만, 남편이 죽은 그달에 지원했다"고 말했다고 한 교수는 전했다.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났던 12살 때 군대 가는 게 꿈이었다는 그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미군의 본국 송환 업무를 도왔다.

  
◇가난·기아·삶..예의 바른 한국인
미군에게는 생소하고 이국적이었을 한국 모습과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는 장면을 담은 자료도 많았다.

   노먼 샴페인 씨가 1953년 8월에 찍은 부대 쓰레기장 사진은 휴전 직후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4명의 아이가 먹을 것을 찾으려고 미군 부대에서 나온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귀순 홍보 전단
(시러큐스<미 뉴욕주>=연합뉴스) 한국전쟁 당시 한국과 유엔군은 북한군의 귀순을 유도하기 위해 전단을 뿌렸다. 사진은 북한 귀순병이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2011.6.22 << 국제뉴스부 기사참조, 한종우 미국 시러큐스대학 교수팀 제공 >> leesang@yna.co.kr

   무너져 가는 초가집들은 전쟁의 폐허를, 시장 모습과 다리 밑에서 빨래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은 전쟁에서도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각각 보여주고 있다.

   한국 전우들의 사진도 다수 있었다.

   피터 도일 씨는 강원도 양구의 펀치볼 전투에서 만난 한국 전우들의 사진을 보내면서 준 버그(June Bug, 여름 벌레)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진 모 씨를 그리워했다고 한 교수팀에 말했다. 진 씨는 1953년 백마산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참전 용사들이 전한 한국 전우는 예의 바르고 영리했으며 무뚝뚝하던 사람도 한국말로 인사하면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한 교수팀에 밝혔다.

  
◇참전용사들 이구동성으로 "전쟁은 막아야"
자료를 제출한 참전 용사들은 디지털 아카이브에 수록할 동영상 인터뷰에서 전쟁에 대한 메시지도 함께 남겼다.

   조지프 깁슨 씨는 "내 자식들은 가능하면 전쟁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어떤 전쟁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전쟁은 가능한 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토니 바퀘로 씨는 "전쟁은 외교 실패의 결과"라며 "전쟁 당시보다 전쟁 후의 결과가 더 비참하다"고 전했다.

   잭 앨런 씨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돌볼 줄 안다"며 전쟁 속에서 발견한 인간애를 강조했다.

   leesa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6/22 11:40 송고